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현인이 줄을 어지럽게 묶어 놓고 “줄을 푸는 사람이 세상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하자 알렉산더는 줄을 단칼에 베어내는 ‘쾌도난마’의 지혜와 힘을 보여줬다.
행정자치부 산하 정부기록보존소가 추진하는 자료관시스템 구축사업에도 쾌도난마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지난 99년 제정·공포된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전국 702개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기록물 전산관리체계(자료관시스템)를 도입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표준조차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 표준안의 발표는 지난 1, 3, 5, 6월 초순으로 계속 연기되면서 ‘늑대소년의 외침’이 됐다. 이에 따라 오는 2005년까지 1000억원대 수요가 예상되는 관련사업에 대한 준비를 마친 전자문서관리시스템(EDMS)·그룹웨어·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등 관련 IT업체들의 갈증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그룹웨어업체들은 이번 사업을 행정망 전산화를 위한 신 그룹웨어 정책에 자료관기능을 추가하는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반면 EDMS업체들은 그룹웨어로는 대용량의 문서를 검색·보관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근본적으로 EDMS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정부 표준안이 발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영업을 통해 관련사업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움직임까지 일면서 향후 ‘호환되지 않는 시스템 문제’를 불러올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또한 지난해 시범사업자로 선정된 일부 업체들이 본사업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까지 더해져 더욱 헝클어지는 형국이다.
서로 제 논에 물을 조금더 끌어들이고픈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로 더욱더 얽혀만 가는 실타래를 풀 주체는 정부기록보존소일 수밖에 없다. 정부기록보존소측은 사업에 참여할 IT기업들과 학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모두가 만족할 표준안을 끌어낸다는 원칙을 세웠다지만 그 기일이 너무 늦어지고 있어 문제다.
시간이 지나서 만들어진 완벽한 계획보다는 제시간에 만들어진 부족한 계획이 실제적으로는 더 필요한 게 현실이다. 정부기록보관소의 결단을 기대해본다.
<정보사회부·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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