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업그레이드](5)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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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학생들이 지원하질 않아요.” 서울여대 정보통신대학 컴퓨터공학과 이기한 교수는 내년에 학부생 정원을 220명에서 180명으로 대폭 줄일 계획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 학과의 정원 감축은 미달사태를 미리 막아보기 위한 대학측의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대학원생 지원수도 예전에 학기당 20∼30명에 달했지만 요즘 들어선 15명도 안된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나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취업문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생산기술연구원은 지난 5월께 금형·용접 등 분야 박사 및 석사급 인력을 채용하는 데 무려 50대 1의 경쟁을 보였다. 생기원 한성호 본부장은 “해외에서 학위를 딴 고급인력들은 갈 데가 없다”며 “연구비에 제한이 많은 만큼 정부 출연 연구소들은 대부분 고급인력을 흡수할 여력이 없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특히 금형·표면처리 등 생기반 분야는 부품·완성품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3D산업으로 인식돼, 기피현상이 특히 심하다고 그는 말했다.

 생기반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해 고급인력을 채용할 수도 없고 고급인력은 대기업만을 선호, 유휴인력이 남아돌아도 생기반 산업계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자재료소재산업은 국내 제조업의 핵심 기반이면서 부가가치도 높아 전략 산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분야도 심각한 인력난으로 성장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LCD 등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우 폭발적으로 성장하나 핵심 원재료를 상당 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대기업들은 경쟁적으로 LCD 및 PDP 핵심 소재의 국산화를 시도하면서 인재를 뽑고 있다. 문제는 쓸만한 재목이 없다는 점이다.

 전자재료산업 특성상 물리·응용화학·전자·재료공학 등을 통합, 종합적인 마인드를 지녀 첨단 제품을 개발할 인재가 필요하나 이러한 인재는커녕 교육을 받는 것도 국내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영역을 넘나드는 교육 커리큘럼도 거의 없어 현 교육 인프라로는 질과 양 모두 부족하다.

 최근 전자재료부문에 그룹의 사활을 건 코오롱 전자재료연구소 박종민 소장은 “올해만 인터넷을 통해 공개적으로 여덟 차례에 걸쳐 채용을 시도했지만 인재 충원 수준이 만족할 만한 수위는 아니다”라며 “그룹 차원에서 전자재료사업 활성화를 위해 기술연구원에 대규모 인력을 채용하려 하나 적당한 인력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건국대 액정연구단 김용배 교수도 “디스플레이 산업은 해마다 2000∼3000명이 필요하며 석박사급 전문 인력만도 500여명이 필요하다”며 “반면 국내 관련 인력은 특정 학과 인력만으론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산업 발전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리는 기업도 적지 않다.

 제일모직 인사담당자들은 물론 경영자들도 사람을 찾으려 최근 미국과 일본 등지를 수시로 드나든다.

 ‘핵심연구인력 선발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통해 해외의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질을 따지기 전에 일단 전문인력 수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그나마 사람을 찾을 수 있는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인력 부족에 시달리면서 기업간 스카우트전쟁도 뜨겁다.

 국내 전자재료 전문 중소기업 D사의 경우는 업계 인력 수요에 비해 회사의 대우가 못 미쳐 다른 기업으로의 이적이 많아지자 과거 사원을 대상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고 스카우트 대상 업체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D사가 과거 직원을 대상으로 마구잡이로 소송을 걸어 이직을 막으려 하나 한계가 있다”며 “이 문제도 결국 인력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것인 만큼 대학에서 질과 양에서 우수한 인재를 공급하는 방법 외에는 근본적인 대책은 있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물론 일부 대기업과 대학들은 자발적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해 인재를 중장기적으로 양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극히 일부분으로 전체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공계 기피 등으로 인력 양성 여건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주류를 이루는 일선 제조업체들은 ‘필요충분조건’인 인재 확보부터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태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결국 사람인데 산·학·연이나 국책 연구개발프로젝트가 대부분 상용기술의 개발이라는 결과에만 관심을 둘 뿐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연동시키느냐에 대해선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고리를 끊지 않고선 기술 선점을 통해 회사를 ‘업그레이드’시키자는 제조업체들의 희망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특별기획팀>

◆ 중소기업에 인력 수혈 `산업기술대`

 지난 98년 산업자원부가 설립한 산업기술대학교(총장 최홍건)엔 캠퍼스가 따로 없다. 맞닿은 시화·반월 등 단지내 1만3000여 산업체 생산 현장이 바로 캠퍼스다

 이 대학교는 중소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이공계 인력을 수혈하는 데 있어 커다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졸업생을 두 번 배출했는 데 취업률 100%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졸업 100% 취업을 자신, 취업 재수생을 둔 대학교 관계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박한 임금·출퇴근 등 대기업 보다 열악한 근로 조건 탓에 마땅한 인력 찾기가 힘든 시화·반월 단지 소재 중소 업체들로선 그나마 한 시름을 덜고 있다.

 산기대의 이러한 비결은 지역 산업과 밀착된 이공계 인력들을 양성하는 교육체계를 들수 있다.

 기계·금속 등 10개 학과와 1160개 가족회사(제휴업체)를 일대일 형태로 짝을 짓고 학생들은 산업 현장에서 실습 수업을 통해 부족한 점을 몸으로 체험하고 학교로 돌아와 이를 보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자연스럽게 양성된다.

 최홍건 산기대 총장은 “재학생들은 산업 현장을 캠퍼스로, 기업들은 학교를 기업 연구소쯤으로 여기고 있다”며 “이로 인해 타 대학보다 산·학 협력이 탄탄하고 특히 졸업생들은 취업시 신출내기가 아닌 경력 직원으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산업기술대학은 산업흐름에 발맞춰 발빠르게 커리큘럼을 매년 변경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수요자(가족회사) 위주의 맞춤식 교육을 벌여, 현장에 바로 투입할 때 최신 기술을 몸에 익힌 학생을 적기에 공급하기 위함이다.

 또 100여명의 교수들은 각각 10∼20개 업체씩 분담해 맡고 있다. 내년엔 3000여곳으로 늘려 연구개발 투자 여력이 없는 중소 업체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기술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그야 말로 교수들이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뛰여야 할 판이다.

 그래서 한국산업기술대학교에선 강의만 하는 교수는 ‘그야말로 능력없는 교수’로 낙인 찍힌다고 한다. 기본적인 강의 의무 시간을 폐지함으로써 교수들이 산업 현장을 돌아다닐 여유 시간을 주고 매달 교수들의 지원 실적을 시험성적처럼 발표, 교수들의 희비가 엇갈린다고 한다.

◆중소업체의 인력 수급 모범 `삼성전기`

 삼성전기는 라이프디자인 센터를 운영, 경기도 소재 중소 업체의 고급인력에 대한 숨통을 한껏 열어주고 있다. ‘라이프디자인센터’란 삼성전기 퇴직희망 직원의 재취업을 지원해주는 조직이다.

 센터는 경기도 중소기업지원센터·창업지원컨설팅 등과 협조, 관리·기술·생산 등 분야에서 중소 업체들이 겪는 고급 인력 구인난을 해소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희망퇴직자와 중소 업체 인사담당자가 1대 1로 심층 개인면담을 나누고 해당 중소기업에 재취업하기 전 직무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추가적인 교육비용을 전액 부담한다.

 삼성전기 입장에선 이러한 조직 운영을 통해 자연스럽게 조직내 인력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고 중소기업에 자사의 고급 인력을 배출, 양사간 윈윈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삼성전기는 이 제도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면 자사 협력 업체들에게 대기업의 품질 및 관리시스템을 고스란히 전수함으로써 품질 및 조직 관리 등 능력이 한 단계 상승, 결국 삼성전기의 품질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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