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직장과 함께 현대인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아마 자동차일 것이다.
자동차는 이제 단순한 수송 수단이 아니라 1초를 쪼개 시간을 써야 하는 바쁜 비즈니스맨들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는 장소이며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안전을 위한 기준은 더욱 엄격해졌으며 환경 보존을 위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즉 자동차는 정보기술(IT)과 콘텐츠, 기계 공학과 환경 공학, 인체 공학이 한데 만나는 접점이며 인간의 모든 욕구를 고려해야 하는 미래의 최고 부가가치 산업인 것이다.
이 미래형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미국·일본·독일 등 세계의 산업 강국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나라가 이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기왕에 어렵게 성취한 세계 자동차 산업계에서의 위치도 상실하고 미래형 자동차 시장의 열매도 맛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미래형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은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다. 바로 세계적 수준의 IT 기술력과 전국을 거미줄처럼 엮은 인터넷 인프라이다. 자동차 내부에서, 또 자동차와 외부를 연결하는 각종 서비스들에서 IT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현실은 바로 한국에겐 기회이다.
미래의 자동차는 더 이상 내연기관과 실린더와 바퀴로 이루어진 굴뚝 산업만의 산물이 아니다. 이미 전체 자동차 부품에서 전기 전자장치의 비율이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급 중대형 차종에서는 35%를 넘어서고 있다. 즉 자동차는 이제 ‘가장 비싼 전자제품’인 것이다.
자동차에는 각종 전자센서가 부착되는 것을 비롯, 액티브 서스펜션, 시프트 바이 와이어, 액티브 크루징 컨트롤, 전자 밸브 제어, 스티어 바이 와이어 등 각종 전자제어기술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또 자동차에 각종 교통정보, 뉴스, 엔터테인먼트 등을 인터넷으로 전달하는 텔레매틱스도 실용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동차에도 자사의 윈도 운용체계(OS)를 심는다는 야심이며 미국 정부는 교통 사고를 줄이기 위해 최근 고속도로에서 주행 중인 차량에 위험 신호를 전송하는 ‘스마트 도로’ 개발 계획을 밝혔다.
자동차 산업의 이러한 경향은 ‘IT 강국’이라는 우리의 장점을 살려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세계 기업들의 미래형 자동차 개발 경쟁에 우리가 다소 뒤진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계와 학계, 정부가 힘을 합쳐 이를 따라잡으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산·학·연 공동으로 ‘미래형 자동차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래형 자동차 경쟁에 시동을 걸었다. 도로정보시스템(ITS)과 텔레매틱스 등 디지털 차량 개발을 목표로 하는 이 사업은 매년 80억∼100억원을 투입하며 총 3단계를 거쳐 2012년 완료된다.
정부는 또 세계적 e카를 만들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차세대 자동차 전자기술 인력양성 사업’을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이 사업은 자동차의 전자화 경향에 대비, 산업 현장에 부족한 전자기계 관련 전문 인력 등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 필요한 첨단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완성차·부품 업계를 한데 모은 ‘자동차 클러스터’를 구성, 국내 자동차 생산 기술과 IT 기술을 결합, 동북아 허브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 단지는 텔레매틱스, 인터넷, ITS, 지리정보시스템(GIS) 등 IT와 자동차의 융합에 집중하게 된다.
◆ 연료전지차 상용화 `전쟁`
세계 완성차업계가 저공해·고연비를 실현하는 ‘연료전지 자동차(Fuel Cell Vehicle)’ 상용화를 두고 막바지 총성없는 전쟁에 들어갔다.
연료전지는 수소(천연가스·메탄올·가솔린 등)와 산소의 화학에너지를 전기화학 반응을 이용해 연소과정 없이 전기 및 열로 직접 변환시키는 장치다. 현재 열효율이 55∼60%(양이온 교환막형 연료전지시스템의 경우)에 달해 전기차 수준의 환경친화성과 정숙성,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능가하는 연료효율, 가솔린차 수준의 연료공급 편의성 및 주행 성능을 겸비하고 있다.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면 물 외의 배기가스가 없고 액체연료를 사용할 경우에도 이산화탄소를 제외한다면 무공해에 가깝다.
현재 일본 업체들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세계 최초로 연료전지차를 개발해낸 도요타는 지난해 ‘수소’를 연료로 한 연료전지차의 시판을 개시했다. 혼다 역시 거의 같은 시기에 정부 기관을 상대로 ‘리스 판매’를 개시하면서 일본 업계 주도의 연료전지차 시대를 알렸다.
포드는 94년부터 개발에 착수, 프로토 개발을 완료했고 압축수소연료를 기본으로 한 양산에 착수했다. 올해를 상용화 초기시점으로 정하고 500대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메탄올 개질기를 이용한 양산차를 내년 4만대, 2006년까지 10만대 생산할 예정이다. GM도 내년 상용화를 위해 프로토를 개발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폴크스바겐이 2005년까지 메탄올 연료차를 양산한다는 계획 아래 현재 시험차를 개발하는 단계에 와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지난 90년부터 전기자동차 개발에 뛰어든 데 이어 98년 이를 토대로 본격적인 연료전지차 개발에 나서며 세계 경쟁의 한복판에 합류했다. 현대자동차는 2000년 메탄올 연료전지시스템과 60㎾ 세계급 Ni-MH배터리로 구성된 연료전지 배터리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세계 7번째로 개발했다. 현대자동차 김동진 사장은 “세계 자동차 업계가 차세대 자동차로서 연료전지차의 환경친화성·연료효율성·연료공급 편리성에 주목하고 상용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며 “내후년 무렵이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 본격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U카 프로젝트(유럽)’ ‘ACE(일본)’ ‘수소·연료전지실증 프로젝트(JHFC, 일본 주도 각국 완성차업체 6사)’ 등 범정부·범권역별 공동개발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94년부터 상무부·교통부·에너지연구부·환경부 등 정부부처와 빅3·국립연구소 등이 공동으로 참여한 ‘PNGV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오는 2005년까지 추진되는 이 프로젝트에는 연간 2억7000만달러(약 3400억원)가 소요된다. 유럽연합은 98년부터 각국 정부와 8개 자동차업체가 힘을 합쳐 ‘EU카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연료전지·경량화 소재 등에 수백억원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경제산업성이 주도해 도요타·혼다·닛산 등 자국내 완성차업체들과 해외 6개 업체가 참여한 ‘JHFC’를 추진중이다.
우리나라는 산업자원부와 현대자동차·대우자동차·자동차부품연구원 등이 지난해 끝난 ‘G7 연료전지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사업’에 이어 ‘미래형 자동차 개발계획’에 나섰다. 이 사업에서는 연료전지시스템 및 핵심부품 기술 등에 총 2400여억원이 투입된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 기고 - 친환경차 개발 정부도 나서야
남충우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부회장
과거 자동차와 환경은 그다지 밀접한 관계가 아니었지만 80년대 후반부터는 그 상황이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프레온가스에 의한 오존층 파괴와 이산화탄소 등이 원인이 된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세계 각국은 지구보호를 위해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제적인 환경규제의 강화는 환경문제를 야기시키는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것으로 자동차산업도 예외일 수가 없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친환경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대표적인 친환경자동차로 하이브리드차와 연료전지차가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전기모터를 활용해 출발한 뒤 가속이 붙으면 휘발유를, 고속주행 때는 휘발유와 전기모터를 동시에 쓰는 2개의 동력원으로 구동되는 차를 말한다. 연료전지 자동차는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무공해 자동차다.
미국, 일본, 유럽 등 각국 정부는 세계적 공급과잉과 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친환경차 연구개발(R&D)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보조금 지급 및 세제지원 등 인센티브 제도도 이미 10년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차세대 연료전지차 개발 및 인프라 사업에 향후 5년 동안 9000억원을 지원하며 자동차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유럽은 대규모 연구개발 프로젝트인 연료 3ℓ로 100km 주행이 가능한 3 Car 사업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개발사업인 ‘하이젬(HYZEM : Hybrid Vehicles for Zero Emission Mobility)’을 추진해왔다. 또 최근에는 연료전지차, 전기차 등의 개발을 위한 ‘미래의 자동차 프로그램’도 추진 중이다.
일본은 ‘고효율 청정에너지 자동차 개발사업(97∼03년)’을 추진하고 있으며 저공해 차량 구입시 보조금 지급, 취득세 및 자동차세 감면, 소득세 및 법인세 감면, 저리융자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국내 최대의 자동차 관련 연구개발 프로젝트인 ‘미래형 자동차 기술개발 사업’의 1차년도(2002년) 정부 출연금이 82억원이었지만 이 가운데 하이브리드 및 연료전지차 등 친환경차 개발관련 지원액은 고작 4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친환경차 개발을 위해서는 초기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리스크 또한 크다. 차량의 가격 경쟁력도 일정 규모 이상의 양산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수익 창출이 어렵기 때문에 자동차업계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독자 기술력 확보를 위해 정부 차원의 ‘대규모 R&D 프로젝트’ 추진이 시급하다. 세제 및 차량보급 지원도 절실하다. 친환경차에 대해서는 특소세, 등록세, 취득세, 자동차세 등을 면제해주고, 특히 개발 초기에는 일반 차량보다 가격이 월등히 비싸기 때문에 양산되기까지는 여러가지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반도체와 휴대폰 등이 정부의 지원과 업계의 노력으로 오늘날 세계 일류 수출상품으로 자리매김했듯이 이번에는 자동차가 국민소득 2만불의 ‘견인차’역할을 수행해나갈 수 있도록 친환경차 개발에 정부와 자동차업계가 함께 뛰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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