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권하는 책]이길재 농수산쇼핑 회장

 *옛날신문을 읽었다/ 이승호 지음/ 다우 펴냄

 

 일전에 20여세나 어린 한 후배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받았다. 후배는 자신이 쓴 책을 선물한 것이었는데 ‘옛날신문을 읽었다’는 특이한 제목을 붙이고 있었다.

 ‘옛날(舊)’이라는 말과 신문의 ‘신(新)’자가 주는 묘한 느낌 때문에 책을 펼쳐들었다. 책은 제목대로 수십년 전의 신문기사를 읽은 뒤 오늘의 시각으로 반추나 회고를 해보기도 하고 추억이나 회한에 잠겨보기도 하는 방식으로 쓴 것이었다.

 책은 멀게는 50년대부터 가깝게는 80년대까지의 묵은 옛날 신문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 기사들을 통해 나의 젊은 나날을 되돌아볼 수 있었으며 애잔한 추억에 잠겨볼 수도 있었다.

 특히 농민운동을 오래 하고 현재 식품전문 홈쇼핑사의 회장인 나로서는 옛날 사람들의 식생활 부분에 저절로 눈이 쏠리곤 했다.

 63년 5월의 한 신문에는 당시 주부의 식단 차림표가 소개돼 있다.

 ‘아침=밥·찌개·묵무침·당근조림·깻잎무침·깍두기’ ‘점심=도시락·당근조림·오징어자반·계란프라이·찬밥·찌개·깻잎나물’ ‘저녁=김밥·깍두기’

 60년대 초반의 식단치고는 매우 화려한 편이다. 신문은 당시의 가정생활을 혁신하기 위해 공모한 ‘가정기자(주부)’의 일기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아마 아들과 딸의 도시락에 계란을 하나씩 부쳐 싸보냈을 것이고 자신은 식은 밥과 신김치로 한끼를 때웠을 것이다.

 76년의 한 신문에는 혼분식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사회문제들을 조명하고 있었다. 정부는 목숨걸고 절미운동 차원에서 혼분식을 장려했고 그에 따라 학교에서는 혼식을 하지 않은 학생들의 국민윤리 점수를 깎고 있었다. 분식을 하기 위해 종종 빵을 싸주곤 했던 학부형들은 빵값이 부담돼 힘들다는 하소연도 하고 있었다.

 이십수년 전 바로 이 땅에서 있었던 얘기인데도 우리한테 과연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할 정도였다.

 책은 이밖에도 야간통금과 만원버스, 장발족, 모던걸, 명랑운동회 등의 사건들을 마치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다채롭게 펼쳐보이고 있다.

 남자친구로부터 강제키스를 당하고 자살한 처녀의 얘기는 신문 사회면 가십기사로 실려있는데 당시의 막무가내식 순결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고, 단지 머리가 길고 치마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범법자 취급을 받던 70년대의 젊은이들에 관한 기사는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신(新)과 뉴(NEW)가 판치는 세상에서 저자는 왜 구태여 옛날신문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을 시도한 것일까. 저자의 설명은 이랬다.

 “옛날신문들은 잘 정리된 단행본보다 더 매혹적인 역사책이요, 풍속사책이었다. 교과서처럼 잘 정리된 단행본은 지나간 연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기는 하지만 살은 발라내고 뼈만 앙상하게 남겨두기 일쑤였다. 그러나 엣날신문에는 사람들의 체온, 숨결, 땀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는 통상 한 시대를 관찰하고자 할 때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틀에 박힌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그러나 그런 잣대만으로는 그 시대의 ‘개인’과 ‘생활인’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옛날신문에는 그 간과된 부분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돌이켜보면 과연 그렇다.

 50년대는 전쟁과 굶주림의 시대였고, 60년대는 구호와 포스터에나마 희망을 담아 몸무림치던 시절이었다. 그런가 하면 70년대는 갖가지 금기의 기제와 이상스런 집단주의가 망령처럼 떠돌던 시절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슴깊이 느낀 점은 이런 것들이다. ‘아, 그래도 이 사회는 나름대로 발전을 해왔구나’하는 깨달음이다. 반문명에서 문명으로, 반문화에서 문화로, 전근대에서 근대로, 군관의 시대에서 민의 시대로, 지시와 계몽의 시대에서 합의의 시대로 조금씩 조금씩 변화해왔다는 깨달음은 이 책이 선물한 큰 소득이었다.

 책의 뒷장에는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추천사가 담겨있었다.

 조 교수는 “저자가 읽어주는 옛날신문을 보니 지난 5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며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없는 젊은이들이 이 책을 더 많이 읽기를 바란다”고 쓰고 있었다.

 왜 아닐까. 역사란 하루와 하루, 1년과 1년이 모이고 이어져 이뤄지는 것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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