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칼럼]제대혈, 제대로 이해를

 출산 때 탯줄에서 혈액을 채취해 냉동 보관하는 제대혈(탯줄 혈액) 보관 서비스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기존 제대혈 보관 전문업체 외에 병원, 제약사, IT기업까지 자회사를 설립하며 일제히 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제대혈의 유용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데 기인한 것이다.

 제대혈 속에는 골수와 마찬가지로 ‘줄기세포’라는 특별한 재생 능력을 가진 세포가 풍부하기 때문에 백혈병, 암, 면역질환, 대사질환 등 조혈계 계통의 세포가 병들었을 때 이를 완치시킬 수 있는 ‘조혈모세포이식’에 필요하다. 또 일종의 맞춤 ‘세포치료제’로 보관해 두면 아기와 직계가족이 난치병에 걸렸을 때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제대혈은 골수와 달리 필요할 때 뽑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출산 직후 채취, 특수한 기술로 치료에 필요한 세포들을 분리하고 냉동 보호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제대혈은행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골수기증을 받기 매우 어려운 국내 현실에서 제대혈을 확보하려는 가족 중심의 사고방식이 제대혈 보관 규모를 더욱 키워 현재 출산 산모의 15%에 달하는 수가 가족 제대혈은행을 찾고 있다.

 그러나 국내 골수기증 부족의 현실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제대혈은행 운영은 일부 왜곡된 면이 있고, 심한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태가 비록 초기 급성장하는 과도기에 나타나는 한시적인 일이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이를 파악하고 대처하려는 전문가 그룹의 인식과 노력이 없다면 환자는 물론 일반 가족, 업계, 학계가 모두 불가피하게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제대혈 가족은행 붐이 일고 업계가 과열되자 일부에선 마치 가족은행 때문에 공여은행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는 것처럼 오해의 말들이 나오곤 한다.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가족은행에 신청하지 말고 환자들을 위해 모두 기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이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가 결여된 일반적인 이상론에 가까운 이야기다.

 국내에 공여은행이 부족한 것은 기증하려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여은행을 운영할만한 자금과 인력을 갖춘 전문가 그룹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여은행은 비영리로 운영돼야 하는데 이는 제대혈 보관에 드는 모든 예산을 정부 등에서 확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15%에 이르는 가족은행 보관 산모가 있어도 나머지 85%에 이르는 제대혈은 버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기증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제대혈을 가져가 치료제로 보관해 놓을 수 있는 예산과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복지부와 학회가 주체가 돼 국내 환자를 위한 제대혈 공여은행 설립과 관련 예산확보를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제대혈 보관 서비스는 인간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의학분야다. 생명공학적 윤리의식과 전문성, 기술력의 3박자가 고루 갖춰졌을 때 비로소 이 사업에 뛰어들 기초가 갖춰지는 셈이다. 가족은행이든, 공여은행이든 결국 환자에게 이식되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철저히 검증이 필요하다.

 ◆ 메디포스트 양윤선사장 ysyang@medi-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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