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처음 일본의 도쿄대학교를 방문하였을 때다. 본관을 지키는 수위가 방문자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해 당시 근무하던 과학기술연구소의 연구원이라고 썼더니 “리사아차!”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나 아직도 수위 아저씨의 감탄사와 존경의 눈빛은 잊혀 지지를 않는다. 무엇이 일본 사람들에게 연구원을 존경하게 만들었을까.
일본의 국민 영웅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과학기술 연구원들에게 희망을 준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다나카 고이치는 한 중소 기업 연구소에서 단백질 분석을 위한 레이저 광선의 충격 완충제를 발견하였다. 글리세린과 코발트를 실수로 섞고 비싼 코발트 미세분말이 아까워 사용했다고 하는 데 흔치 않지만 있을 수 있는 우연이다.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노이즈로 착각할 수 있는 미세한 차이를 놓치지 않는 세밀함과 철저함에 있다. 실패를 하더라도 이유를 끝까지 밝히는 ‘다행이도’ 정신을 갖고 있어 가능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에 대해 동경과 긍지를 지니고 있다”며 임원직 승진을 거부했다. 이 ‘다나카 정신’이 바로 25년 전에 내가 궁금해 했던 일본 사람들이 존경하는 장인정신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이공계 출신자의 공직진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중앙 공무원 가운데 이공계 출신 비율이 3급 24%, 2급 18.2%, 1급 9.7%로 고위직으로 갈수록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이공계의 국가 정책 결정력을 약화시키고 이공계 천시의 근본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공계의 공무원 임용확대나 기술고시와 행정고시의 통합 등의 과감한 조치는 그 동안 누적되어 온 불합리성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인 국가 정책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하려면 마지막 단계에서도 근본적으로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 중에 인과 관계가 혼동되고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정책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의 공직 비율이 적은 것은 분명 바람직 하지 않고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가 시정되기 위한 근본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비율만 끌어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불가피성이 너무 강조되어 결과만을 단시일 내에 무리하게 맞추다 보면 일부에서 우려하듯이 이공계 대학에서의 고시 열풍 등 필연적인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의 결과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른 후의 원상복귀가 될 수 있으며 애당초에 목표하였던 이공계에 대한 사회의 존경과 대접이 크게 후퇴할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보면 이공계 위기는 이공계 교육의 위기다. 만약 이공계 대학교에서 다나카도 키우고 사회의 리더도 키웠다면 이공계 졸업자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을까.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이공계 교육을 방치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질 낮은 이공계 학생들을 양산하고, 이들이 기술혁신에 의한 부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니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자질이 부족하니 리더가 되지 못하고, 이를 보고 자란 어린 새싹들은 희망이 없는 이공계를 기피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중간에서 끊어서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또 어린 새싹들을 일시적으로 유인하는 계책은 효과는 물론 윤리적으로도 문제다. 핵심은 제대로 된 인재를 키우기 위한 이공계 교육에 달려있고, 이는 대학의 지속적인 혁신 노력과 함께 질적인 이공계 교육을 위한 국가차원의 획기적인 투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기술혁신에 달려있다. 우리가 꼭 필요한 이공계 인력은 기술 혁신을 리드하여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끌고 갈 인재이다. 우리에게는 다나카도 필요하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회의 리더도 필요하다. 이러한 면에서 모처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이공계 위기 대책이 일시적인 방편이 아니라 지속성 있는 정책으로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그 길만이 우리나라가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sjpark@kgsm.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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