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한국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표준 무선인터넷 플랫폼인 ‘위피(WIPI)’가 자사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며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을 스페셜(Special) 301조 상의 지적재산권 우선감시대상국(Priority Watch List)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앞선 이동통신 기술을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 이를 계기로 국내 무선인터넷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목표 아래 의욕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불공정 무역 및 지적재산권 침해시비에 휘말려 비틀거리고 있는 위피 논란이 가뜩이나 어려운 정보통신 산업계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선이 위피의 목줄을 죄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위피가 C언어와 자바를 응용해 만든 무선인터넷 플랫폼이라고 하나 자바를 빼면 성능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정도로 자바 의존적인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선이 무선인터넷표준화포럼 등에 경고를 보내면서 한국 정부가 실행을 철회하거나 수정하지 않으면 다음달에 발간될 2002 스페셜 301조 보고서에 감시대상국(Watch List)인 한국의 지재권 보호 지위를 우선감시대상국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모바일자바가 공개 규격이라고는 하나 상업화할 경우 선이 소유한 라이선스 부분에 대해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적재산권 침해여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어떤 결말이 나더라도 기본 중의 기본인 라이선스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추진함에 따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가 초래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현재 위피 규격을 만든 한국무선인터넷표준화포럼과 선이 법적인 해결보다는 양측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의문이다. 또 그것으로 모든 게 마무리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라이선스 침해문제가 선과의 협력으로 귀결될 경우 라이선스 비용은 최소화된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 이동통신사업자의 70% 정도가 사용하는 모바일자바가 사실상의 세계 표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선과의 호환성 유지가 위피의 세계화 전략에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에 따른 손실도 크다. 국내 표준인 위피가 특정 업체의 표준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당초의 대의명분이 훼손되는 등 위피의 위상에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미 몇몇 국내 사업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을 외면하고 새로운 자바 규격을 만들어 표준으로 적용하는 것도 비효율적인 일이고, 미국 기업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국내 표준이라는 것도 모양새가 우습다.
문제는 또 있다. KTF에 무선인터넷 플랫폼 브루(BREW)를 공급하고 있는 퀄컴 등이 무선인터넷 플랫폼으로 자바는 되고 브루는 왜 안되냐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화가 불공정 무역에 해당한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렇게 복잡하게 전개되자 위피 의무화 여부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과연 어떤 것이 국익에 보탬이 되는지 지금부터라도 조목조목 따져보고 사업추진에 나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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