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신년특집]신뢰와 화합으로

 현실은 갈등과 경쟁으로 얼룩지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상생의 정치는 실종돼 이전투구를 반복하고 있으며 침체된 경기는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의 원동력인 기업은 일부 수출 주도형 분야를 제외하고는 기운이 빠져 있다.

 그래도 희망은 찾아야 한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이 왔다’라는 말을 생각할 여유가 없지만 다시 시작한다는 초심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많은 과제가 있지만 그 중에서 기업에게는 신뢰와 화합이 필요하다.

 신뢰와 화합이란 말 자체가 마치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나온 정부의 구호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두 가지 단어야말로 지금의 기업 경영에 반드시 필요한 키워드다.

 지난해 초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기업은 일년 내내 노사 갈등에 시달려 왔고, 급기야 연말에 와서는 불법 대선자금 제공이라는 정경유착의 폐부를 드러냈다. 또 각종 기업 비리로 인해 소비자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것이 현재 한국 기업이 신뢰와 화합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신뢰도는 기업 가치의 척도=짐 콜린스의 베스트셀러인 ‘굿 투 그레이트(Good to Great)’를 보면 신뢰경영이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지가 잘 나타나 있다.

 짐 콜린스는 미국 기업들의 신뢰도를 조사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150개 우량 기업을 선정해 해당기업의 임직원들과 집중적인 인터뷰 및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 기업은 모두 높은 급여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고 복리후생도 훌륭했다.

 실제 조사 결과 좋은(Good) 기업들 사이에 훌륭한(Great) 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기준은 직원의 신뢰도였다. 훌륭한 기업의 직원이 보여준 열정은 단지 직업 이상의 애착이고 회사가 제공하는 것은 적정한 수준의 급여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복리 이상의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 포천지가 뽑는 100대 기업의 선발 역할을 맡았던 로버트 레버링은 매년 신뢰도에 의거한 평가기준인 레버링 지수로 100대 기업을 별도로 선정한다. 이 순위 내에 드는 기업은 재무상황도 뛰어나다. 보통 기업 규모로 평가하는 S&P 5백대 기업에 비해 레버링 지수로 뽑힌 기업은 주당순이익률(EPS)이 훨씬 높았으며 이익률과 주가는 각각 2배와 3배가 높았다.

 이처럼 신뢰경영은 기업 가치의 척도로 자리잡고 있지만 국내 기업은 선진국에 비해 신뢰경영에 대한 관심이 낮다. 엘테크신뢰경영연구소가 국내 35개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레버링의 신뢰 경영 지수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평균 신뢰도는 30% 내외로 나타났다. 이는 선진기업의 신뢰도인 50%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이 가운데 몇몇 기업의 신뢰경영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내 온라인을 이용한 우수한 의사소통시스템을 구축, 직원 누구라도 익명으로 경영층에 궁금한 사안을 질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가능한 한 즉시 이뤄지며 다른 직원이 과거의 질문과 답변에 대해 검색할 수 있다.

 한국바스프는 ‘오픈 도어 정책’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이루는 방법으로 직원이 자유롭게 의견개진할 수 있도록 회장실 출입문을 늘 열어둔다. 그 결과 한국바스프는 외환위기 시기에도 30% 이상의 성장을 이뤄냈다.

 ◇화합 경영은 시너지 창출로 직결=2003년은 노사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진 해다. 연초 공공부문의 파업을 시작으로 연말 잇따른 노동자 분신에 이르기까지 노사 갈등은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물론 사회적 불신의 벽을 높였다. 이러한 양상에서 최근 화합 경영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적대적 노사 관계나 기업간의 일방적 종속 관계를 지양하고 성장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성숙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분위기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이미지를 세우는 것뿐 아니라 실질적인 시너지 효과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

 지난 91년 설립된 양지식품은 직원수 38명에 불과한 작은 기업이지만 화합경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회사는 2000년 노사화합 선포식을 개최한 이래 분기별로 1년에 네 차례 노사협의회와 경영설명회를 열어 경영에 대한 전반적 사항을 직원에게 공개하고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성과배분제도를 실시해 근로자들에게 회사의 잉여이익을 분배하는 것은 물론 정기산행, 야유회, 노사합심 환경정화 등을 벌이고 있으며 인적자원 개발을 위해 교육훈련비를 전액 회사에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승진기준도 성별이나 학력보다는 업무 능력에 비중을 두는 공정한 인사관리를 하고 있으며 각종 제안제도를 활용, 2001년에는 9건에 3500만원의 포상을 했고 2002년에는 11건에 46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2001년 이래 이직률 0%를 기록하고 있으며 매년 20% 이상의 꾸준한 매출 및 이익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작년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선정한 대한민국 기업이미지대상에서 화합경영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중외제약도 화합경영의 좋은 사례다. 이 회사의 사훈은 정도경영, 인간존중, 노사화합으로 지난 87년 노조가 설립된 뒤, 단 한번도 쟁의가 발생하지 않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중외제약과 공동으로 화합경영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세아특수강은 노조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켰으며 회사 측은 성과에 대한 적극적 보상을 통해 화합경영을 실현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 기고 - 협력은 믿음에서부터 출발

김영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 간의 신뢰와 협력이 없다면 그 조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동시에 조직과 조직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이 없이는 조직은 물론 조직이 속한 사회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작게는 이웃끼리 크게는 국가간에 이르기까지 협력이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보다 나은 결과를 추구하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협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서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며 이러한 믿음은 협력 전후의 모든 과정이 투명해야 구축되는 것이다.

 기업경영에 있어서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가 있다면 단연 노사간의 협력과 기업끼리의 협력이다. 오늘날 기업을 경영하는 데에 있어서 이러한 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게 잡아도 절반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당사자간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며 이는 비단 기업경영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2004년에도 우리 사회와 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의 하나가 노사갈등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의 투자자들이 이처럼 노사관계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는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한번 노사갈등이 불거지면 극한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아직 노사문화가 정착이 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협상이나 협력이 신속하게 적절한 선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간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기업간의 협력도 예전에는 단순히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차원의 협력이었으나 현대사회에서는 기업의 활동무대가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기술과 서비스의 복합화와 기술개발의 고비용화 등으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까닭에 예전과는 다른 차원의 협력이 이뤄진다.

 전략적 제휴나 아웃소싱 등도 이러한 기업간 협력의 한 유형이다. 예전처럼 동종기업끼리의 협력이나 조립 대기업과 부품 중소기업 간의 협력 등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 필요한 경우에는 업종과 규모와 상관없이 다양한 종류의 협력이 이뤄진다.

 오늘날의 기업세계는 제품과 서비스간의 경쟁이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의 생태계간의 경쟁이기 때문에 이러한 협력이 예전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서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것은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관심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서로를 충분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협력을 추구하기 때문이며 그 근저에는 투명성이라는 문제가 항상 깔려 있다. 당사자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제도도 한 몫을 하지만 이러한 제도도 당사자간 합의하에 만들어진다고 볼 때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결국 노사간, 기업간, 정부와 노조, 정부와 기업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의 협력은 신뢰가 바탕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신뢰는 모든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나를 이해해주기보다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들은 대개 세 가지 점에서 공통적인 특성을 보인다.

 최고경영자(CEO)의 능력, 기업조직의 슬림화와 기민성, 노사간의 유대 등이다. 노사관계가 안정되지 않으면 경영자가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며 기업의 조직개편 또는 다른 기업과의 다양한 협력 등도 경영자와 근로자간의 협력이 없이는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이렇게 보면 신뢰를 통한 진정한 의미의 협력이 기업경영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상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라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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