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화산업이 안에서나 밖에서나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등 블록버스터들이 잇따라 상영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 점유율은 50%을 넘어섰으며 온라인게임업체들은 1000억원 이상의 로열티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중국에서 불 붙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일본,동남아시아,미국 등으로 점차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전문지 할리우드리포터가 꼽은 ‘미디어 분야 인터내셔널 파워 50인’에 우리나라 문화계 인사들을이 대거 올라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영화감독 출신인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 CJ 엔터테인먼트 이강복 전 대표,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의 김정상 사장, 쇼박스 정태성 본부장 등 4명이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전세계 영화산업을 주름잡는 미국이 한국 영화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달라진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분단국가의 열악한 조건과 시련 속에서도 고속성장을 이룩한 코리아가 이제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거듭나고 있다. 한류 현상은 그동안 동북아 문화적 변방에 머물렀던 우리가 문화 생산자, 신문화 창출 전진기지로 승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한류의 시작=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국내 인기가수에 중국인이 열광하고 한국 드라마에 베트남이 울고 웃는 현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고려대학교 김정수 행정학과 교수는 한류 열풍의 원인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경쟁력이라는 내적요인과 동아시아 시대 정치 경제적 변화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중국, 베트남에서 급속히 추진된 경제성장으로 요구된 문화적 공백을 채워 줄 콘텐츠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러한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미국이나 한국 대중문화가 각광받게 된 것은 비슷한 동양의 문화권이라는 데서 오는 공감대가 컸기 때문이다. 또 일본 문화의 경우 과거 국가간 아픈 역사 때문에 생긴 불편한 감정으로 적극 수용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여기에 개인사업자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한국정부의 장려 정책도 한류 열풍에 적지 않은 뒷받침을 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원조 한류 스타였던 댄스 그룹 H.O.T의 음반을 중국에 출시했던 김윤호 우전소프트 사장를 비롯해 미디어 플러스 박영교, 정연준 부사장, 가수 `보아`를 일본도 열광하는 스타로 키운 연예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사장은 한류의 숨은 주역들이다.
중국에서의 한류는 97년 중국 CCTV를 통해 방영됐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로 시작돼 댄스 그룹 H.O.T에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웬만한 한국 드라마라면 불법 VCD가 나돌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특히 한국 온라인게임은 세계 굴지의 게임개발사를 물리치고 중국 인기 게임차트 상위 순위를 독식하며 중국 대륙을 휩쓸고 있다.
대만에서 한류 문화는 열풍에 가깝다.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가 2000년 총통 선거전에서 한 후보의 캠페인송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H.O.T나 S.E,S 등의 대규모 콘서트도 잇따라 성공했다. ‘불꽃’ ‘가을동화’ 에서 시작된 한국드라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으며 국내 연예인 스캔들이 한국보다 먼저 나기도 하는 이변도 벌어지고 있다. 99년 드라마 ‘의가형제’가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베트남의 한류열풍은 시작됐다.
◇저변이 더욱 확대된 한류=최근 한류 현상은 `다변화`로 요약될 수 있다. 중국 대도시와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보였던 한류 신드롬은 일본, 미국 등으로 확산돼가는 추세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전혁택 국제마케팅팀장은 "중국에서는 더이상 한류라는 말을 쓰지도 않는다. 한류는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한류의 진원지인 중국에서는 한국 문화를 즐기는 층이 대도시 중심에서 사천성, 광동성까지 확장됐다. 연령층도 10대 위주에서 20∼30대로 크게 넓어지고 있다. 불법복제의 천국답게 우리나라 영화와 드라마는 시차없이 중국에서 VCD로 유통되고 있다. 최근 50% 시청률을 넘어선 MBC 드라마 `대장금`도 중국 곳곳에서 VCD로 구해 볼 수 있을 정도다.
한류 전문가들은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한류 현상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처음에는 화교권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를 즐겼으나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본토인들도 드라마 ‘겨울 연가’ 등 한국 대중문화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문명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한국 문화가 동남아시아를 경유해 이슬람 문화의 근원지인 아랍 지역에서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강국 일본에서 한국 문화의 성공사례가 속속 등장하는 것도 한류 저변 확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기 가수 보아가 일본 오리콘 차트에 1위에 랭크되거나 100만장 음반 판매하는 등 대중 문화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으며 원빈, 장동건 등 한국 스타들을 보기 위해 일본 관광객들의 한국행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의 한국 방문도 잦아지고 있다. 한국 영화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국영화 시나리오를 사들이거나 한국 영화에 투자를 단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코미디언 출신 영화제작자 심형래가 만드는 영화 ‘D-워’에는 미국 락우드사가 샘플 동영상과 시나리오만 보고 1500만달러 투자를 결정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 올 콘텐츠 수출대상 받은 `그라비티`
올해 2003 콘텐츠 수출대상을 받은 그라비티는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로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를 모두 평정한 회사다. 밝고 귀여운 캐릭터와 파스텔의 배경을 바탕으로 특징인 `라그나로크`는 전세계 10여개국 1500만 유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라비티는 지난해부터 수출 전선을 본격 가동해 올해 1분기 대만, 홍콩, 일본, 태국에서 ‘라그나로크’ 상용화를 본격 개시했으며 2분기에는 미국, 중국에서 상용화, 3분기에는 필리핀에서 상용화,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지역 오픈 베타 서비스를 실시했다. 4분기에는 유럽까지 진출, 스위스·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터키 지역에서 서비스 준비를 마쳤다.
온라인게임의 인기도를 나타내는 동시접속자수만 살펴보면 ‘라그나로크’의 활약은 더욱 놀랍다. 중국 13만명, 일본 8만3천명, 대만 26만명, 태국 7만명으로 각 나라별 동시접속자수를 다 합치면 56만명이 넘는다. 마니아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게임 사용자 스스로 `라그나로크 페스티벌`이라는 대규모 행사까지 자체적으로 여는 등 라그나로크가 일본 젊은이들의 문화 코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라그나로크가 대한민국 대표 글로벌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라비티 김정률 회장의 대답은 ‘문화적 공감대’를 인기 배경 1순위로 꼽았다.
김 회장은 "일본,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의 공통된 문화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우수한 품질,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이처럼 열광적인 반응이 올지는 처음에는 예상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해외 파트너사에도 최고의 조건과 대우를 당당히 요구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라그나로크’의 선풍적인 인기는 바로 회사 매출로도 이어졌다. 올해 그라비티의 총 매출액은 370여억원. 이중 56%가 바로 순익으로 평가되는 해외 로열티 수입이다.
그라비티는 이같은 저력을 바탕으로 2004년에는 ‘세계 속의 라그나로크’라는 기치 아래 대대적인 글로벌 PR 마케팅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글로벌 멀티운영 플랫폼을 통한 전략적인 비즈니스 수행방안을 수행하는 한편, 온라인게임을 근간으로 하는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 ‘원소스 멀티유즈’의 성공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라그라로크’는 인형, 담요 등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출시했으며 내년에는 일본업체와 제휴를 맺고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돌입할 예정이다. 유럽 5개국에서 상용 서비스에 들어가는 한편, 브라질, 인도 등 제3세계에도 본격 진출한다는 목표다. 그라비티의 내년 매출 목표는 750억원. 해외 매출 비중도 전체 매출의 70%대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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