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노무현 `IT엿보기`

◆이윤재 IT산업부장 yjlee@etnews.co.kr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유세 때부터 ‘정보통신 일등국가’를 만들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이를 위해 인터넷의 보편적 서비스제도를 도입하고 이용요금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내려 ‘전국민 인터넷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전자정부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모든 공공서비스를 쉽고 빠르게,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았다. 또 장애인 등 IT 취약계층을 위한 통신요금의 할인확대 등을 통해 정보격차를 해소, 모든 국민이 정보화 혜택을 누리는 IT복지국가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산업적 측면에선 세계 1등 기술 100개를 집중 육성하고 연구개발(R&D)을 확대해 CDMA에 이어 IT개발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갈 것을 강조했다. IT요소기술과 소프트웨어 개발 등은 중소·벤처기업들이 주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디지털콘텐츠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해 디지털콘텐츠 산업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IT고급인력 10만명 양성책도 내걸었다.

 그의 공약을 보면 정보통신 일등국가로 가기 위한 핵심과제를 족집게처럼 뽑아낸 것들이 많다. 공약 수준에 그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 그의 ‘정보통신 일등국가’ 캐치프레이즈가 인터넷대통령, IT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대통령당선 후에는 인터넷을 통한 장관추천과 정책수렴에까지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인수위원회 구성과 10대 국정과제 등을 접한 IT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그동안의 당선자 공약이나 행보에 비춰볼 때 인수위 전문위원 중에 IT전문가가 당연히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10대 국정과제 가운데 IT는 한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IT가 동북아경제 중심국가 건설이나 지식문화강국 등의 국정과제를 실천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안되는 대목도 아니다. 그렇지만 화려한 IT공약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카드로 정보통신 일등국가를 뽑았다면 10대 과제는 아니더라도 주요 실천과제에 IT가 들어갔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선거 때부터 IT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IT수석 신설은 비서실 축소방침에 밀려 백지화됐다. 어찌보면 청와대 비서실에 IT수석을 두겠다는 것 자체가 워낙 파격적이어서 실망감이 컸다. IT수석 신설은 노 당선자의 IT의식을 엿볼 수 있는 가늠자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당선자의 IT 관련 공약은 크게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당선자나 인수위 주변에선 정보통신 일등국가의 필요성과 이에 따른 IT정책 조율의 시급성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다. 잘 돌아가는데 굳이 손댈 필요가 있겠냐는 얘기도 들린다. 마치 조삼모사나 용두사미처럼 흘러갈까 걱정이다.

 노 당선자는 우리나라 IT 현주소가 아직은 속빈 강정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인프라스트럭처만 깔려있을 뿐 아직은 허상투성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삼성전자나 SK텔레콤 같은 IT 대기업이 떼돈을 벌어들이는 이면에는 하청업체들의 피눈물이 마를 줄 모르고, 통신요금을 내리면 한순간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위약한 구조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노 당선자의 IT엿보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주변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갖춘 IT조정기구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정보통신 일등국가 하나만 실현해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노 당선자는 잊지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