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창작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제약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나리오의 부재를 지적한다.
실사영화 쪽을 보면 많은 시나리오가 주인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는 작가들이 제작된 작품을 갖고 제작자에게 제안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작업도 자신의 몫이 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어디까지나 시나리오는 시나리오 전문가가 쓰고 이 작품을 감독, 제작자와 협의하면서 내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실사 영화에 비해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작품이 많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가 실사 시장에 비해 작다는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애니메이션의 제작기법이라든가 제작 과정을 이해해야 좋은 시나리오가 나온다는 것이 정설이다.
더 나아가 작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영상을 간략한 스토리보드로 그려 보충으로 제시하는 것도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는 팔방미인이 돼야 하는가’하는 부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제작 시스템을 이해하고 간략한 그림으로 상황묘사를 제시하는 것 정도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또한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문제가 아니다. 못 그리는 그림이라도 상황을 충실히 전달할 수 있다면 되는 것이다.
지난 해 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가 가진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법 특강에서 ‘둘리’의 아빠 김수정 화백은 “좋은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위해 우선 얘기꺼리가 충분한 캐릭터를 창출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 상황을 설정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전반적인 시나리오 구성에서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미 많은 이야기꺼리를 갖고 있는 캐릭터를 창출해 낸다면 이야기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것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를 육성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에서는 작년부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강의를 하고 있다. 보다 바람직한 것은 영화진흥위원회나 서울종합예술학교와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1년 과정의 상설코스로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이지만 깊은 관심을 가져주는 기관이 없어 아쉽다. 그간 협회에서는 각계에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아카데미 설립을 제안했으나 구체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현재 창작 애니메이션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가 공유됐다면 이제는 대안을 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아카데미의 설립은 시급하고도 명분 있는 사업이다. 가능한 빠른 시간에 아카데미의 설립이 이뤄지기를 기원해 본다.
<이교정·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전무 lkc@koreaanim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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