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의 편지](19)살인의 전주곡

 지금까지의 줄거리 : 아키라는 인사과장 요코다 도시오가 자신의 출세를 미끼로 모친을 능욕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혼다 지카라와 니시구치 다다오에게 요코다의 납치를 부탁한다.

 

 1973년 9월 29일

 신오사카역전

 

 9월의 비로 낙엽이 흩어진 거리는 어수선하다. 신오사카역에서 조금 떨어진 종합병원 앞에서 분무소독기로 젖은 바닥을 닦는 혼다 지카라는 연신 역쪽을 바라본다. 차도에는 병원 구급차가 서 있고 지카라 외에도 두명이 앰뷸런스 작업복을 입고 분주히 움직인다. 요코다 도시오의 납치조다. 누가 보아도 병원에 환자를 수송하고 보도를 청소하는 모양이다. 아키라의 부탁이 있은 후 지카라는 즉시 요코다 도시오의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을 협박으로 매수해 요코다가 고베나 오사카 쪽에 하는 전화를 빈틈없이 감시했고 드디어 오늘 오후 5시에 신오사카 부근의 호텔에서 사다코상과 랑데부하는 것을 포착했던 것이다.

 도쿄의 조원들이 찍어 보낸 사진들에 나타난 요코다의 모습은 소위 중육중배(中肉中背), 즉 보통 키에 보통 살집이지만 운동선수 풍의 단단한 몸집에 피부가 검은 것이 일본인 중에는 남방계로 보인다. 예정된 신칸센의 도착시간이 약 20분 지난 후 사진 속의 요코다가 실물로 걸어온다. 병원 앞의 보도가 비교적 넓은데 다행히 요코다는 도로 쪽으로 걸어온다. 분무기를 들고 있던 지카라는 요코다가 옆을 지나갈 때 강한 분무를 그의 발 밑으로 분사하여 물이며 젖은 먼지가 구두와 바짓가랑이에 튀게 만든다.

 “빠가야로!” 일류 기업의 과장답게 요코다는 오만한 표정으로 짜증스럽게 외친다.

 “죄,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이리로 오시지요”하며 지카라는 요코다를 앰뷸런스 쪽으로 유도한다. 앰뷸런스 뒤쪽에서는 유니폼을 입은 다른 사내가 깨끗한 수건을 들고 연신 굽실거리며 기다린다.

 “지쿠쇼(제기랄)”하며 요코다는 앰뷸런스의 후방으로 간다. 젖은 구두를 차에 걸치고 마른 걸레로 훔치기를 기다리는데 걸레는 구두가 아니라 얼굴을 훔친다. 마취제가 듬뿍 묻어 있어 단 한번의 흡입으로 요코다는 실신한다. 순식간의 일이어서 목격자는 없다. 지카라 일행은 장비를 싣고 유유히 차를 발진시킨다.

 

 1973년 9월 29일

 육갑(六甲)섬

 

 야쿠자는 원래 8, 9, 3의 준말로 과거 폭력배들이 하던 화투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패를 말한다. 즉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인간들이라는 말이다. 야쿠자는 원래 두 종류가 있어 거리에서 장사를 주로 하는 데키야와 도박을 주로 하는 가부토로 나뉜다. 과거 데키야들이 팔던 물건들은 서양에서 건너 온 소위 박래품이 많아 항구는 자연히 야쿠자들의 서식지가 되었던 것이다. 야마이치 고베구미가 고베항 부두에 창고를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부두의 창고는 간부들의 사무실로 안성맞춤이다.

 명치유신과 함께 개항한 고베항은 관서지방 최대의 항구로서 대형 선박 200대가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국제항이다. 육갑섬은 만의 한가운데 위치하여 다리로 연결돼 있다. 지카라 일행의 앰뷸런스가 육갑섬에 있는 창고로 들어선 것은 이미 어둠이 내린 시각이다. 대형 체육관 같은 창고는 비어 있고 한 구석에 테이블이 있어 니시구치가 이미 기다리고 있다.

 “수고했다. 그러면 벗겨서 매달아라.” 니시구치가 명령한다.

 차에서 끌려나온 요코다는 마취가 거의 풀려 사위를 살피며 반항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입을 벌릴 새도 없이 니시구치의 구둣발이 요코다의 명치를 파고들어 다시 실신 상태로 들어간다. 부하 한놈이 회칼로 옷을 갈라 나체를 만드는 데는 수분도 안걸린다. 옆에는 넓은 텐트지가 깔려 있고 가운데는 톱밥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친피라 두놈이 나체의 요코다를 톱밥 위로 팽개치는데 어부들이 생선 던지듯 한다. 높은 천장에서는 밧줄이 내려져 있고 도르레도 달려 있다. 린치용이다. 요코다의 손목과 어깻죽지를 고리에 엮어 당기자 적당한 높이로 나체가 올라가 성기가 서 있는 사람의 눈높이 정도에 온다. 잡힌 자는 본능적으로 성기의 상실에 대하여 극도의 불안을 느끼게 되어 있다.

 “아키라는?” 니시구치가 묻는다.

 “네, 비행기로 내려오는데 10시경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지카라의 대답이다.

 “그럼 시작해라.”

 니시구치의 이 말에 친피라가 수도 호스로 강한 물줄기를 얼굴에 뿌리자 요코다는 정신을 차린다. 나체로 매달려 있고 주위에는 한눈에 보아도 야쿠자로 보이는 인간들이 수명 둘러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요코다는 눈앞이 캄캄하다. 신오사카역 기차에서 내려 사다코를 만나러 들뜬 마음에 호텔을 향하여 걸어간 것은 생각나는데 여기가 어딘가. 거친 밧줄이 겨드랑이며 손목의 피부를 벗기듯이 파고 들어온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성기가 겁에 질려 있는대로 졸아 있고 춥고 소름이 끼친다.

 “죄 없는 사람을 가지고 뭐하는 거야?” 요코다는 용기를 쥐어 짜 한번 외쳐본다. 대답이 없다. 야쿠자들은 담배를 피거나 딴 데를 볼 뿐이다. 응접세트에 앉은 상급자 비슷한 자가 눈짓을 하자 건장한 놈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다가온다. 아무 소리 없이 휘두르는 방망이는 짧은 거리지만 쇳소리를 내며 바람을 갈라 허벅지를 강타한다. 짧은 시차를 두고 처절한 비명이 터지고 공포와 아픔으로 소변이 절로 터져나온다. 또 한번의 스윙. 두번째 스윙은 좀 더 강하게 다른 허벅지를 강타한다. 살점이 터져 피가 배어나오고 요코다는 뼈를 타고 오르는 아픔에 대변을 방출하며 기절한다.

 이미 정해진 수순인 듯 친피라들은 소독제와 톱밥을 얹어 냄새를 가라앉힌다. 한명의 친피라가 용접봉에 불을 붙여 발톱에 댕긴다. 고기 탄내가 날락 말락할 무렵 요코다는 새로운 옥타브의 비명을 지르며 실신에서 깨어난다.

 니시구치가 의자를 돌려 정면으로 보며 말한다.

 “묻는 말에 지체없이 대답해 서로 시간을 절약하자. 죽이지는 않는다. 사실 네가 뭐 죽을 죄를 졌겠냐. 그렇지?”

 “네.” 요코다의 말투는 이제 공손하다. 약삭빠른 술수와 야비한 책략으로 회사에서 남을 밀고 출세는 해왔지만 야쿠자판과는 세상이 다르다.

 “몇번 재미봤나?”

 “뭐를 …”

 “사다코상과 몇번 잤냐는 이야기야.”

 그제서야 요코다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이해가 간다. 아, 죽을 죄는 아니구나 느껴지며 자신이 생긴다.

 “상당히 됩니다.”

 “언제부터야?”

 “1970년 여름께부터입니다.”

 “후지사와 아키라의 입사하고는 어떻게 되나?”

 “후지사와군이 입사하고 2∼3개월 지나서부터입니다.”

 “그렇게 반했나? 우리 오야붕의 부인이야, 이 새끼야!”

 “미치도록 좋아합니다.”

 “뭐가? 몸이, 아니면 마음이?”

 “…” 이 말에 요코다는 남자끼리의 이야기로 돌아오나 하며 다소 안도를 느끼려고 한다.

 새로운 발소리가 난 것은 이 때였다. 창고의 쪽문을 열고 아키라가 들어선다. 니시구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학교시절 친구고 주먹으로 따지자면 한참 위지만 아키라는 오야붕의 아들이자 구름 위의 존재같은 수재다.

 전체의 광경을 한눈에 넣으며 아키라는 니시구치에게 보일락 말락하게 눈인사를 한다.

 “지금 불고 있는중이야.” 니시구치가 이른다.

 신선한 바닷바람을 쏘인 아키라의 코는 대소변의 냄새를 이기기 힘들다. 구역질을 누르며 니시구치의 테이블에 있던 코냑을 들어 몇모금 벌컥인다. 공복에 호박색의 액체는 목구멍을 태우듯 하며 위로 직행한다.

 모두가 주시하는 가운데 아키라는 요코다 앞으로 다가선다.

 “내가 조선계라는 것이 내 모친을 더럽힐 정도의 죄냐?” 아키라의 목소리는 늦가을 벌레소리처럼 외롭고 공허하게 퍼진다.

 “잘못했네. 용서해주게, 후지사와군.” 겁에 질린 목소리다. 아키라가 조용하지만 매서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은 인사과장으로서 잘 알고 있는 터.

 “용서…?”

 아키라는 친피라의 야구방망이를 빼앗는다. 천천히 앞으로 돌아가 골프 스윙하듯이 아래에서 위로 휘두른 금속방망이는 벌린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요코다의 국부를 한번에 파괴한다. 요코다는 찍소리도 못내고 거품을 물고 실신한다. 아키라는 다시 한번 테이크 백을 하여 가슴을 강타한다. 갈비뼈가 부서져 예리한 뼈가 칼같이 피부를 꿰뚫고 나온다.

 야구방망이를 버린 아키라는 코냑병을 다시 들고 나머지를 거의 다 들이킨다. 그리고 돌아선다.

 “고맙네. 또 연락할게”하며 돌아선다.

 “아냐, 별로…” 니시구치도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야, 아키라상을 도쿄까지 차로 모셔라”한다.

 창고의 문을 나서는 아키라의 귀에 니시구치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텐트째 쇠뭉치하고 돌하고 잘 묶어 바다에 던져라.”

 물건 배달을 지시하는 정도의 평온한 목소리다.

 

 sjroh@alum.mi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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