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수의 앨범을 구해서 듣는 이유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소리에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다른 데 돈을 쓰지 굳이 음반을 사지는 않는다. 따라서 앨범을 만들 때 가수, 즉 아티스트는 자신의 사고를 솔직히 드러내야 하고 그것을 알맞은 소리로 담아내야 한다. 때로는 진지하고 실험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영국의 아티스트 스팅(Sting)은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테러사건을 목격하고 나서 정체성의 고민에 시달렸다. 하필 그날은 자신의 이탈리아 소재 별장 정원에서 200명의 팬을 상대로 공연을 하기로 된 날이었다. 아마도 기분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착잡했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도대체 내가 뭘하고 있는 거지? 노래를 창작하는 게 실제로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하는 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큰 사건을 겪으면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무기력증에 빠진다. 음악의 힘이 너무 없어 보이는 것이다. 테러사건에 이어 이라크전이 터졌을 때 스팅의 고민은 극에 달했다. 사람이 죽어가고 세상의 혼돈이 극에 달해가고 있을 때 한가롭게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로 비쳐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음악은 아티스트 자신이 진지한 입장을 개진할 때 ‘치유와 비전’의 기능을 갖는 것. 스팅의 새 앨범 ‘신성한 사랑(Sacred love)’은 이 점에서 테러사건과 이라크전을 바라보는 그의 고뇌가 가져온 산물이다. ‘과연 나의 음악으로 듣는 사람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가.’
그는 수록곡 ‘이번 전쟁(This war)’에서 ‘당신은 순진한 양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늑대의 입을 가지고 있어. 당신은 동정심으로 가득하다고 말하지만 당신의 심장은 차갑게 굳어있어’라며 전쟁의 부도덕성을 질타한다. 그러면서 ‘미래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과거의 상처만 드러냈다’는 내용의 곡 ‘미래를 잊어요(Forget about the future)’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한다.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두려움이다.
멀리는 테러와 전쟁이 있었지만 가깝게도 그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앨범을 만들기 바로 직전, 25년지기였으며 매니저였던 킴 터너라는 친구를 잃은 것이다. 그의 사망은 스팅으로 하여금 다시금 자신의 위치에 대해 반추하게 만들었다. ‘사자의 로프(Dead man’s rope)’라는 곡에 나타난 스팅의 헌사는 절절하면서도 희망적이다. ‘공허함에서 벗어나, 슬픔에서 벗어나, 어제로부터 벗어나, 내일로 걸어가네···’
결국 그가 내리는 결론은 ‘신성한 사랑’이다. 사랑만이 갈등과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앨범의 주제를 집약한 타이틀곡에서 스팅은 ‘모든 남자, 모든 여자, 모든 인종, 모든 나라가 이것에서 비롯되었죠. 그건 신성한 사랑!’이라고 외친다. 가장 좋은 반응이 예상되는 노래 ‘너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Whenever I say your name)’ 역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힙합 여가수 메리 제이 블라이지와 호흡을 맞춘 이 곡에서 ‘세상이 너무나 이상하게 보여도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두 사람의 처절한 절규는 짜릿한 전율을 부른다.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스팅은 그간 추구해온 월드뮤직의 장치를 지키면서 때로는 블루스와 재즈로, 더러는 전자 테크노로 사운드 실험을 계속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팅의 메시지와 사운드를 경청한다. 그의 앨범이 기획의 상술이 아닌 아티스트 고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다. 가수의 얼굴과 몸짓이 메시지를 압도해버린 이 시대에 스팅의 새 앨범은 다시금 음악의 본령을 일깨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음악을 듣는가?’
임진모(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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