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신공룡 NTT그룹이 ‘계륵’을 버리지 못하고 덥석 집어삼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인터넷기업 변신을 서두르는 NTT그룹이 인터넷프로토콜(IP)전화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도박,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IP전화 이용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일반전화 이용자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일본 일반전화 가입자수 6000만명을 보유한 사실상 독점사업자 NTT동·서일본의 IP전화 시장진출은 ‘제살 깎아먹기’ 즉 ‘자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독점사업자의 고민=정부가 여전히 50% 가까운 지분을 가지고 있는 NTT그룹은 이동통신, ADSL, FTTH 등 모든 종류의 통신시장에서 압도적 강자다. 특히 그룹내 NTT동·서는 일반전화망을 독점해 고정적 수익을 담보받아왔다.
그러나 몇백년 지속하리라던 주력군 일반전화 사업은 최근 2년새 급성장한 IP전화의 거센 도전을 맞이했다. 소프트뱅크를 선두로 한 IP전화 서비스업체들은 7월말 500만 가입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시하기엔 너무 강력한 존재로 성장했다. NTT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런 속도로 IP전화가 성장하면 일반전화 수요가 급감해 몇년새 1조엔(10조원)에 달하는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IP전화는 말그대로 ‘눈엣가시’인 셈이다.
NTT동·서는 가만히 앉아서 IP전화에 조금씩 당하느니 차라리 적극적으로 대응키로 급선회했다. 직접 IP전화시장에 진출해 능동적으로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IP전화 경쟁격화=NTT로선 이 참에 IP전화시장 전체를 뒤흔들겠다는 전략이다. 어차피 IP전화시장이 커질수록 일반전화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IP전화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건져야 한다. 아직 서비스가격은 미정이지만 경쟁업체들이 제공하는 3분 8엔(80원) 이하(같은 IP전화 가입자끼리는 무료)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소프트뱅크, 퓨젼커뮤니케이션, 니후티, NEC 등 경쟁업체들에 위협적이다. NTT라는 브랜드에 비하면 이들 업체는 마이너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점적 망사업자라는 눈에 안보이는 NTT의 힘도 숨어있다. 따라서 경쟁업체들은 NTT보다 저렴하다는 점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IP전화망이 진화한다=NTT의 IP전화는 ADSL가 아닌 FTTH에 기반한 이른바 ‘광IP전화’라는 점도 주목된다. NTT그룹은 최근 차세대 전략인 ‘레나’의 주된 축으로 제3세대이동전화서비스(3G) ‘포마’와 광IP전화를 내세운 바 있다. 즉 FTTH를 차세대 통신망으로 키울 것이며 이에 맞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으로 ‘광IP전화’를 지목한 것이다.
NTT측은 “ADSL망 기반의 IP전화는 신뢰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광IP전화를 통해 일반전화만큼의 음성통화품질을 확보해 IP전화망 진화를 주도한다는 방침이다.
또 일본 법제도상 일반전화 수준의 음성통화품질을 확보하면 고객기업들은 일반전화를 IP전화로 바꿔도 예전 전화번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고품질 IP전화는 후발주자인 NTT동·서로서는 활용가치가 높은 카드이기도 하다.
◇NTT재편론도 고개 들어=NTT그룹은 99년 재편을 통해 지역내 일반통화를 맡는 NTT동·서, 국제·장거리통화의 NTT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이동전화서비스를 제공하는 NTT도코모 등 4개 회사와 이를 관리하는 NTT지주회사 체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일본 전지역을 하나로 서비스하는 IP전화의 특성상 이런 체제는 의미를 상실하게 됐다.
NTT그룹은 올초 IP전화 서비스를 통합·제공하는 신회사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이 계획은 아직까지 그룹내 각사간 의견차로 진전을 못보고 있지만 이번 NTT동·서의 IP전화 진출로 다시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NTT그룹(지주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IP전화시대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기존 체제를 유지키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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