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많은 중견기업이 기술 침체기간을 거치면서 왕성한 성장단계에서 성장이 정체되는 성년단계로 접어들었다.
기업들은 너나 없이 경기침체기에 매출이 급감하고 직원이 대폭 줄어들었다. 도산 위험에서 용케 벗어난 기업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바로 저성장시대다. 그렇다고 PC나 인터넷 장비 등 하이테크산업 전망이 어둡다거나 실리콘밸리와 새로운 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의 정신이 종언을 고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신생사들의 시장진입이 이전보다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미다. 성숙단계의 실리콘밸리에서 기존 대형 중견회사들은 지출과 고용을 억제하는 한편 새 시장과 새로운 성장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팰러앨토에 있는 패킷디자인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 주디 에스트린은 “크고 작은 기업들이 이 점을 현실감있게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패킷디자인은 기술 경기침체가 닥치기 직전인 2000년에 창업됐다. 에스트린은 성장을 낙관하면서도 과거보다 성장속도는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분석가 더글러스 리는 컴퓨터 칩산업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PC와 디지털음악 플레이어 같은 신제품용 칩 수요를 바탕으로 연간성장률 5∼10% 달성이 가능하나 세계 칩 판매가 1년 동안 37%나 폭증한 2000년의 인터넷 거품시대 같은 비정상적인 성장은 재현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컴퓨터 네트워킹산업도 칩과 마찬가지로 수년 동안의 출혈시기를 끝내고 안정을 되찾을 전망이다. 조사전문기업 델오로그룹에 따르면 세계 라우터 판매액은 2000년 98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지난해 판매액이 62억달러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됐다.
퍼시픽크레스트시큐리티스의 분석가 알락 샤 분석가는 “90년대에는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이 있어 고성장이 가능했다”며 “이와 비슷한 전례는 라디오가 나오거나 자동전화교환기가 등장한 때뿐”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넘쳐나던 벤처캐피털 투자액이 지난해 9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와 벤처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 한해 벤처투자가의 투자액은 212억달러에 달했다. 이에 견줘 2000년 총벤처투자액은 996억달러였다.
변화된 실리콘밸리의 모습은 실리콘밸리 신생사들 사이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생사들은 이제 사업계획서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받은 뒤에야 현금조달이 가능하다.
시장의 성숙은 대형기업들에도 커다란 변화를 예고한다. PC처럼 한 회사의 제품이 다른 회사의 제품과 거의 구별되기 힘든 이른바 ‘상품화되는 제품’이 늘어나면서 기업들은 판매를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격을 인하하게 된다. HP와 델컴퓨터간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
시장의 성숙은 기성업체들이 다른 업체를 합병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세계 최대 컴퓨터 네트워킹제품업체인 시스코시스템스는 네트워크 보안과 데이터 저장 등의 분야에서 성장가능성이 높은 업체들을 인수해왔다. 이 회사는 30억달러가 넘는 연간 연구개발 예산의 40%를 성장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많은 분석가는 실리콘밸리의 핵심시장이 성숙단계에 들어서면서 기업문화도 바뀔 것으로 예견했다. ‘꿈꾸는 자’가 높이 평가받던 이 지역에서 앞으로는 기업을 경영하고 비용을 통제하며 고객에게 이익을 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중역들에 더 높은 점수를 줄 것으로 보인다.
샌타클래라대학 산하 과학기술사회센터의 소장 짐 코흐는 “비전있는 CEO의 시대는 지나갔다”며 “비전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관리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들이 연구개발작업을 해외로 이전하고 단기간에 부를 축적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적어지면서 외국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이전보다 줄어드는 것이 더 의미있는 변화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일부 산업이 노화하더라도 실리콘밸리에 또다른 혁신과 성장이 찾아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팰러앨토의 컨설팅회사 콜래보러티브이코노믹스의 사장 더그 헨튼은 “실리콘밸리는 10년 정도마다 호황을 만들어내 오래 된 기업을 재건하고 새 중견기업을 키워냈다”며 “예를 들어 칩메이커 인텔은 외국 업체와의 경쟁으로 감원이 불가피했던 지난 80년대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PC 판매가 급증하면서 호황기를 맞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음 호황은 생명공학기술이나 바이오테크와 정보기술 통합에서 출발할 것”이라며 “호황의 사이클은 늘 지난 호황의 발전을 딛고 새롭게 시작된다”고 밝혔다.
<박공식기자 kspark@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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