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전망/미 FCC, 통신 및 미디어 규제완화 추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그 동안 공익성을 내세워 엄격한 통제를 가했던 통신 및 미디어(신문·방송) 분야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벌써부터 관련 업계에 찬반 양론이 비등하고 있다.

 최근 FCC가 통신 및 미디어 분야에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제시한 통신법(The Telecommunications Act) 개정을 포함한 개혁(안)의 골자는 크게 2가지다.

 이를 보면 FCC는 우선 통신 분야에서 그 동안 논란을 빚었던 4개 지역전화 회사들의 통신망 개방 의무조항을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미디어 분야에서도 FCC는 그 동안 공룡 미디어 기업이 출현해 여론을 독점·왜곡할 것을 우려, 한 지역에서 방송 및 신문사를 동시에 소유하는 겸업금지 등 미디어 기업 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해왔으나 앞으로 이를 대폭 완화할 계획이다.

 먼저 통신 분야를 보면 FCC의 마이클 파월 위원장(39·사진)은 최근 미 상원 통신위에 참석해 “오는 2005년부터 4개 지역전화 회사들의 통신망 개방 의무조항을 폐지하겠다”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안)을 내놓아 관련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파월 위원장은 “장거리 전화회사들이 지금처럼 지역전화 회사 통신망을 빌려 이들과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해는 미국이 지난 96년 제정한 통신법에 따라 4개 지역전화 회사들의 장거리 전화 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대신 지역전화 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통신망을 경쟁업체들에 개방할 것을 요구해왔던 통신정책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만약 이 같은 방침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면 미국 통신 서비스 산업은 사실상 4개 지역전화 업체를 중심으로 재편되어 96년 이전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버라이존 등 4개 지역전화 회사들은 FCC의 움직임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는 반면 AT&T 등 3개 장거리 전화회사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방송과 신문 등으로 대표되는 매스 미디어 분야에서도 앞으로 큰 변화가 예상된다. FCC는 그 동안 한 지역에서 방송 및 신문사를 동시에 소유하는 겸업금지 등 미디어 기업 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해왔으나 앞으로는 미디어 분야에도 완전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대폭 완화할 계획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인터넷과 위성 방송, 케이블 TV 시청이 늘어나는 등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겸업금지 등 소유권 제한 규정은 더 이상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매스 미디어 관련 업계에도 오는 2005년부터 업체들간 통폐합이 잇따르고 영화 및 TV 프로그램 제작 및 배급 환경에도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

 이처럼 최근 FCC가 추진하고 있는 통신 및 미디어 정책은 ‘미국 전화 및 신문·방송 시장의 밑그림부터 다시 그리겠다’는 의도를 담고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FCC는 이달 파월 위원장을 포함해 5명의 통신위원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통신법의 관련 규정을 개정한 후 2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5년부터 이를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 통신 및 미디어 관련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FCC가 통신 및 미디어 사업환경을 사실상 96년 이전으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쟁 원리 도입에 집착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FCC는 미국 통신 환경이 그 동안 엄청나게 변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지난 96년 통신법을 제정할 당시만 해도 4개의 베이비벨들이 지역전화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던 상황에서 미국 정부 입장은 장거리 회사들과의 경쟁을 통해 통신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케이블 사업자들이 지역전화 시장에 속속 진출하는 데다가 휴대폰 가입자가 늘어나 지역전화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굳이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또 미국 전역에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지역전화 사업자들의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마련해 줄 수밖에 없다는 정책적 배려도 작용한 것으로 관련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FCC를 이끌고 있는 마이클 파월 위원장의 개인적인 성향을 들 수 있다. 파월 위원장은 2001년 FCC 위원장에 취임할 때 “미국에 이익이 된다면 독점도 큰 문제가 안 된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평소 시장경쟁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사진설명>마이클 파월 FCC 위원장이 미 상원 통신위에 참석해 통신법 개정을 반대하는 한 의원의 질문을 받고 난감한 표정을 하고 있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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