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신년특집]신노사문화 만들자

 협력·화합·융화·접목이 대한민국 신화창조의 밑거름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협력, 부처간 협력, 서로 다른 산업간의 만남, 근로자와 사용자간의 화합, 전통기술과 첨단기술의 융화, IT와 미래기술의 접목 등등. 이같은 하모니코리아 분위기는 정치·경제·사회·문화·산업 모든 분야에서 시너지 창출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는 어렵다. 그러나 산적한 이슈를 어떻게 헤치고 나가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반전될 수 있다.”

 내년 노사 관계를 바라보는 노동계와 관련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정치·사회·경제 등 사회 전체적으로 ‘화합’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노사 관계 개선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로 부각됐다.

 이같은 필요성은 지난해 노사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데다 올해도 지난해 해결하지 못한 각종 현안들로 인해 섣부른 낙관론을 제시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탓이다.

 노사 화합이 우리 경제의 성장과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따라서 올해 느린 걸음걸이일지라도 지난해 극에 달했던 노·사·정 갈등을 일정 부분 해소할 만한 장치 마련이 요구된다.

◇지난해 노사 관계 불안 최고조=지난해 국내 노동계는 연초에 시작한 춘투를 일년 내내 ‘연투’로 이어갈 정도로 노·사·정간 심한 마찰을 빚었다. 노동계의 숙원이었던 주5일제 근무제가 진통끝에 법제화됐으나 이후 비정규직 철폐, 손배·가압류 철폐 문제 등을 놓고 노동자의 분신이 이어지는 등 첨예한 대립이 불가피했다. 또한 지난 연말 발표된 노사관계 제도 선진화 방안 역시 노사 양측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갈등의 한 축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노사 관계를 둘러싼 분쟁이 끊임없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노동시장은 98년 이후 GDP 성장률 최저치 기록, 취업자수 98년 이후 첫 감소 등 부정적인 수치들을 만들어냈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노사 관계 악화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말 국내 2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2004년 경제흐름과 경영환경 전망’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경제에 영향을 미칠 부정적 변수는 △ 정책혼선(23.9%) △ 가계대출 불안(22.5%) △금융시장 불안(17.6%) △노사갈등(15.0%) 등인 것으로 나타났됐다. 특히 기업경영 환경에서 올해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부문으로 노사관계와 금융조달을 꼽았다.

◇올해 현안 줄줄이=지난해 해결하지 못하고 올해로 공이 넘어온 이슈가 산적해 있어 노사 화합에 대한 전망을 100% 낙관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일단 정부와 노조 3급 단체가 법·제도적인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현안들이 다수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퇴직 연금제, 공무원 노동 3권 보장 등을 비롯해 노사관계 제도 선진화 방안도 핫 이슈로 다뤄질 전망이다. 또한 손배·가압류 철폐도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이같은 제도적인 문제들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할 경우 사업장 차원의 노사 관계도 더욱 불안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단위 사업장 차원에서는 지난해 법제화된 주5일제 근무제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며 금속 노조 등 제조업의 경우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구조조정 건도 갈등의 요소로 남아있다. 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내년에 경기가 소폭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사업장별로 격차가 벌어졌던 임금 수준을 좁히려는 협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망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이주희 연구위원은 "지난해 해결하지 못하고 올해로 넘어온 이슈들이 하나같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라면서 "또한 외부적인 요소로 올초 예정된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와 4월 총선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도 노사 관계의 방향타를 결정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노사문화 창달 시급하다=노·사·정이 언급된 이슈들에 대해 지속적인 대화와 신뢰를 바탕으로 타협점을 찾아내지 못하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노사 관계가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올해는 신노사문화 창달이 더욱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신노사문화란 지식기반 정보화 사회에 걸맞는 의식·관행·제도 선진화를 통해 노사가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참여와 협력을 실천하고 자율과 책임을 다함으로써 미래의 가치를 창출하는 노사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얼핏 거창한 구호에 그칠 수 있는 신노사문화의 창출은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지난해 노동부의 신노사문화우수기업 선정대상에서 24개 회사가 선정된 대기업부문에서 통신회사로는 유일하게 수상한 파워콤 관계자는 “노사화합 실천 분야와 최고 경영자의 열린 경영에서 높은 점수를 인정받은 것 같다”면서 “인력운영실태 및 근무환경 조사를 위한 노사공동 TFT제도를 도입하여 그 결과를 근로조건개선 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며 그룹웨어에 ‘CEO와의 대화란’을 개설하고 매주 수요일을 ‘회장실 개방의 날’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는 등 다각도로 화합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해리 카츠 미 코넬대 교수는 “노사 화합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경력 개발, 현업 문제해결, 통합 갈등 관리, 단체교섭 등이 필요하다”며 “바람직한 노사 화합을 이루기 위해 먼저 회사가 노동조합에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며 모든 관리자가 노사 업무 전담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 노사화합 성공사례 - LG전자

 “미국의 1등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90년대 이후 파업이나 분규없이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노경협상을 일궈낸 공통점을 갖고 있다.LG전자도 국내에서 모범적인 노경관계를 이끌어 온 1등 기업답게 협력적이고 가치 창조적인 노경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사업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상호 협력적인 노경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6월 LG전자 및 계열사 노조대표들이 미국의 선진 노사 관계 벤치마킹을 위해 미 코넬대와 북미지역 최대 노동조합인 UAW(International Union, United Automobile,Aerospace & Agricultural Implement Workers of America) 등지를 방문했을 당시 LG전자 HR부문장 김영기 부사장이 피력한 소감이다.

 국내 기업들 중 성공적인 노사 관계를 창출해낸 1등 사례로 꼽히는 LG전자에는 ‘노사관계’라는 표현이 없다. 대신 ‘노경(勞經)관계’라는 말을 쓴다. 이는 노사관계라는 말이 갖는 상호 대립적이고 수직적인 의미를 대신해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勞(노조)’와 ‘經(경영자)’이 제 역할을 다함으로써 함께 가치를 창출한다는 신개념의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LG전자 고유의 용어다.

 노경관계라는 말이 정착되기까지 LG전자에도 나름대로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89년 노동자들의 요구가 일시에 분출한 대투쟁 당시 LG전자 창원공장의 사례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87년, 89년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노사분규는 매출 손실 6000억원, 파업손실 일수 50일로 회사를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당시 노사는 식당은 물론 화장실도 따로 따로 쓸 정도로 갈등과 불신의 골이 깊었다. 하지만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창원공장의 ‘일등조합원 일등 노동조합’의 구호가 적힌 노조 사무실은 경영핵심 부서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첫 걸음은 아침 출근길에서부터 시작됐다. 공장의 간부들이 매일 아침 20∼30명씩 일렬로 줄지어 서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 것. 아침 인사는 노사관계를 협력구도로 바꾸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었으며 이러한 자기 개혁과 솔선수범, 존중의 리더십이 노조 지도자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이같은 작은 실천에서부터 비롯된 꾸준한 노력으로 현재 LG전자의 노동조합은 경영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2010년도 글로벌 톱3 기업이라는 회사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올해 임금 및 단체교섭에서 장석춘 LG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해 임금을 동결한 관계로 올 임금인상율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경협력을 바탕으로 일구어낸 경영성과를 투명하게 성과급으로 보상하고 있는 경영진을 신뢰한다"며 "노조도 회사의 비전인 2010년도 글로벌 톱3 진입을 위한 경쟁력 강화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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