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가 전기로 작동한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메인보드, 그래픽카드, CPU,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램, 사운드카드, 플로피 드라이브, 키보드, 마우스 등 늘어놓기도 숨이 벅찬 수많은 PC 부품 가운데 전기 없이 작동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PC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원공급장치는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중요성은 더할 나위없다. 요즘 시장에서 많이 팔리는 전원공급장치 9가지를 모아 테스트해 보았다.
심장이 우리 몸 곳곳에 피를 보내는 것처럼 컴퓨터의 각 부품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심장 역할을 하는 것이 ‘전원공급장치’다. 그렇다면 가정에 들어오는 전기를 그대로 쓰지 않고 전원공급장치가 필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가정에 들어오는 전기는 교류(AC)다. 교류는 양극(+)과 음극(-)이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서로 극성을 바꾸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전기 콘센트에 플러그를 그냥 꽂으나 반 바퀴 돌려 꽂으나 마찬가지다. 양극과 음극이 계속해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PC 부품은 직류를 사용한다. 직류는 위상이 같아 양극과 음극의 극성이 바뀌지 않는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전지를 예로 들어보자. 볼록하게 튀어나온 곳이 양극, 반대쪽인 평평한 곳은 음극인 것처럼 하나는 계속 양극이고 다른 하나는 계속 음극인 성질을 유지한다.
선풍기의 모터나 백열등처럼 단순한 기계들은 교류 전기를 그대로 이용한다. 그러나 PC를 이루는 주요 부품인 트랜지스터나 IC 같은 반도체는 직류로 작동한다. 따라서 가정에 들어오는 높은 전압의 교류 전기는 반도체를 제어하기 적당한 낮은 전압의 직류로 바꿔야 한다. 전원공급장치는 바로 이 역할을 해 준다.
최근에는 PC에서 쓰는 부품들의 전력 소모량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전원공급장치는 250W가 많이 팔리고 300W면 넉넉했지만, 요즘은 300W로도 마음 푹 놓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예를 들어 최근 브레인박스에서 테스트했던 AMD의 새로운 CPU인 애슬론 64는 300W 전원공급장치를 썼을 때 아예 부팅이 되지 않는 일도 있었다. 인텔이 곧 내놓을 예정인 코드명 ‘프레스콧’ 역시 애슬론 64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전력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300W도 힘이 부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벤치마크 테스트는 350W급 전원공급장치 9가지를 골라 시험해 보았다. 전원공급장치는 CPU나 그래픽카드처럼 프로그램 몇가지를 돌려 테스트할 수 있는 부품이 아니다. 특히 전기 자체는 개인이 테스트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것이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지를 따지는 효율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려면 수천만원이 넘는 전문 계측장비가 필요하다. 이번 테스트는 특별히 전문 연구소에 의뢰해 진행했다.
전원공급장치의 전기적 성능을 알아보려고 소비 전력과 효율을 알아보았고, 출력 전압이 얼마나 고른지, 과전압이나 과전류가 흐를 때 다른 부품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전원을 차단하는지도 확인했다. 이것들을 알아보는 데는 각기 다른 테스트 장비가 필요하다.
전원공급장치 벤치마크테스트에서 소음 테스트를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성능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소음이다. PC에서 소음을 내는 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원공급장치인 만큼 좋은 제품이란 평가를 받으려면 성능은 물론 소음도 적어야 한다. 테스트는 스피커 기술 연구 센터의 무향실에서 진행했다. 무향실은 벽면의 소리 반사가 없는 공간으로서 소리의 진원지에서 귀에 직접 전달되는 소리만 들을 수 있다.
테스트한 전원공급장치의 제조사는 델타, 세븐팀, 시소닉, 안텍, 에너맥스, 인헨스, 하이파워 히로이치, FSP그룹 등 9개사고 모두 외국회사다. 저마다 안정적인 전원 공급과 효과적인 냉각 구조를 자랑으로 내세우는 제품이다. 총출력은 360W인 하이파워사 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350W다. 콤바인드 출력은 3.3V와 5V 출력을 합한 최대 출력을 말하고, +5Vs는 PC가 대기모드일 때 필요한 전압을 말한다. 최근에는 12V 사용이 증가하면서 콤바인드 출력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전체적인 평가결과 시소닉이 성능, 소음, 고객지원에서 단연 돋보였다. 시소닉은 전원공급장치에서 가장 중요한 효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효율이 낮으면 낭비한 전력이 열로 빠져나와 온도가 높아지고, 결국 팬 회전 속도를 높여 소음을 일으킨다. 시소닉이 소음 테스트에서도 가장 좋은 점수를 얻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품 사용을 하면서 애프터서비스 기간 3년 동안에 소비자 과실로 인한 불량도 책임지고 교환해주는 것은 자신감이 없다면 힘든일이다. 여기에 한글 설명서와 케이블 타이, 헤리컬 튜브까지 담는 세심함까지 갖춰 아무 망설임 없이 가장 뛰어난 350W 전원공급장치로 뽑을 수 있었다. 에너맥스도 이에 뒤지지 않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애프터서비스 등에서 시소닉을 따라오지 못했다.
<분석=송혁재 nimda@brainbox.co.kr 정리=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
◆ 제품별 평가
△ 델타 DPS-350NB : 델타가 만든 전원공급장치는 성능과 안정성으로 세계 유명 PC 제조업체 사이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생김새가 화려하지도 냉각팬을 여러 개 달지도 않아 눈길을 끌만한 부분은 없지만 속이 꽉찼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원공급장치 케이스를 열고 안에 들은 부품을 보면 얼마나 기본기가 잘 잡혀있는지 알 수 있다. 클럭이나 내부 구조가 성능을 좌우하는 반도체와 달리 안에 들은 부품의 품질이 곧 전원공급장치의 품질이다. 델타사의 것은 속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부품이 가득 들어차 있다.
△ 세븐팀 ST-352HLP : 세븐팀은 써본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타고 이름을 얻은 제조업체로써 3대 전원공급장치 제조 업체로 알려졌다. ‘ST-352HLP’는 +3V와 +5V의 출력을 더한 콤바인드 출력에서 220와트를 출력해 거저 얻은 명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제품을 보면 전원 입력부의 정리가 잘돼 있고, 콘덴서와 정류 회로, 방열판 사이로 갖가지 부품이 빼곡하게 차있다. 공기를 빨아들이는 곳에 소음이 적은 아다(ADDA)사의 팬을 썼다.
△ 스파클 FSP350-60BTP : 스파클은 절전 효율이 높고, 전자파가 적은 게 장점이다. APFC(active power factor correction)로 효율을 끌어올려 전력 소모량을 줄였다. 때문에 오랜 시간 켜두는 PC에 알맞다. 홀더 퓨즈를 써서 과전류에도 시스템을 보호할 수 있고 갈아 끼우기 편하다. 노이즈 킬러라는 재주가 있어 팬 회전수를 온도에 따라 조절한다. 케이블이 조금 어지럽게 연결되어 있고 면적이 넓은 방열판을 썼다. 아래에는 대용량 콘덴서가 보인다. 공기가 흐는 방향과 방열판 주름 방향이 일치한다.
△ 시소닉 SS-350AGX : 스마트 사일런스 팬컨트롤러 기능을 사용하고 있는 시소닉은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스로 팬 회전수를 조절하는 컨트롤러와 떨림을 없애는 디자인으로 소음이 적은 장점이 있다. 효율이 높아 전기 소모량이 적을 뿐 아니라 열이 많이 나지 않는다. 케이블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헤리컬 튜브(닥터케이블)와 케이블 타이를 준다. 3년 무상 애프터서비스도 높이 살만한 자랑이다. 전원 입력부가 깔끔하고, 방열판을 T자 모양으로 세워 다른 부품과 열간섭이 일어나지 않는다.
△ 안텍 SL350 : 안텍사는 최근 들어 이름이 알려진 제조업체다. 뛰어난 전력공급 능력을 지닌 것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고급형 전원공급장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보통 전원공급장치의 3.3V, 5V 출력은 모두 합해도 220W를 넘지 않는다. 이것은 출력이 230W나 되어서 확장 장치를 많이 달아도 전원이 모자라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미국에서 설계한 변압 정류 능력이 뛰어난 회로를 썼고, 팬이 2개라서 온도가 높게 올라가는 일이 없다. 내부 90mm 팬으로 케이스 내부 공기를 빨아들여 회로의 열을 식힌다.
△ 에너맥스 EG365P-VE : 안정성이 자랑인 에너맥스는 성능도 성능이지만 듀얼 팬으로 꾸민 통풍 구조도 빼어나다. 팬 하나는 PC 내부 열기를 빨아들이고 다른 하나가 이를 밖으로 내보내 시스템 전체 온도까지 낮출 수 있다. 팬 컨트롤러를 달아 소음을 조절할 수 있게 만든 것도 눈에 띈다. 뛰어난 냉각 능력과 저소음 그리고 안정적인 전원 공급이라는 3박자가 잘 맞은 제품이다. 전원 스위치 옆에 팬 컨트롤러를 두었고, 케이블 끝부분을 모두 튜브로 감아놓았다.
△ 인헨스 ENP-0735 : 테스트에 참가한 다른 제품에 비해 이름값이 떨어지지만 안정적으로 전원을 공급해야 하는 서버에도 쓸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성능을 지녔다. 값도 다른 것보다 싼 편이라 실속파에게 인기가 좋다. 부품이 잘 정돈돼 있어 열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변압 부품의 품질도 좋아 3.3V와 5V를 합한 전원 출력이 220W에 이른다. 다른 값 비싼 전원공급장치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는 출력이다. 아쉬운 점은 350W치고는 커넥터 수가 적은 편이다.
△ 하이파워 HPC-360 : 하이파워사에서 만든 전원공급장치로서 한미아이앤씨에서 들여와 판다. 볼 베어링 팬을 쓰고, 온도 센서를 달아 스스로 팬 회전 속도를 조절한다. HP, 인텔, 에이서, 마이크론 등에서 이 회사의 전원공급장치를 쓸 만큼 인정받은 제조회사다. 내부 구조는 케이블 납땜 부위를 좀더 깔끔하게 마감하지 않은 게 아쉽지만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 히로이치 HEC-350VD-T : HEC-350VD-T는 케이블에 피복을 입혀 전원 케이블 정리가 쉽다. 케이스 안의 더워진 공기를 90mm 팬이 빨아들여 뒤쪽에 80mm 팬으로 내뿜는 듀얼 팬 구조다. 인텔과 AMD 안정 규격을 인증 받았고, 감지 센서를 달아 온도가 올라가면 팬의 속도가 증가한다. 내부는 조금 어지럽게 보이긴 해도 케이블 납땜한 곳은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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