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핵심칩 국산화 4인방 도원결의하다

 반도체업계의 내로라하는 고집쟁이 네사람이 모였다. 황기수(코아로직), 전성환(이오넥스), 최선호(토마토LSI), 윤광준(FCI) 사장.

 햇볕 가득한 4월 어느날 아침, 바쁜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워 네사람은 조찬을 겸한 모임을 여의도 모처에서 가졌다. 나이도, 성격도, 생김새도 다르고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벤처기업 경영자(CEO)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뭘까.

 ‘이동통신 핵심칩 국산화’. 이들 네사람을 따라다니는 공통의 수식어다.

 휴대폰 가입자가 3000만명을 넘어서고 전세계 4억여대 휴대폰 시장의 25%를 점하고 있는 우리나라. ‘애니콜’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도 일궈냈다. 그러나 이같은 영광의 지표 뒤에는 사실 남모르는 아픔이 많다. 연간 1억여대에 달하는 휴대폰을 우리나라에서 만들고 있지만 정작 휴대폰 제조에 필수적인 고부가가치 핵심칩들과 부품·소재들은 상당수 외국에서 사다 쓴다.

 대표적인 것이 베이스밴드칩과 무선주파수(RF)칩, 플래시메모리 그리고 각종 원자재들이다. 이중 특히 모뎀칩, RF칩 등 핵심 반도체들은 CDMA 방식이나 GSM 방식 모두 전량을 수입해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퀄컴이나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필립스, 인텔같은 다국적 반도체기업들이 수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한국에서 올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영원히 넘지 못할 것 같은 외산의 장벽을 몰아내고 우리 기술력으로 개발한 휴대폰 핵심칩들이 속속 상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산칩업체들을 보는 단말기업체들의 평가도 달라져 하나둘 대량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 네 사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동안 기술개발에서부터 상용화를 이루기까지 겪었던 어려움을 서로 나누고 앞으로 우리나라 이동통신산업의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이지만 모아보자는 뜻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가장 먼저 상용화를 이루고 거둔 수익으로 재투자가 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반도체 벤처업계의 스타로 떠오른 토마토LSI 최선호 사장(43). 토마토LSI는 휴대폰용 디스플레이 구동 드라이버 IC를 연간 3000만개 이상 생산해 국내외 주요 단말기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최 사장은 “사실 구동 드라이버 IC의 국산화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LCD 패널업체들과 휴대폰업체들이 우리나라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핵심칩을 개발하고도 상용화하지 못한 많은 벤처들을 생각한다면 기회가 좋았다”고 공을 돌린다.

 반도체로 가장 구현하기 어렵다는 아날로그 무선주파수(RF)칩을 개발, 국내 엔지니어의 자존심을 세운 FCI 윤광준 사장(41). ETRI 연구원을 박차고 나와 창업길에 올랐지만 지난해 첫 디자인 윈(상용화)되는 모델을 내놓기까지 중도하차했던 수많은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이동통신표준이 너무나 빠르게 진화하기 때문에 벤처기업이 표준규격을 따라잡고 적시에 필요한 RF칩을 출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는 윤 사장은 “더 어려웠던 것은 퀄컴이 모뎀칩을 공급하면서 RF칩까지 턴키(일괄) 방식으로 공급해 전문업체들의 진입을 막았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퀄컴 얘기가 나오자 전성환 사장(46)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WCDMA와 CDMA를 모두 지원하는 듀얼모뎀칩을 개발해 퀄컴과 정면 승부를 하고 있는 터여서다. 게다가 최근에는 개발한 칩을 판매하기 위해 퀄컴에 거액의 라이선스료를 준 상황이어서 속이 편할리가 없다.

 “긴 말하지 말고 실력으로 해결하자”고 일축하는 전 사장은 “문제는 WCDMA든 CDMA 20001x EVDO든 우리나라가 선점효과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위기의식은 이동통신사업자들의 차세대 투자가 미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CMOS 카메라폰용 애플리케이션 IC를 국산화한 코아로직 황기수 사장(50)이 거들고 나섰다.

 “일본은 정부와 산업계가 합심해 3세대 통신서비스를 기반으로 카메라폰, 동영상폰 등을 먼저 상용화해 가전에 이어 이동통신 부문에서도 선두국가업체가 되려고 기를 쓰고 있다”면서 “부품, 소재, 장비 등 후방산업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지금 주춤해서는 안될 때”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탈출구는 어디인가.’ 자연스레 네사람의 얘기가 향후 대안으로 모아졌다.

 윤 사장이 중국과 대만시장을 한번 같이 개척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휴대폰 개발에 필수적인 핵심칩-모뎀칩, RF칩, 드라이버IC,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등에서 고루 기술력을 갖고 있는 데다 현지 지사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힘을 합쳐보자는 것.

 얘기가 나오기가 무섭게 전 사장과 황 사장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고객과 시장정보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또 최 사장은 삼성전자 재직시절 대만 현지법인에 근무한터라 현지 소식을 꿰고 있었다. 

 마칠 시간이 넘었는데도 이들의 사업상 수다(?)는 그치질 않았다. 사진촬영을 하자는 기자의 종용에 후일을 약속한 이들.

 휴대폰 핵심칩 국산화 4인방의 새로운 미래를 보는 순간이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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