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의 구조개편이 본궤도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16일 그동안 분리운영돼 온 증권거래소·코스닥시장·한국선물거래소 등을 주식회사 형태의 통합거래소로 개편한다는 계획을 확정하고 ‘증권·선물시장 개편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세부방안과 함께 법 정비작업을 병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방침에 대한 증시 안팎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정부안이 원안대로 밀어붙여질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 그동안 IT벤처의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해온 코스닥시장의 역할 축소도 업계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번 정부의 개편안에 대한 증시 안팎의 입장과 문제점 및 해결방안 등을 3회에 걸쳐 점검해본다.
재정경제부는 증권거래소·코스닥시장·선물거래소의 완전통합안을 확정하면서 △전세계적인 증시통합 추세 △지방분권화에 걸맞은 주식시장 구조 확립 △시너지 효과를 통한 경쟁력 제고 등을 추진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증시 안팎에선 벌써부터 ‘통합효과’에 대한 우려가 불거져나오면서 향후 통합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증시통합안에 대한 3개 시장주체들의 평가나 입장도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어 증시통합이 되레 증시분열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신뢰성 훼손=지난 3월 정부는 3개 시장을 지주회사 형태로 묶고 각 시장은 주식회사 형태의 개별 자회사로 전환하는 곳것을 골자로 한 정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2개월만에 정부안은 완전통합안으로 뒤바뀌었다. 문제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법적 구속력을 가진 방침은 아니지만 선물거래소 이관을 명시적으로 약속했던 정부로서는 선물거래소와의 약속을 사실상 파기해버린 것이다. 정부안을 2개월만에 스스로 갈아치우고, 선물거래소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점은 이번 증시통합안과 관련 정부의 정책 신뢰성에 커다란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게 됐다.
선물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이 정부안에 대해 공식적인 반대의사를 밝힌 것도 이런 신뢰성 부재에서 출발한 문제다.
◇정치적 결정에 무게=전문가들은 증권시장의 개편과 구조조정이 순리에 맞게, 그야말로 시장원리에 맞춰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통합본부를 부산에 두도록 한 것이나, 완전통합이라는 방식을 택한 점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판단’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는 의혹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증시 일각에선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판단”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또 이번 안대로라면 증시통합이 사실상 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통합에 따른 실리가 거래소로만 편중돼 돌아갈 수 있는 소지를 남기고 있다. 따라서 코스닥시장과 선물거래소 측은 정부안 자체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장별 입장차 커 통합효과 반감=증시통합을 위한 실질적 논의는 각 시장주체들의 건설적 제안과 토론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시장간 극단적 대립양상으로까지 치닿고 있다. 결국 정부안이 증시통합이라는 큰 그림의 통합움직임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증시분열을 조장하는 화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시장별 요구와 입장차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줄이지 못한다면 외형적 증시통합에도 불구하고 그 시너지 효과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증권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시장별 이기주의에 빠져 통합논의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증시통합이라는 대원칙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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