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내 무선인터넷 표준플랫폼 ‘위피(WIPI)’의 지적재산권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온 한국무선인터넷표준화포럼과 미국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관련기술의 공동개발과 라이선싱에 최종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불행중 다행스런 일이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미국의 스페셜 301조상의 지재권 침해 우선감시대상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그러나 무선인터넷 플랫폼의 표준화에 큰 상처를 남기고 미국 선측에는 로열티를 물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화는 CDMA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퀄컴이 국내 플랫폼 시장까지 장악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출발한다. 이동통신회사의 플랫폼별 콘텐츠와 서비스 상이성 문제도 해결,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국산 플랫폼으로 해외시장을 주도해가겠다는 야심찬 의도가 깔려있다. 무선인터넷은 연간 100% 이상씩 성장하는 유망 산업인데다 단말기 탑재용 소프트웨어인 플랫폼은 무선인터넷산업의 기반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피 개발은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켰다. 이미 퀄컴의 플랫폼(브루)이 국내 진출했다는 점과 함께 기존 플랫폼 서비스의 연속성 문제, 표준화에 따른 소프트웨어의 획일화와 서비스 차별화의 어려움 등으로 업계 반발이 계속됐다. 이동통신3사가 위피 개발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인 것도 이유있는 반발이었다. 기존 플랫폼을 개발·공급해온 중소벤처기업들은 표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시장지위가 인위적으로 약화되는 역차별을 호소했다.
더 큰 문제는 해외에서 나타났다. 선의 지재권 문제제기에 앞서 퀄컴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불공정 기술무역 문제를 제기, 위피의 국가표준 채택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USTR는 한국정부가 위피를 국가표준으로 채택해 의무화하면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상 기술장벽 협정에 언급한 기술적 규제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지난해부터 압력을 가하고 있다. 또 선과의 지재권 타결이 USTR의 이러한 압력을 수그러뜨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제는 위피의 국가표준을 고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우선 선과 공동보조를 취한다는 원칙에 합의함으로써 국가표준플랫폼의 명분은 사실상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통상마찰은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보다도 정부가 기존의 시장질서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이를 재편하려 했던 의도 자체가 합리적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위피 의무화를 통해 그 힘을 축적한 후 세계시장에서 위상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원치 않으면 재고됐어야 한다.
무선인터넷 플랫폼이 무선인터넷산업의 요소기술임에 틀림없지만 이동통신회사 등에는 경쟁수단의 하나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플랫폼을 채택하느냐는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기업의 선택이다. 중국 제2의 이동통신사업자인 차이나유니콤과 같은 회사는 퀄컴의 브루와 선의 자바 등을 모두 수용해 서비스 특성에 맞춰 플랫폼을 차별적으로 채택하겠다는 전략이다. 위피도 기업이 의무적으로 채택하도록 하기보다는 다른 플랫폼에 비해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혼란을 줄이기 위한 표준화 정책이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이는 재고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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