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레전자 정문식 사장(6)

 2000년대 들어 각종 첨단 정보통신 기기들이 슬림화, 고성능화되면서 정보를 표시해 주는 디스플레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이에 따라 본인도 디스플레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으며 특히 LCD의 활용성에 주목하게 됐다. 그럴 즈음에 이레전자가 LCD 모니터를 생산해 주고 있던 D사로부터 LCD 사업부문을 인수하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D사는 국내에서 LCD 모니터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않아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LCD에 애착을 가지고 있던 나는 양산체제를 갖추는데 신규투자가 필요했지만 향후 시장성을 보고 인수키로 결정했다.

 개발인원을 신규로 투입해 사용자 편의성을 최대한 중시하고 품질을 높였다. 그리고 금융권에 최적화된 모델로 기존의 모델을 리모델링해 출시했다. 그러자 금융권에서 소요되는 물량이 예상보다 빨리 많은 규모의 주문을 받아 단기간 내에 LCD 모니터 사업이 안정화할 수 있었다.

 업계에서는 비교적 후발 주자였지만 품질과 사용자 중심적인 설계 및 철저한 서비스 마인드로 점진적으로 자체 브랜드인 ‘슬림아트’의 인지도를 높여갔다. 15인치 모델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시점에서 PC방이 컴퓨터와 모니터를 대량으로 쓰고 있다는 점에 착안을 해 시장조사에 착수했다. 전국적으로 2만2000여개가 있어 모니터 전체 수량으로 치면 엄청난 시장이라는 것을 파악, PC방 전용 모델을 출시했다. 이때는 게임용으로 LCD 모니터가 부적합한 것으로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생각하고 있을 시점이었는데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PC방 시장에서 독점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뛰어들고 가격을 내리자 중소기업인 우리로서는 위기를 맞게 됐다. 그래서 또 다른 사업으로 추진한 것이 PDP였다. 지난 98년 미국의 한 전시회에서 보았던 PDP TV는 내 가슴을 하루종일 뛰게 만들었던 새로운 기기였다. PDP TV개발은 기존 어떠한 프로젝트보다 많은 비용과 연구개발이 필요하며 엄청난 모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과감히 투자, 2001년 말께 PDP 제품의 개발을 완료 했다.

 그러나 문제는 제품 개발이 아니라 판매였다. TV의 경우 중소기업에게는 진입장벽이 모니터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적인 대형 점포망이 있는 회사와 협력하여 PB 상품으로 제품을 공급키로 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또 한편으로는 기업체용으로 개발, 틈새시장을 개척했다. 그러나 PDP의 경우 주 타깃시장은 해외였다.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해외 가전 전시회에 참여했고 바이어들을 만나 수출의 물꼬를 열었다. 42인치 한가지 모델만으로 수출을 시작했으나 50인치와 60인치 제품을 추가로 개발하고 이를 알리자, 이 제품에 대해서도 공급요청이 들어왔다. PDP TV는 모험이었으나 나를 믿고 헌신적으로 봉사한 직원들 덕분으로 현재와 같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david@erae.com

 2003년 한국전자전의 이레전자 부스. PDP를 이용해 터널을 만들어 관람객들로부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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