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 대전의 도화선인 독일은 프랑스와 소련을 상대로 동시에 전면전을 벌였다. 독일은 당시 세계 전쟁·전술의 기본인 ‘진지전’에서 탈피해 탱크를 앞세운 ‘전격전’으로 초반 전세를 압도했다.
21세기 초입, 세계 경제·문화·사회가 격동속의 난세(亂世)로 접어든 가운데 경제 전격전을 주도할 ‘프런티어’를 확보하는 게 그 무엇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특히 경제 선봉대인 기업들이 튀는 못을 두드리는 인재상에서 탈피해 프런티어의 활약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성공신화를 도모하기 시작했다. 궁극적으로 핵심인재(프런티어)의 유입과 유출이 기업 경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다.
21세기 프런티어, 그들은 무엇을 가졌는가.
우선 프런티어는 기존 업무에 대한 노하우와 지식만으로 안주하지 않는다. 스타벅스, 컴팩트디스크 등처럼 존재하지 않던 시장과 수요를 창출해낸다. 이는 산업과 시장의 흐름을 통찰하는 능력을 갖추고 수종(樹種)사업을 발굴하라는 기업들의 요구와 직결된다.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능력도 프런티어의 필수조건이다. 기업 조직에 고착된 관행과 고정관념을 깨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추진력으로 변화를 선도하는 것이다.
이같은 프런티어의 특징은 기존 교육·문화·사회의 틀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모범생이나 수재로부터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괴짜나 문제아로 취급되는 이들이 프런티어에 더 근접해 있다.
가장 성공한 프런티어 모델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선망의 대상인 하버드 대학을 중퇴했다. 마이클 델(델컴퓨터 회장)도 텍사스 오스틴 의대가 보장하는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권위를 외면하고 보다 큰 그림을 그려냈다.
우리나라에서도 안철수(안연구소), 이재웅(다음커뮤니케이션) 등 창의력과 역발상으로 자신의 성공신화를 써가는 이들이 있다. 결국 깨인 사고를 가진 프런티어일수록 더욱 도전적인 과제를 선호하고 기업, 국가, 세계의 리더를 지향하고 있다.
기업들도 보다 많은 프런티어를 확보하는 데 회사의 미래를 걸고 있다. 고급 인재를 선점하기 위한 풀(pool)을 전세계적으로 운용하는가 하면 경쟁사의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중견·중소기업의 성공모델을 제시하며 20세기를 풍미한 대만의 신주(新竹)공업단지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유층들이 모인 비버리힐즈에 버금가는 주택과 교육시설을 제공하며 21세기 프런티어들을 유인하고 있다. 삼성그룹도 해외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인력을 찾는 데 혈안일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책임자(CRO)들이 국내 10여개 과학고등학교를 순회하며 프런티어의 싹을 가진 미래 인재들의 꿈과 삼성의 비전을 연계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프런티어 발굴 및 확보작업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관리’다. 프런티어의 자율적인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되 2, 3중의 안전장치(관리)가 필요한 것. 인수합병(M&A), 초대형 연구개발투자, 금융거래 등 21세기 기업 경쟁력을 가름하는 요소일수록 프런티어의 실수가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실제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영국의 베어링금융그룹이 지난 95년 싱가포르지점의 촉망받던 딜러인 닉 리슨의 과욕(투자손실)으로 인해 파산한 사례가 있다. 이듬해에는 스미토모그룹 런던지사의 하마나카 야스오가 선물거래를 통해 20억달러의 손실을 발생시키면서 국제 동(銅) 시세를 1일 만에 10%나 폭락시켜 세계 경제를 뒤흔들기도 했다.
따라서 프런티어의 역량과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조직 내에 체화시키는 경영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다. 이는 조직구성원 전체의 역량을 높여 ‘프런티어의 선도하에 조직과 기업 전체가 함께 발전하는 모델’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은 이같은 위험성에 주목하고 인재 평가와 양성, 조직원 관리에 업무시간의 70%를 쏟아붓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프런티어는 21세기 기업의 필수 선택이자 과제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 인사담당 임원이 꼽은 최고 덕목은 `창의력과 진취성`
21세기 경제 프런티어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국내외 선진기업들이 요구하는 인재상에 그 해답이 있다. 프런티어들의 대표적인 덕목인 창의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의식적 노력이 융합되고 환경이 조성될 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국내외 선진기업들의 인재상을 통해 21세기 프런티어의 전형을 제시해본다.
국내 대표기업들의 인사담당 임원들이 자사 인재채용기준을 토대로 밝힌 바에 따르면 ‘창의력과 진취성’에 21세기 프런티어의 공통 분모가 형성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빠른 두뇌와 창의력, 진취성, 적응력, 외국어능력 등을 꼽았다. LG전자는 창의력, 도전정신 등을 중요시하고 있다. SK에서는 국제적인 안목, 도전정신, 패기를 바라고 현대자동차는 창의력과 협력정신을 눈여겨 본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삼성전자에 재직할 당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창의적 인재의 전형을 보여줬다. 최근에는 그답게 특유의 카우보이 모자로 창의력과 도전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축구대표팀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현 아인트호벤 축구팀 감독도 “한국 선수들의 골결정력이 약한 것은 골문 앞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창의성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국내 최대의 온라인채용정보업체인 잡코리아의 김화수 사장도 입사면접시에 “자신 있고 진취적이며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임을 표현하라”고 조언했다. 심지어 법무부조차 판검사 임용면접때 법률지식 외에도 사고의 유연성과 진취성을 살필 수 있는 내용을 대거 포함시키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진취성과 창의력이 이처럼 강력히 요구되는 이유는 디지털 혁명과 함께 기업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기존의 관습에 안주하고 정해진 룰만 따르다가는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 하루가 다르게 급속히 변해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요구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5∼6월 11개 그룹의 대표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대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서도 △진취성 △도전과 성취의식 △유연한 사고와 창의력 등이 포함됐다. 전경련은 이같은 자질과 소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해보자, 해내자는 마음가짐을 갖추고 튀는 생각, 엉뚱한 생각을 구체화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창의력과 진취성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외국계 선진기업들도 나름의 미래지향(프런티어)형 핵심인재상을 마련하고 있다.
주로 전문성과 지적 역량,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갖추고 조직의 변화를 주도하며 미래 수익원을 창출할 인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도덕성과 인간적인 매력을 중요시할 뿐만 아니라 기존 틀을 뛰어넘는 통찰력과 추진력을 발휘해줄 것을 바라는 경향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1980년대 후반부터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리더상을 새롭게 정립했다. 이 회사는 70년대의 안정적인 경영환경하에서 기획(plan), 조직화(organize), 통합(integration), 관리(management)능력이 탁월한 리더를 바랐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열정(energy), 동기부여(energize), 결단(edge), 실행(execution)력이 뛰어난 인물을 찾기 시작했다.
웰치 회장도 이같은 ‘4E’ 모델을 가장 이상적인 리더의 덕목으로 제시, 사내 인재간의 상개평가제도(vitality curve)를 통해 매년 하위 10%를 도태시키고 상위 20%를 중점관리하며 21세기형 프런티어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소니(SONY)는 ‘디지털 드림 키드(Digital Dream Kid)’라는 상징적인 인재상을 세우고 개개인의 아이디어를 추구할 수 있는 조직환경을 확립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조직을 개인의 꿈을 실현하는 장으로 만들어 인재들이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를 위해 소니는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 최신의 것을 토대로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상품제작과 비즈니스에 연계해 마무리할 수 있는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한 특별 육성코스를 가동하고 있다.
메릴린치도 금융회사 특유의 보수적인 인재상과 연공서열 관행에서 탈피해 전략적 사고, 리더십, 열정을 가진 프런티어상을 세웠다. 무엇보다 변화를 수용하고 항상 준비하며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시한다.
세계 3대 신용카드회사인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경우에도 비전개발능력, 글로벌 인재채용능력, 고객만족과 경쟁력을 중심으로 하는 ‘A급 인재의 행동특성’을 설정하고 전체 직원 8만5000여명 중에서 200명 정도를 집중관리대상으로 선정해 21세기 프런티어로 육성하고 있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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