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업그레이드](6)허술한 기술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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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장부품 보호용 접착제업체들은 최근 모임을 자주 갖는다. 다국적 부품보호접착제 업체인 헨켈록타이트가 지난 6월 수원지방법원에 제소한 특허침해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언더필 접착제’는 낙하충격·접합단자부식 등을 막고 칩·기판의 열팽창 계수 차이로 인한 응력을 최소화해 실장 부품의 신뢰성을 향상시켜 카메라폰 등 다기능·초소형 완제품에 적합한 차세대 전자재료로 시장 잠재력이 매우 높다. 피소된 S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언더필 접착제 조성 비율은 비슷하겠지만 첨가물이 서로 달라 특허 침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허에 대한 지식과 대응에 미숙한 터라 ‘결국은 특허침해 소송에 말려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한국헨켈록타이트 장철성 부장은 “한국에 특허 등록한 언더필접착제 조성비율에 대한 권리 보호를 위해 제소했다”며 “제소중인 S·W사의 제품을 채용한 휴대폰업체에 대해서도 판매금지 가처분신청 등을 검토중”이라고 말해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허 비상은 백색LED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 원천특허를 대거 보유한 일본 니치아가 각각 한국업체들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제소를 준비중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독자기술의 개발 및 관리’가 기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기술 중심의 경쟁체제는 하나의 아이템만으로 세계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무한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국내외 제조기업들은 독자 기술과 특허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성장기반을 다진다. 하지만 국내에서 일부 대기업만 그렇다. 상당수 기업들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 기반을 조성해 놓고도 핵심 부품 및 생산 기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체계적인 지적재산권 확보와 관리는 물론 확보해해야 할 지적재산권 또는 특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산업자원부 자본재통상팀 성윤모과장은 “제조업 업그레이드는 기본적으로 독자기술 및 확보된 특허가 기반이 돼야 한다”며 “특허는 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설명하는 중요 변수로 사용된다”고 강조했다.

 외부의 특허 압력에 대한 대응도 문제지만 우리 독자기술의 해외 유출도 큰 문제다.

 산업보안연구소 김종길 소장은 “우리나라 전체 기술유출 사례중 IT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99년 42.5%에서 지난해에는 87.5%로 급증했다”며 “특히 유출된 IT의 15%만 공개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기술 유출은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술유출 경로는 주로 인력스카우트와 공동연구·시찰·연수생, 관계자 매수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복사·팩스·이메일·해킹 등도 주요 유출 경로로 파악돼 보안에 취약한 중소기업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초 국내 한 LCD제조업체 직원 5명이 핵심 기술을 중국업체에 유출시키려 한 혐의로 전격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액연봉 제의에 따라 일부 기술을 복사해 넘겨준 것이다. 이 사건 이전에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IT의 해외유출 사례는 끊이지 않았었다. 최근에는 휴대전화·LCD 등 우리가 핵심 기술을 확보한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기술 유출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이직이 활발해지고 카메라폰 같은 첨단기기의 등장으로 이러한 위험은 한층 고조됐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대응은 미흡하다. 정확한 실태 파악도 잘 안된다. 정부가 최근 ‘IT기술 해외유출 방지협의회’를 만들었지만 막연한 의견만 나눌 뿐이다.

 더 큰 딜레마는 지재권에 취약한 중소기업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WTO나 미국 등과의 통상 마찰이 우려돼서다.

 한 지재권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정부는 통상마찰을 구실로 골치아픈 로열티 문제를 회피하려하고 대기업은 사익에만 급급하다”며 “공동 협상창구를 만들어 협상력을 높이려 하지 않는 중소기업도 문제지만 중국처럼 지재권을 개별적인 이해를 떠나 국익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의식전환이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발국의 지재권 침해는 우리기업을 괴롭히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한 학습보조기기는 위조상품이 중국에서 버젓이 유통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인력과 비용 문제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영업손실을 감수한다.

 또 다른 업체는 자사의 중국 현지법인 생산제품과 위조상품이 제3국에 나란히 수출되자 아연실색하고 있다. KOTRA 해외조사팀 엄성필팀징은 “해외투자 한국기업들의 지난해 해외현지 지재권 피해 관련 접수 건수가 2001년 18건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33건을 기록했다”며 “안이하게 대처할 경우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상표·기업 이미지에 큰 손상과 피해가 우려되는만큼 공세적인 대응책을 강구해 시장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교용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 위원장은 “치열한 생존의 틈바구니에서 분명하게 일정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산업 발전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무엇보다 필요하나 무형 재산인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우리가 IT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 IT산업의 국제 동향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주력해 온 산업관련 각종 법령·제도의 정착과 함께 지재권보호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팀>

◆ 대안은 없나 - `IT 지재권풀` 제도에 희망

 지적재산권 관리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중소 제조업체들에겐 내년 상반기에 시행될 ‘IT지적재산권 풀(pool)’ 제도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IT지적재산권 풀’ 제도란 국책연구기관과 중소업체가 IT지적재산을 서로 공유해 활용하는 일종의 공동 특허 활용제도로다. 한 중소 업체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개의 특허가 필요할 경우 각각의 특허권자와 개별적으로 기술료 협상을 벌이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마련했다.

 정보통신부는 이 제도를 시행하면 중소 업체는 국책연구기관 등의 우수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기술료 관련, 국내·외 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나아가 중소업체들의 지적재산권 관리 문제도 크게 해소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높다. 중소업체들은 자금이 모자라 기술 가치평가 등 자산화를 위한 전문가를 둘 여유가 없어 그동안 지적재산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연구인력에 대한 지재권 인센티브를 시행하는 중소 IT기업이 거의 전무할 정도로 지재권에 대한 중요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고 있더라도 적절한 대책을 수립치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지적재산협회에 따르면 협회 20여 회원사(기업·연구소·대학)중에서 지재권 담당 직원을 둔 곳은 전체의 50% 정도이며 그중에서도 지재권만을 전담하는 직원을 따로 둔 회사는 5%에 불과하다.

 IT지재권 풀제도는 국책 연구기관에도 이점이 있다. 중소 업체와의 기술거래를 활발히 할 수 있게 돼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기술 개발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함으로써 기술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다.

 정보통신지적재산협회는 내년 4월께 단말기,디지털 TV 등에 대한 5000여건의 특허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기술료 협상이 가능한 특허를 선별해 ‘중소 업체와 국책기관’ 또는 ‘중소업체와 중소업체’간 특허 사용 중재에 나설 계획이다.

◆ "전담인력 확보 급선무"

황태경 ITIPA 부장

 “최소한 지재권 전담인력을 확보해야 하고 연구인력에 대한 기술권리화 마인드 고취와 인센티브 부여 등이 필요합니다.”

 황태경 정보통신지적재산협회(ITIPA) 총괄부장은 “국내 중소 IT제조기업들은 보안관리 미흡과 내부자나 해외 현지 파트너나 채용인에 의한 기술유출 등 지재권 관리에 어려움을 많다.”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효과적인 기술 유출방지 대책으로 △철저한 관리·감독 및 직원 보안교육 강화 △비밀보호 책임자 임명 및 각 부서별 담당자 지정 △인터넷 및 문서 보안관리 시스템 도입 등을 꼽았다.

 또한 중소 IT기업들이 지재권 발굴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가 매우 취약한 실정이므로 정부 차원의 지재권 교육 활성화와 제도적 지원 및 계도 활동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등 후발국 진출시 겪는 기술유출 분쟁과 관련해 계약시 기술 및 지재권 보호를 위한 규정을 명문화하고 생산시설·장비에 체화된 기술유출 대책을 수립하며, 현지 파트너의 출입자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충고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