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권 분쟁에 국내 우수기술 `겨울잠`

대기업서 각종 소송 제기…사업 존폐 위기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간 지적재산권 분쟁으로 국내에서 개발한 우수 기술이 오히려 사장될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애드링시스템·애니셀·자화전자 등 기술력을 갖춘 중소·벤처기업들이 대기업들과의 각종 소송에 휘말리면서 사업의 존립 위기로 치닫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분쟁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확대되는 사례도 나타나면서 국가 대외 신인도 및 한국기업들의 이미지마저 크게 훼손되고 있다.

 ◇늘어가는 지재권 분쟁=SK텔레콤·KTF·LG텔레콤은 지난 3월 특허심판원에 애드링시스템(대표 박원섭)이 가진 ‘통신 단말기 및 이를 이용한 광고방법’ 특허가 너무 광범위해 인정할 수 없다며 특허등록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지난해 11월 애드링시스템이 SK텔레콤의 통화연결음(컬러링) 서비스가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SK텔레콤과 대표이사를 서울지검에 고소한 사건에 대한 대응조치다.

 진동모터 전문업체인 자화전자도 최근 삼성전기로부터 휴대폰용 부품인 ‘편평형 진동모터’ 관련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당했다. 자화전자측은 삼성전기가 삼성전자에 진동모터 주문량을 100% 공급해오던 중 지난해 6월께 자화전자가 삼성전자 납품권을 획득하면서 삼성전기의 수주물량이 10∼20% 가량 줄어들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밝히고 있다.

 리튬전지 회사인 애니셀(대표 임영우)은 최근 4년여간의 법정 공방 끝에 삼성전자와의 애니콜 상표권 소송에서 승리했지만 회사는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이외에도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간 지적재산권 분쟁은 끊이질 않고 있다.

 ◇왜 일어나나=지재권에 대한 권리주장이 주요인이다. 일견 대기업·중소벤처기업 모두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지재권 분쟁을 벌일 경우 파장은 간단하지 않다. 중소벤처기업은 분쟁이 일어날 경우 시간·자금·인력·기술과의 전쟁을 겪게 된다. 이 모든 여건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대기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분쟁 자체의 어려움은 물론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분쟁으로 인한 시간적·물적 손실을 중소·벤처기업들이 감당하지 못해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송 휴유증 ‘너무 크다’=중소벤처기업에게 소송은 ‘이겨도 지는 게임’이다. 애드링은 특허등록 무효 심판 결정을 떠나 PCT(국제특허협약) 국제예비심사를 통과해 세계 31개국에 특허를 출원, 베트남·싱가포르·인도네시아에서 등록한 특허가 무용지물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일본·중국 등에서의 신규 사업 추진도 차질을 빚고 있다. 또 특허심판원의 판결에서 이긴다고 해도 이동통신사업자측에서 특허법원, 대법원 등 상고할 것이 확실해 앞으로 분쟁이 얼마간 지속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애니셀처럼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4년여간의 소송 등으로 인해 거덜이 났다. 전문인력들도 회사를 떠났고 자금 지원을 하던 금융권은 물론 심지어 정부 기관까지 등을 돌렸다. ‘시간 끌면 결국 죽는다’는 것은 이미 대기업과의 분쟁에 대한 금언과도 같다.

 특허법인 원전의 손태식 이사는 “오랜 분쟁으로 인한 중소·벤처기업들의 사업포기는 해당 기업의 손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우수한 기술들을 사장시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대안은 없나=무분별한 소송의 경우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간 소송은 분쟁 자체로 끝나지 않고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우수한 기술력이 사장됨으로 인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는 수출이나 로열티 수입이 사라지는 것이다.

 벤처기업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 하나로 손을 잡고 나가도 부족할 판에 우리기업끼리 싸우고 있다”며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중소기업과 윈윈할 수 있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중소벤처기업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소송 제한은 물론 소송기간을 단축시키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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