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근무하고 있는 연구소의 50대 초반 중진급 연구원과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매우 소탈한 성품인 그 분은 연구소 안팎의 여러 문제점을 열거하면서 특히 고급인력을 적재적소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생기는 엄청난 국가적 낭비를 꼬집었다.
주변에 보면 정부에서 이런저런 연구개발과제로 50억원 이상의 돈을 투자한 50대 초반의 과학기술인력이 전직해 호프집이나 식당을 차린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과학기술인을 전문가로 대접하지 않고 일개 샐러리맨으로 취급하는 한심한 국가정책 때문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현장경험이 풍부한 과학기술자가 전문가로서 학교나 기업, 정부에서 적극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기업연구소나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현장의 소리를 무시한 채 행정 편의주의에 빠져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관련 공무원들이 현장의 돌아가는 생리를 잘 모른다는 지적이다. 이는 아마도 필답고사 하나로 인재를 뽑는 시대착오적 관료등용시스템의 대표적인 병폐일 것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때맞춰 중국의 공직 임용제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현장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들에게 고위 공직자로 진출하는 기회가 열려 있고, 그래서 실사구시의 행정을 펼 수 있기에 오늘날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인 것 같다. 노 대통령이 큰 충격을 받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장중심의 인재등용시스템을 구축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하니 좀 늦은 감은 있지만 획기적인 인사시스템 개선을 기대해본다.
특히 요즈음 이공계 위기니 공동화니 하여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한가지 중요한 원인은 바로 고도의 지식정보산업구조 시대에 걸맞지 않은 후진적인 행정시스템 아래에서 현장 과학기술자들이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IMF이후 직업 안정성도 크게 떨어진 데다 연구개발의 즐거움마저 빼앗긴 이들이 후배와 자식들에게 이공계 진학을 극구 말리고 있으니 이공계 공동화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부존자원도 없고 노동시장의 경쟁력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고급 과학기술인력 자원이 있다는 것을 내세울 수 있는데 지금처럼 이공계 인력의 엑소더스가 일어나는 상황이 지속되면 국가의 미래는 없다.
지금이라도 현장을 잘 알고 있는 인력이 기술관료로 진출해 과학기술자들의 가려운 데를 알아서 잘 긁어주는 서비스 행정을 펼쳐 고급인력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과학기술인력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 범국가 차원에서 국내외 과학기술 전문인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바란다. 여기에는 그동안 과학기술 비전문가들이 꿰차고 있던 자리를 전문가들에게 되찾아주는 작업도 포함돼야 하며 그럼으로써 과학기술전문가의 직업 안정성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이번에 시행하려는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방안이 알차게 결실을 맺어 과학기술계가 되살아나 제2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길 바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맹성렬 박사 slm221@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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