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슈퍼컴 정부지원 `뒷짐`

 “전산과학 및 기술의 진보가 국가의 번영, 국가 및 경제적 안전, 산업생산성, 공학 및 과학발전에 필수적이다. 고성능 컴퓨팅에서 미국의 지속적 리더십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 법안을 만든다.”

 지난 91년 앨 고어 당시 상원의원이 중심이 되어 제정한 미국의 ‘고성능컴퓨팅법(이하 HPC법)’에 기술된 내용이다. 미국내 모든 성(부처)과 연방 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퓨터에 대한 투자와 관리는 HPC법의 테두리에서 이뤄진다. 더욱이 미국 정부의 슈퍼컴퓨터에 대한 지원은 HPC법 제정으로 탄력을 받아 94년 PACI(Partnership for Advanced Computational Infrastructure)란 국가지원 슈퍼컴퓨팅센터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미국에는 현재 50여개의 학계·정부·산업체 기관들이 모인 협의체인 ‘얼라이언스’와 46개 기관, 해외 6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NPACI’ 등 초대형 슈퍼컴퓨팅센터협의회가 운영되고 있다. 덕분에 HPC법 서문에 적힌 대로 미국은 고성능 컴퓨터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주 전북대에서 모임을 갖은 한국슈퍼컴퓨팅협의회(이하 협의회·의장 김형주 서울대학술정보원장)는 올해 주요사업 계획을 짜면서 미국의 HPC법을 떠올리고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처럼 국가 차원의 육성법은 고사하고 제대로 일을 해보려는데 정부가 예산조차 배정해주지 않으니 말이다.

 협의회는 회원사로 있는 10여개 슈퍼컴퓨터센터의 자원을 묶는 그리드프로젝트를 주요사업으로 추진키로 하고 과학기술부에 6억5000만원이라는 예산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 예산은 확보되지 못했다. 협의회 모임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한두번 겪는 일이 아니라는 담담한 반응이다. 정부기관이든 대학 소속이든 슈퍼컴퓨터 관련 예산을 얻어내기 위해 벌이는 실랑이에 이골이 날 지경이다.

 6T가 국가의 차기 육성산업으로 거론된 지 한참이고 새정부의 핵심 과제로 기초과학 육성이 잡혀 있다. 정책입안자들이 이런 과제와 고성능 컴퓨팅에 대한 상관관계를 모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국내 슈퍼컴퓨터 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은 분명 달라져야 한다.

 <엔터프라이즈부·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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