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산시스템은 살아있어야 한다

 조흥은행 총파업으로 금융전산망이 위협받고 있다. 은행의 파업은 금융기관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그 자체가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한다. 더 나아가 은행전산시스템이 다운될 경우에는 걷잡을 수 없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조흥은행 노조측은 전산센터 인력의 대부분(305명)이 파업에 합류함으로써 19일부터는 전산망 가동이 자연스럽게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다행히 전산마비라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금융감독원과 조흥은행측은 대체인력을 긴급 투입한데다 백업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앞으로 협력업체 직원 등을 추가 투입할 예정이어서 전산시스템 마비와 같은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경찰을 투입해 전산망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당장의 전산시스템 다운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실 전산망만 정상가동돼도 인터넷이나 폰뱅킹으로 점포를 대신할 수 있다. 다른 은행을 통한 예금 대지급도 가능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은행마다 자체적인 시스템운영 로직을 갖고 있어 자동이체나 다른 금융기관과의 결제 등에서 차질이 나타날 우려가 높다. 아파트 청약 같은 경우는 인터넷을 통한 접수가 여의치 않아 피해가 예상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당장 이번주 말부터 문제가 드러날 전망이다. 신용카드 결제일이 20일인 고객들은 자동이체가 이루어지지 않아 차질을 빚게 되며 급여이체 등과 겹치는 25일 이후에는 그 피해가 일파만파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0년말 국민은행·주택은행간 합병과 최근의 하나은행·서울은행간 합병에 따른 전산통합 때에도 자동이체와 보험금 중복이체 등으로 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때에는 전문인력들이 즉시 대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조흥은행의 내부 소프트웨어 로직을 알고 있는 대다수 전산인력이 파업에 참가, 대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의 어음결제다. 월말에 몰려들 기업간 어음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멀쩡한 기업이 부도를 맞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이번 파업이 장기화되거나 금융노조 전체로 번질 경우에는 금융대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전산 대체인력이나 백업시스템으로는 전산센터의 운영에 한계가 있고 금융공동망까지도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전산시스템은 평소 업무효율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효자노릇을 한다. 이번 파업에서도 아직까지는 문닫은 오프라인의 점포를 전산시스템에 의해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있음을 본다. 하지만 이 전산시스템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한 은행의 파업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금융대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정보화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교정이 요구된다.

 우선 금융권을 비롯한 국가기간산업에 종사하는 전산전문인력의 노조가입 제한에 대해 법적, 제도적 검토를 제안한다. 이는 전산인력도 근로자라는 기본개념에 위배될 수 있으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도에 따라 그 기준을 달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반 기업에서도 인사·총무 등의 인력은 비노조원이 아닌가. 노조가입 제한이 어렵다면 전산인력은 파업과 같은 비상사태시에 업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노사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기간산업의 전산시스템이 멈춰서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인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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