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The News]강철희 한국통신학회장

 기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3년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강철희 통신학회장(56·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의 취임 일성도 학회의 기본에서 시작한다.

 “학회는 하나의 사회(society)입니다. 전문지식을 갖춘 회원들이 최신기술정보를 발표, 토론하며 이를 전파하고 나누어 가지는 일이 학회의 기본입니다. 한해 동안 열리는 60여회의 학술대회를 잘 치러내 학회의 기본기능을 충실히 하는 것이 올해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30여년 역사에 재적회원 1만3560명 규모의 초대형 학회인 만큼 기본을 지키는 것(연례행사)만으로도 신임 학회장의 스케줄은 눈코 뜰 새 없다. 인터뷰 다음날인 9일부터는 제주도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자리해야 하고 그 다음주에는 통신학회 신년모임에 참석해야 한다. 그러나 골프를 치면 ‘싱글’에 이르고, 수영을 하면 인명구조원 자격을 따내고, 그것도 모자라 주말이면 산으로 향할 정도로 열정적인 강 교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 교수는 “통신학회는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이미 학회원들이 국내 IT정책, 기술, 시장의 곳곳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러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학회가 내부의 토론과 교류를 통해 얻은 결론들을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외부에 전달하려는 노력을 더욱 기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IT는 제대로된 선장을 만나야 할 때다. 통신부문에서 일본에 이어 3세대 서비스의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으며 초고속인터넷 광대역망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 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어떤 서비스를 구상해야 할지를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그야말로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는’ 입장에 처한 것. ‘어느 순간 보니 벤치마킹할 대상국이 없더라’는 정책담당자의 자부심 섞인 고뇌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강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3세대 이후 이동통신이다. “3세대 이후 통신의 연구 및 표준화 활동에 학회가 기여할 길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세계 유일의 CDMA워크숍 CIC(CDMA International Conference)도 활성화해 이에 힘을 보탤 것입니다.” 3세대 이후 통신은 아직 표준화 작업이 본격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부터 3세대 이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학술적인 기여들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통신학회는 지난해 CIC의 주제를 3세대 이후로 잡는 등 이에 대응하고 있다.

 차세대인터넷과 텔레매틱스 등 유망 서비스도 올해 강 교수가 주력할 분야들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환경은 이를테면 집에서 고속도로까지의 길을 아주 잘 닦아놓은 것과 같습니다. 고속도로는 아직 충분히 넓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달리는 자동차들은 아직 너무나 적습니다.” 강 교수가 말하는 차세대 인터넷이란 단순히 전송속도가 빨라지거나 트래픽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우선순위와 질을 보장하는 관리차원과 이의 활용도를 높이는 소비자 차원을 모두 고려한 개념이다. 단순히 기술만의 문제는 아니다. 강 교수는 학회내 소위원회나 발표회 형태로 이에 대한 개념정립과 요구사항 제안 등의 사업을 벌여갈 계획이다. 텔레매틱스 부분에서는 일본과 공조해 열고 있는 ITST(Intelligent Transport Systems Telecommunications) 워크숍도 보다 활발히 진행한다는 복안이다.

 학회 내부적으로는 업무의 전산화를 이뤄 논문 접수 및 심사를 온라인으로 하고 논문제출자들이 심사과정을 온라인으로 체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출 생각이다. 통신학회의 논문지인 JCN(Journal of Communication and Networks)은 미국 전자공학회(IEEE Communication Society)와의 공동출간을 추진중이다. 강 교수는 “공동출간을 하면 학회지의 권위와 수익이 훨씬 커질 것”이라며 “JCN의 모든 과정을 웹에서 진행하는 기반을 만들어 놓겠다”고 말했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프로젝트에도 기여한다. 통신학회는 미국의 공학교육인증기관(ABET)의 대학 교육과정 인증(ABEEK)을 우리나라에도 도입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인증을 받으면 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미국이나 영국의 학위를 받은 것으로 인정돼 현지의 기술사시험 1차 합격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말하자면 교육의 ISO9002인 셈이다. 통신학회는 이를 도입하기 전 통신분야 학과들의 평가기준 검토를 담당하게 된다.

 이밖에도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만나 IT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일도 강 교수가 해야할 주요 역할이다. 그런 강 교수에게 ‘노 당선자의 차기 정부가 IT부문에서 주력해야할 과제’를 물었다. 그러자 수십년간을 연구계와 학계에 몸담아온 만큼 이 부분에 죽비를 내리친다.

 “정부의 국책연구소는 기업이 할 수 없는 각 부분의 미래를 조명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경우 산업체가 맡아야할 법한 사업화에 직결된 연구과제가 너무 많습니다. ETRI가 스스로 연구기능을 통해 IT의 미래를 그리고 이에 대한 요소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합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도 과감히 연구하는 것이 국책연구소의 장점일 수 있습니다.”

 강 교수의 견해는 대학교육으로 이어진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예산중 대학에 투자되는 것은 0.4%에 그칩니다. 그외의 연구개발(R&D) 지원금도 ‘사막에 오줌 누기’식으로 선택과 집중이 안되고 있습니다. 연구개발지원은 평등의 원칙이 적용돼서는 안되는 분야입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한 선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학의 인력양성과 기초연구를 장려하기 위한 올바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강 교수는 R&D정책의 근본적인 변환을 강조했다. 선택과 집중의 과감한 투자를 하되, 비리 등 일부 부작용을 우려해 연구에 대한 감시와 평가를 옥죄면 투자의 본뜻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측면의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접근방식의 큰 변화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과학기술 입국이라는 거창한 캐치플레이즈는 이러한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두 시간여의 인터뷰 내내 왕성한 의욕과 정열을 보여준 강 교수는 그러한 작은 실천의 출발점을 짐작케 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64년 동래고졸 △71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2년 수료 △75년 일본 와세다대 전자통신과졸 △77년 와세다대 대학원졸 △80년 공학박사(와세다대) △80년 일본 후지쯔사 위촉연구원 △80∼94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실장·부장·본부장·통신시스템연구단장·선임연구위원 △80∼8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과 대우교수 △91∼94년 충남대 전자공학과 겸임교수 △94년 미국 워싱턴대 방문교수 △95년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현) △97년 과학기술처 창의적 연구진흥사업 추진위원 △98년 정보화추진자문위원회(국무총리실) 위원 △98년 고려대 정보통신공동연구소장 △98년 현대전자산업(주) 사외이사 △2000년 한국통신학회 부회장 △2000년 서울이동통신 사외이사 △2000년 파워콤 자문위원(현) △2000년 APAN-KR의장 △2001년 (주)하이닉스반도체 사외이사 △2001년 ETRI자문위원 △2003년 한국통신학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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