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매치스틱 맨

 상업적인 극장 시스템 아래서 수십 년 동안 영화를 만들며 아직도 현역으로 생존하고 있는 감독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동시대 대중들의 무의식을 꿰뚫어 보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소비산업의 하나인 영화로서 대중들과 꾸준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스타일과 감각의 혁신, 이야기 구조의 내적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기꾼 ‘로이(니콜라스 케이지 분)’는 파트너인 ‘프랭크(샘 록웰 분)’와 함께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세상물정에 어두운 노인들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서민층을 사기쳐서 빼앗은 돈으로 살아가지만, 결벽증 환자다. 사무실 전화기를 매일 아침 꼭 소독해야 하고, 속옷이나 양말은 꼭 정해진 자리에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로이는 규칙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꺼리는 광장공포증, 대인기피증, 강박증 증세를 보인다. 정신과 의사는 로이의 그런 증세가 죄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규칙적인 생활은 자신이 그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안젤라(앨리슨 로만 분)’가 등장하면서 마구잡이로 뒤섞여버린다. 그는 오래 전에 이혼했는데 그 당시 전처는 임신 중이었다. 혼자 살면서 나름대로 삶의 규칙을 세워둔 로이의 일상은 이제 뿌리칠 수 없는 딸의 존재에 의해 엉망이 되어버린다. 딸이 곁에 있어서 행복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삶이 뒤엉키는 것에 로이는 고통스러워한다.

 ‘매치스틱 맨’은 지적 추리를 자극하는 드라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스토리 구조는, 그러나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돌연 놀라운 반전을 맹수의 발톱처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관객들의 아드레날린은 활화산처럼 분출되며 캐릭터들은 생동감 있게 화면 가득 터져나갈 듯이 부풀어 오른다.

 불쌍한 사람들 등 쳐먹으며 살아가는 사기꾼에게 갑자기 나타난 14살 딸. 이런 식의 만남이 가져오는 화학반응에 대해 할리우드는 오랜 노하우를 갖고 있다. 관객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요소가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적당히 주류에서 일탈한, 그러나 아주 미워할 수는 없는 범법자 주인공이 가족을 만나, 조금씩 주류 질서 안으로 회귀한다는 내용은 보수적 관객층과 현실에의 일탈 욕망을 가진 관객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로이 역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알콜중독자 이후 연민과 페이소스를 불러 일으키는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로이의 파트너인 프랭크 역의 샘 록웰 역시 ‘컨페션’으로 베를린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여세를 몰아 독특하고 개성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아쉬운 것은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경계가 지나치게 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로이의 사기꾼 파트너인 프랭크의 역할이 전반부에 너무 미미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최소한의 복선이 조금 더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기꾼들의 활약은 관객들에게 영화보는 재미를 주지만,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딸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중년남자의 모습이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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