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배우의 유작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한다. 더구나 삶의 깊은 맛을 느끼며 왕성하게 활동할 40대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꽃다운 배우의 유작이라면 우리는 평상심으로 스크린과 마주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언제까지나 살 수는 없다. 흔히 하는 말대로 그래봐야 몇십년 더 살다, 그가 간 곳으로 뒤따라 갈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금 이렇게, 그의 죽음에 대해 말하며 살아있지 않은가.
‘이도공간’의 한국 시사회가 있던 날은 마침 장국영의 49제가 되는 날이었다. 극장 무대 바닥에는 하얀 꽃다발 하나가 외롭게 놓여 있었다. 주최측의 연출이라고 해도 가슴 한쪽이 쓸쓸해졌다. 나는 그와 함께, 나의 20여년 생을 보낸 것이다. 장국영이 출연한 작품은 총 50편. 목록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니 내가 본 영화는 딱 절반, 25편이었다. 국내 개봉된 영화는 거의 본 셈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마지막 작품 ‘이도공간’을 봤다.
영화 속에서 그는 피곤해 보였다. 정신과 의사 짐 역을 맡은 장국영은 부모가 자신을 버린 것으로 알고 고통스러워 하는 얀(임가흔 분)을 맡아 치료한다. 그러나 얀의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부터는 짐 자신이 과거의 상처로 고통받는다. 얀과 짐 모두 과거의 상처 때문에 고통받으며 고통의 정점에서 귀신을 목격한다는 점이 ‘이도공간’을 호러 장르로 분류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도공간’은 단순한 호러물은 아니다. 원한을 가진 혼령이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힌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동양적 공포물이지만, 또 공포를 극복하는 힘으로 사랑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이지만,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모든 공포의 근원은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계속 원혼에 쫓기던 짐은 자살을 결심하고 학창시절, 자신의 연인이 뛰어내렸던 바로 그 옥상의 위험한 끝에 서서 말한다. “지금까지 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 그 순간 우리는 ‘이도공간’의 짐이 아니라 배우 장국영 자신의 고백을 듣는 것 같다. 스크린 속으로 손을 뻗어 난간이 없는 옥상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그를 진심으로 붙잡고 싶어진다. 영화 속의 그 장면은 2003년 4월 1일 홍콩 오리엔탈호텔의 베란다에서 투신자살한 실제 그의 모습과 기억 속에서 오버랩되며 우리들의 정서를 뒤흔든다. 과거의 상처에 괴로워하며 현재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도공간’ 속의 남녀들은 사실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인 랭보의 말대로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세상을 많이 살아본 사람들은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상대의 존재가 나와 가까울수록 상처의 파괴력은 크다. ‘이도공간’은 장국영의 유작으로서 오랫동안 기억되겠지만 ‘열화전차’ ‘색정남녀’ ‘성월동화’ ‘성원’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서 ‘창왕’으로 데뷔한 나지량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링’ 시리즈의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보이지 않게 우리들의 곁으로 다가오는 공포를 섬찟하게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면, 나지량 감독은 공포에 시달리는 인간의 내면탐구에 더 공력을 치중한다. 훨씬 더 인간적이다. 얀 역의 임가흔도 울림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어쩌랴. 장국영의 애절한 연기를 기억하고 싶은 관객들에게 ‘이도공간’ 속의 다른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을.
<영화평론가>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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