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번(sun-burn)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닉스의 강자인 선마이크로시스템즈를 고사시키기 위한 선번전략이 주체만 바뀐 채 재현되고 있어 유닉스 서버시장에 적지 않은 파문을 불어올 전망이다.
과거 유닉스와 윈텔(컴팩-MS-인텔) 진영의 ‘선번’이 한국IBM과 한국HP 등 중대형 서버 양강에 의해 재현되고 있는 것.
◇선번이란=선번은 지난 2000년 윈텔 본사차원에서 선이 장악하고 있는 유닉스 로앤드 시장을 집중 윈백(win-back)하기 위해 당시 IA서버 시장의 일인자인 컴팩과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3사가 공동전선을 구축한 것으로 국내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 프로그램 가동 6개여월만에 컴팩코리아가 윈백용으로 공급한 IA 서버 대수는 160여대, 한국썬과 경쟁에서 이겨 공급한 서버 수가 320여대로 선번프로그램을 통해 공급한 서버 수는 총 500대에 달했다. 이 프로그램은 당초 6개월 기간으로 시작됐으나, 1년으로 연장된 후 2001년 2차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이번 유닉스 진영의 선번 프로그램은 ‘선 죽이기’라는 점에서는 과거 윈텔 진영의 움직임과 다를 것이 없지만 로앤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닌 하이엔드 유닉스 서버까지 확대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된다.
◇핵심은 가격공세=최근 중대형 서버 업체들은 제조분야 대기업인 A사의 정보화 프로젝트에서 일대 결전을 벌였다.
당시 한국HP·한국썬·한국IBM는 기술심사에서 각각 1, 2, 3위를 차지하고 가격경쟁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A사는 구 컴팩코리아의 핵심 고객이었기 때문에 한국HP로서는 수요처를 사수해야 할 필요성이 높았으며, 한국썬이나 한국IBM은 HP·컴팩의 합병 공백을 틈타 윈백전략을 적극 구사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한국HP의 승리. 그러나 한국HP는 파격적인 가격조건으로 공급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승리’를 무색케 했다.
한국HP측은 이처럼 가격인하 전략으로 대응한 것에 대해 “전략적으로 사수해야할 중요한 수요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HP는 그동안 경쟁사에 비해 무리한 할인율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온터라 이번 프로젝트 수주건은 안팎에서 적지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겉은 선번, 속은 양강의 주도권 경쟁=한국HP의 놀랄 만한 할인율을 가능케 한 ‘실탄’은 과거 본사가 마련해 놓은 ‘선번 펀드’ 자금에서 나왔다는 것. 업계에 따르면 최근 IBM·HP 양사가 가동하고 있는 선번 프로그램은 2000년 윈텔 진영처럼 전세계 지사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닌 각국 지사에서 보고되는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검토한 후에 차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자금지원 대상을 선이 강점이 있는 중소·중형 비즈니스(SMB) 영역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하이엔드 서버를 공급하는 프로젝트까지 적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더욱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나타난 것처럼 선번의 핵심인 한국썬이 빠진 채 한국HP와 한국IBM간 심각한 가격경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선번을 앞에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양사간 주도권 경쟁에서 나타난 결과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한국HP와 한국IBM 모두 ‘편법’으로 이 자금을 신청했고, 본사 역시 이를 눈감아 주었다는 후문이다.
◇어디까지 이어질까=한국썬의 반종규 전무(마케팅)는 이번 프로젝트 결과에 대해 “경쟁사들이 본사의 자금을 등에 업고 서버가격을 인하하는 데 할인율을 도저히 맞출 수 없어 빠졌다”며 “그러나 로앤드급도 아니고 하이엔드 전략에서 이같은 할인율은 득이 될 게 없는 만큼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한국썬은 맞불작전으로 한국IBM이나 한국HP의 핵심 수요처 윈백 전략에 적극 나서는 등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무엇보다 업계의 관심은 이번 프로젝트와 같은 엄청난 서버 할인율이 계속 이어질 것이냐다. 해당 기업들 역시 어디까지 본사 정책을 활용할 것이냐에 고민스런 표정이다. 지난 윈텔 진영의 선번 프로그램은 구체적인 룰을 바탕으로 전개된 것이지만 이번 경우처럼 프로젝트별로 적용될 경우 결국 ‘제 살 깎아먹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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