‘업종 전환!’
수년 또는 수십년간 쌓았던 기술 또는 영업 노하우를 과감히 떨쳐 버리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
전세계를 주름 잡는 대표적인 기업가 가운데 업종전환으로 성공한 케이스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이들은 단순히 기업의 미래를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세계 산업구도를 바꿨다. 그래서 많은 기업가들을 유혹하는지도 모른다.
업종전환으로 성공신화를 이룩한 해외의 대표적인 기업가를 들면 노키아의 요르마 올리라와 샤프의 하야카와 도쿠지를 꼽을 수 있다. 올리라는 목재·펄프 공장으로 출발해 트럭타이어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동사니를 생산하던 노키아를 세계적인 휴대폰 제조업체로 바꾼 주인공. 그는 80년대 말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던 노키아가 금융위기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며 부도의 위기를 맞자, 기존 사업을 모두 정리하는 대신 휴대전화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혁신적인 결정을 내렸다.
샤프의 하야카와 사장은 만년필 부품을 만드는 기술자. 1915년 문구용품인 샤프를 독자기술로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샤프는 실용성이 뛰어나 해외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회사와 공장이 폐허로 변하자, 과감하게 가전시장에 뛰어든 것. 그는 1925년 라디오를 만들었으며 이어서 TV와 전자레인지, 계산기 등을 잇따라 개발해 연달아 대박을 터뜨렸다.
이처럼 새로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과감히 업종전환을 시도하는 개척자들은 국내에도 여럿 있다.
‘인터넷 전도사’ 이금룡 이니시스 사장(53)은 신규 사업개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 삼성물산에서 20여년간 근무한 그는 99년말 벤처붐과 함께 회사를 나와 인터넷경매업체인 옥션의 최고경영자가 됐다. 그는 탁월한 수완으로 옥션을 국내 최고의 인터넷 경매업체로 올려 놓은 후 온라인 전자지불결제전문업체인 이니시스에서 새롭게 둥지를 텄다. 이 사장은 이니시스에서도 업종전환을 시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e마켓플레이스의 포털사이트인 ’온켓’. 중소 쇼핑몰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면서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데 착안,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e마켓 포털이 필요하다고 보고 아이디어를 낸 것. 이 사장은 ‘스크랩과 수첩 경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사장은 “스크랩과 메모를 하는 습관이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든다”며 자신의 경영철학이 업종전환에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창원 한메소프트 사장(38)도 업종전환 후 더 조명을 받고 있는 최고경영자. 지난 89년 설립된 한메소프트는 한글키보드 연습용 소프트웨어 등 소프트웨어 개발기업으로 명성을 누려왔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의 시련과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를 겪으며 큰 어려움에 처했고 결국 주력 사업을 과감히 접고, 온라인 영어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온라인 영어포털시장 진출 1년여 만에 회원 수 50만명, 일일 방문자 수 10만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온라인 영어교육포털업체로 성장했다. 이창원 사장은 “기존 분야에서의 수익성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새 분야 개척의 일환으로 영어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며 “하지만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 비중을 서서히 전환시킨 것이 한메소프트만의 업종전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유주한 피코소프트 사장(43)도 순발력 있게 업종전환을 단행,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는 최고경영자. 그가 대표로 있는 피코소프트는 2001년까지 중소기업용 그룹웨어, 세무회계솔루션 사업이 주력이었으나 2002년 브라질 온라인 복권사업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이 계기가 돼 온라인복권 사업에 뛰어들었다. 작년 4월부터 현지 정식발매를 시작해 현재 복권 소매점에 설치된 로또판매기당 1일 50장 가량 판매하고 있다. 유 사장은 올해 브라질 온라인 복권사업으로 매출 800억원과 1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이호상 넥스텔 사장(39)도 최근 업종전환으로 성공을 꿈꾸고 있다. 90년대 말 국내 인터넷 보급의 확산으로 회사는 급성장했으나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자, 이 사장은 그동안 추진해오던 솔루션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지난해 7월부터 휴대폰 부품시장에 진출했다. 시장 진출 후 두달 만에 팬택앤큐리텔과 21억원 규모의 휴대폰 폴더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또 작년 10월 말에는 141억원대 제품 공급 계약의 대박을 터뜨렸다. 현재 휴대폰 폴더뿐만 아니라 충전기, 배터리 등 취급부품을 다양화해 휴대폰 부품 전문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중. 이 사장은 “과당경쟁으로 인해 중소업체들의 입지가 날이 갈수록 약해지는 SI 및 솔루션 등 기존 사업군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익성이 훨씬 밝은 휴대폰 부품으로 사업영역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소프트웨어 기업이 하드웨어 업체로 변신하기까지는 큰 결단이 필요했다”고 말해 업종전환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윤영석 써니YNK 사장(36)과 한동훈 케이아이티비 사장(46)은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한 케이스.
써니YNK는 2001년까지 신발제조업이 주력이었던 업체. 하지만 윤영석 사장은 게임이 문화콘텐츠의 핵심으로 향후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신발제조업 부문에 대한 투자는 최소화하는 한편 게임유통업에 과감히 투자했다. 현재는 신발제조업은 완전히 정리하고 게임 배급업 및 개발사 투자 등 게임분야에만 주력하고 있다. 윤 사장은 “게임산업을 접한 후 제조업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며 “이에 자극을 받아 과감하게 업종전환을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한동훈 사장의 케이아이티비는 원래 수출용 산업포장재를 생산하던 전형적인 굴뚝기업. 그러나 2001년 경기침체로 인해 부도를 맞자, 한 사장은 양방향 TV 셋톱박스 솔루션을 생산하는 잇츠티비를 인수하고 양방향 TV 셋톱박스 쪽으로 주력업종을 바꿨다. 이를 통해 지난해만 일본과 홍콩에 1200만달러의 양방향 TV 셋톱박스를 수출하는 계약을 맺는 성과를 올렸다. 현재는 화의에서 벗어나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 대기업에 종사하다 새로운 분야에서 벤처기업을 세워, 대박을 꿈꾸는 인물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서홍철 에누리닷컴 사장(44)과 현만영 아이마켓코리아 사장(52) 등.
서홍철 사장은 LG반도체 영업·마케팅 부문에서 10여년간 근무하다 지난 98년 가격비교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에누리닷컴을 세웠다. 서 사장이 에누리닷컴을 세우게 된 배경은 순전히 쇼핑을 즐기는 자신의 생활습관 때문.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 국내에 할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서 사장은 이들 할인점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할인점마다 가격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 여기에 착안해 가격비교사이트를 오픈하게 됐다. 서 사장은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신념으로 업종전환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삼성에버랜드 국제화추진 임원이었던 현만영 사장은 지난 2000년 e비즈니스가 화두로 떠오르자 과감히 회사를 박차고 나와, 기업소모성자재(MRO) 및 건설자재 e마켓플레이스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를 세웠다. 그는 해외 선진기업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자상거래를 통한 다양한 구매혁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데 착안해 이 시장을 개척한 것. 현만영 사장은 “우리 기업들도 점차적으로 핵심부문에만 집중하고 비핵심 부문은 아웃소싱할 것으로 보았다”며 “이런 선견지명으로 현재의 기업을 세웠으며 이것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
업종 전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의 결단과 안목이 절실히 요구된다. 남들이 하니깐 막연히 따라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이범일 상무는 “업종전환의 성공률은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라고 전제하며 “기존 조직을 유지한 채 뛰어들 경우 전직원이 동참할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며 아울러 새 분야에서의 경쟁자 그리고 미래 발전방향에 대해 철저한 검토를 한 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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