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는 것보다 돌려쓰는게 남는 장사

 “넌 사서 쓰니, 난 빌려 쓴다.”

 대학생인 이춘한(27)씨는 최근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평소 꼭 한번 타고 싶었던 BMW를 렌트했다. 다가오는 여자친구의 생일을 맞아 서울 근교로 깜짝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이씨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지만 여자친구에게 멋진 하루를 선물하기 위해 이 정도의 출혈은 감수하기로 했다”며 “여자친구가 깜짝 놀랄 일을 생각하면 잠이 안온다”며 즐거워했다.

 이른바 뭐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당당히 빌려쓰는 선진국형 ‘렌털문화’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물품에 대한 개념이 ‘소유하는 것’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한층 고급화된 다양한 형태의 렌털산업이 급성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줄리앙 모나띠는 얼마전부터 고급 머리핀을 빌려주는 이색 렌털을 시작했다.

 연회비 10만원을 내면 10만원 상당의 값비싼 머리핀을 한 달에 한번씩 바꿔쓸 수 있다는 점이 신세대 여성층에게 어필하면서 최근 회원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신세대들의 빌려쓰는 문화는 장신구나 승용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요즘 신촌이나 신림동 등 대학가는 냉장고·세탁기·TV·비디오·인터넷회선 등 웬만한 가전제품을 모두 갖춘 원룸이나 오피스텔이 큰 인기다. 필요는 하지만 한꺼번에 장만하려면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은 가전제품을 모두 사용할 수 있음에도 월임대료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기 때문.

 최원곤 대신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빌려쓰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소유의 개념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면서 “이는 생활 전반으로 퍼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빌려쓰는 문화’는 알뜰 신세대 주부를 중심으로 최근 가정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하는 주부 강영화(32)씨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유아용품과 장난감을 빌려쓰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사주고 싶지만 세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놀이기구나 유아용품을 사주기에는 형편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강씨처럼 유아용품이나 장남감을 렌털해 사용하려는 알뜰 주부들이 늘어나면서 이토이월드(http://www.etoyworld.net), 키즈렌트(http://www.kizrent.co.kr) 키즈점프(http://www.kidsjump.co.kr), 장난감아저씨(http://www.toyuncle.co.kr) 등 유아용품을 빌려주는 전문쇼핑몰들이 성업중이다. 취급물품도 장난감과 보행기부터 신생아 카시트·자동침대·식탁의자 등에 이르기까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가정에서 빌려쓰는 물품도 정수기나 비데 등에 이어 최근에는 김치냉장고·캠코더·디지털카메라·DVD플레이어·프로젝터·헬스기구·텐트·캠핑카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박병용 서울종합렌털 사장은 “과거에는 회사나 사무실을 상대로 컴퓨터나 무전기 등을 임대했으나 최근 개인 임대가 늘면서 텐트·아이스박스·비치 벤치 등 레저용품과 생활가전으로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렌털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데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빌려쓰는 것’에 대한 인식이 바뀐 점도 있지만 비용절감 등 여러가지 면에서 빌려쓰는 것이 사서 쓰는 것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

 우만식 금호렌터카 과장은 “기업이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도 초기투자비, 관리비, 세제혜텍 등을 고려한 때문인지 최근 렌털차를 크게 선호하는 것 같다”며 렌털문화의 빠른 확산을 설명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의상이나 레저용품의 경우 집안 한 구석에 짐짝이 되기 일쑤다. 따라서 한두번 사용하기 위해 따로 구입하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빌려쓰는 것이 오히려 비용절감과 공간활용 측면에서 유익하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진 것도 렌털문화를 확산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층의 경우 한번 구입한 제품을 오래 사용하기보다는 늘 새로운 제품에 시선이 쏠리기 마련. 그렇다고 매번 새로 나온 제품을 구입할 수도 없고 이러다 보니 수시로 바꿔 쓸 수 있는 렌털상품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임대산업이 확산된 배경에는 안정적인 임금생활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이규범 청호나이스 차장은 “예전과 달리 월급이나 연금 생활자 가구수가 50%대로 늘어나면서 한번에 고가의 물품을 구입하는 경우보다 할부나 리스 등의 활용이 늘어난 것도 임대산업이 확대된 계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대산업이 급속히 성장한 데는 환경 가전업체들의 역할도 컸다는 평가도 있다.

줄곧 1위 정수기 업체를 고수하던 웅진코웨이는 지난 97년 IMF를 맞으면서 정수기 판매가 급격히 줄면서 2위업체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 회사는 98년부터 렌털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고속성장을 거듭, 지난 4월 말 현재 회원 200만명을 확보하면서 수위자리를 되찾았다. “소비자들에게 ‘정수기=빌려쓰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 차장의 설명이다.

 환경가전 업체들은 이에 따라 정수기에 이어 김치냉장고·식기세척기 등으로 품목을 크게 다양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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