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신년특집]`IT 테스트베드` 코리아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산업의 세계적인 시험무대(테스트베드)로 변신하고 있다. 지난 90년대말이후 한국 IT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주목하면서 속속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렸던 외국계 IT업체들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우리나라 IT 인프라와 역동적인 시장환경을 활용, 글로벌 테스트베드 기지로 삼으려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물론 신제품과 첨단서비스에 민감하고 개방적인 우리나라 국민성도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동북아 한켠의 조그만 반도국이 다국적 IT기업들의 시험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시장의 테스트베드화라는 추세속에 근래 들어 두드러진 변화는 첨단기술의 개발·투자까지 진출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과 IT품목외에 일반 소비재 시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도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매력을 설파해 미래의 잠재 투자자를 적극 유치한다는 구상아래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추진중이다.

 정보통신부가 팔을 걷어 부치고 있는 유수 IT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 국내 유치작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 정부와 업계가 해외 IT 기업과 공동으로 R&D센터를 운영하면서, 차세대 핵심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그 성과물에 대해서는 각종 지적재산권도 공유한다는게 일차적인 목표다. 단순한 외자유치나 기술도입보다 한층 진일보한 협력모델인 셈이다. 이 또한 우리나라가 초고속 정보통신 인프라와 앞선 기술력, 역동적인 시장환경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테스트베드의 장점 덕분이다.

 세계 최대의 IT 기업인 IBM이 이미 작년 하반기 정통부와 협약을 맺고 올해부터 4년간 총 3200만달러를 투입해 국내 R&D센터를 공동 운영키로 했다. 연구개발 품목 또한 차세대 지능형 정보서비스로 일컫는 텔레매틱스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SW) 기술. IBM이나 인텔, MS, HP 등 내로라하는 IT 기업들 스스로도 미래 기술주도권 확보를 위해 핵심 원천기술의 공유를 꺼리는 유망 분야다. 더욱이 IBM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역량을 자랑하는 자사 왓슨연구소의 핵심 연구진 10명도 파견하기로 해 향후 그 성과물에 업계의 기대가 집중되고 있다. 이밖에 이미 R&D센터 설립을 공식화한 인텔을 비롯, MS·HP·썬 등 유수의 IT 기업들이 줄줄이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정통부는 해외 주요 IT기업들이 국내 R&D센터를 설립할 경우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겠다며 더욱 독려하고 있다. 오는 2007년께 건립될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내에 입주를 보장하고, R&D활동의 경우 관련 세제 등에서도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R&D센터 공동 유치외에 국내 기업들을 위한 테스트베드형 사업들도 활발하다. 국내에서 개발된 수출용 모바일 콘텐츠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모바일콘텐츠 테스트베드실’이 단적인 예다. 이는 지난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원장 서병문)이 개소한 시험장으로, 버추얼머신(VM) 기반의 게임·벨소리·애니메이션 등 다채로운 무선인터넷 콘텐츠를 테스트할 수 있다.

 근래 들어 이처럼 보다 발전적인 사업모델이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테스트베드의 경험은 더욱 많았다. 휴대폰·캠코더 등 첨단 디지털 제품 시장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휴대폰 산업의 경우 해외 업체들은 발빠른 제품개발속도와 민감한 시장반응이 그 배경이었다고 판단한다. 또한 디지털카메라·캠코더 등 첨단 품목들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양하고 시장환경도 더욱 역동적이라는 평가다. 올림푸스한국이 지금까지 단순 수입판매에서 탈피해 지난해 7월부터 메모리카드 및 카드리더를 국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 전자업체 JVC가 초소형·초경량 디지털캠코더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시한 것이나 독일 머크사가 LCD의 핵심소재의 연구개발(R&D) 센터를 국내에 설립한 것도 역시 같은 배경이다.

이같은 테스트베드 추세는 심지어 일반 소비재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 생활용품 기업인 P&G는 아기 기저귀 ‘큐티’, 섬유탈취제 ‘페브리제’, 전동 칫솔 ‘크레스트 스핀 브러쉬’ 등의 첫 시험대로 한국을 올렸고, 위스키 회사인 페르노리카는17년산 스카치 위스키인 ‘리볼브17’을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였다.

 정부의 숨은 노력도 우리나라 테스트베드 전략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산자부와 KOTRA는 해외 기업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전담 프로젝트매니저(PM)를 지정, 우선적으로 외국 업체들이 우리나라를 신상품 시험장으로 활용토록 유도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제주도는 가장 돋보이는 테스트베드 지역이다. 지난해말 제주도는 △전파환경이 깨끗한 지역적 특성 △국제자유도시 지정에 따른 국내외 연구소 입지 △관광정보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기존 관광산업과의 연계 등을 내세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차세대 방송·통신 산업의 테스트베드를 육성키로 했다고 선언했다. 육지와 단절된 지리적 여건과 무선전파국의 혼신을 적게 받는 특성, 산과 평지를 고루 갖춘 지형적 장점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서다. 제주도는 DMB 테스트베드를 기반으로 도내 첨단과학기술단지에 국내외 기업 연구소를 적극 유치, 세계적인 기술메카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우근민 지사는 “제주대 등 지역 산·학의 협력에 따라 구상됐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지역혁신을 일구고 지역의 인재들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지역의 첨단산업 요구가 많아지면 지방정부는 이를 중앙정부 등에 적극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국제자유도시를 경제자유특구에 포함시키는 등 지방정부로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생각이다.”고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 해외기업 테스트베드 전략 - 한국루슨트

 “한국은 이미 차세대 네트워크(NGN) 분야는 물론, 3G를 포함한 무선 부문에서 세계적 선두주자로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통신 분야에서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어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여부를 통해 세계 무대 진출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한국루슨트 양춘경 사장은 우리나라 통신시장의 테스트베드 위상을 각별하게 평가했다. 한국루슨트는 특히 통신산업이 국내 경제성장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효자 업종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침체를 이어온 통신산업은 이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함으로써 다시 한번 재도약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한국루슨트는 테스트베드 전략을 위해 통신사업자와 장비 공급업체의 진정한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투자비를 줄이려는 사업자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새로운 성장전략에 대한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사업자들은 기존 망을 최대한 활용해 차세대 네트워크로 진화시켜 나가면서 고부가가치의 멀티 서비스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발굴하고자 한다. 장비공급업체들은 네트워크의 기획·설계·컨설팅·설치·유지·보수 등 제반 서비스 체제를 갖춰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루슨트는 통신시장에서 테스트베드 전략이 결국 사업자와 장비업계의 실질적인 협업속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럴때 국내 통신시장에서 입증받은 국산 솔루션을 글로벌 기업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출시장에도 적극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루슨트는 국내 통신사업자의 서비스 수용 움직임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상호보조를 맞추는데 최대 주안점을 두고 있다. 유망기술을 보유한 국내 중소기업과 협력을 강화해 업계 전반의 연구개발(R&D) 역량을 향상시키는 전략도 구사할 계획이다. 실제로 루슨트는 한국 벨연구소를 통해 사업자들의 고유 기능을 독자 개발하는 한편, 중국·브라질 등지로 진출하기 위해 본사 기술연구소와 CDMA 시스템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 해외기업 테스트베드 전략 - 올림푸스한국

 올림푸스는 지난 6월 일본과 미국, 네덜란드, 한국 등 네곳에서 디지털SLR 카메라 출시 발표를 동시에 가졌다. 올림푸스가 처음으로 전문가용 제품을 선보이면서 한국이 포함된 것은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이었다. 방일석 사장은 “한국은 IT 인프라 기반이 잘 갖춰져 첨단 가전제품의 곧바로 적용해 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또한 국민성도 얼리어댑터의 성향이 강해 신제품이 출시되면 소비자 반응도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올림푸스는 국내 최대의 디카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씨인사이드’와 주요 동호회 운영을 지원할 정도로 한국시장의 매력에 심취하고 있다. 올림푸스는 동호회의 실사대회를 지원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신제품 체험행사와 유명 사진작가 초빙전을 개최하는 등 디지털카메라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이들이 신제품의 장단점을 분석해 체험기를 인터넷에 올림으로써 제품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급력 또한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걸음 나아가 올림푸스는 우리나라를 중국시장의 허브이자 생산기지로 삼기 위해 자회사인 ‘ODNK’를 설립, 디지털카메라 관련 솔루션·주변기기를 직접 공급하고 있다.

제품외에 마케팅 측면에서도 한국시장의 중요성을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던 대표적인 광고문구 ‘마이디지털스토리’가 대표적인 사례. 덕분에 올림푸스는 디지털카메라라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고,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제품의 기능보다는 문화와 감성으로 발전시켜냈다. 광고와 홍보, 프로모션 등 모든 마케팅 활동에 적용한 것이다. 그 결과 국내 시장 점유율은 30% 이상을 기록했고, 이같은 성공사례를 중국 시장까지 전파하고 있다. 마이디지털스토리라는 마케팅 캠페인이 중국 시장에 선보인지 10개월여만에 판매대수가 무려 13배나 늘었다는 사실은 특히 고무적이다. 올림푸스한국은 국내 시장 테스트베드 전략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해 786억원의 매출이 올해는 1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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