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연구소 위규진 박사(48)는 ‘대한민국 통신외교관’이다. 그가 맡은 직책만 해도 국제전기통신연맹(ITU) 작업반(WP 8F) 부의장, 아·태전기통신공동체(APT) 관리이사회 부의장 등 여러가지다. 올해 열리는 세계전파통신회의(WRC)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위원회(commitee)의 의장 선임이 유력하다. 빈번히 열리는 표준관련 회의에 그가 참석하지 않으면 e메일로라도 의견을 꼭 물어온다. “그만큼 IT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위 박사는 공을 돌리지만 적어도 그 창구는 바로 위규진 박사다.
의제의 단어 하나로 각국의 이해가 갈리는 ‘표준전쟁’에서의 외교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제채택은 투표(voting)로 하지만 사실상 중요한 각 의제 작성시에는 합의(consensus)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 합의는 그야말로 영향력 싸움이다. ‘모두가 찬성하는데 미국대표가 반대하는 경우’와 ‘한 후진국 대표가 반대하는 경우’ 전자는 합의실패, 후자는 합의성공으로 갈린다. 전파통신 국제표준회의에서 널리 알려진 위 박사의 외교력은 IT코리아 영향력의 바로미터가 된다. 아시아의 소국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정보통신강국으로 발돋움한 우리나라의 ‘IT성공신화’에는 지난 95년 낯선 한국대표(Korea Delegate)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위 박사(닥터 위)로 자리매김한 그의 8년간의 노력이 속속들이 배어있다.
“처음 전략은 가장 강한 상대와 대결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위 박사는 7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96년 봄, 차후 일정을 정하는 ITU회의. 일본 대표가 IMT2000의 표준제정 일정을 구체적으로 적은 의제를 내놓았다. 그 일정대로라면 표준제정에 우리나라가 기여할 부분은 전혀 없는 위기상황. 모두가 일본의 제안에 수긍하는 가운데 한국에서 온 낯선 대표가 반기를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았다.” 회의장은 말그대로 벌집이 됐다. 위 박사는 한 시간 반 동안 침묵으로 대응했다. 이후 잠시 동안의 휴식시간, 의장을 만나 논리를 편 끝에 일정을 6개월 늦추는 데 성공했고 그로 인해 3GPP의 출범에 우리나라의 지분을 얻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후에도 위 박사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도 숱한 벼랑끝 논리싸움을 치러낸다.
“관심을 끈 뒤에는 논리적이면서도 합리적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노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한 다음 양보할 부분은 과감히 양보해 대화상대로 인정받은 것. 우리의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정의파’로서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세번째 전략은 다름아닌 ‘노력’이다. 94년 국제회의 참석전 각국의 주요인물을 일일이 찾아가 의견교환을 했다. 모두들 꺼려하는 회의록 정리도 휴식을 헌납한 그의 몫이었다.
다시 2003년. 이제는 위 박사가 회의에서 함구하고 있으면 모두들 신경을 쓴다. 우리나라 회의 참석자가 공격을 받으면 방어해주는 것도 그다. “표준선점은 곧 산업의 주도권으로 이어집니다. 이제 3세대 이후의 통신표준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입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통신사업자, 장비업체, 단말기 업체가 협력해 우리의 영향력을 더욱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신외교력을 키우려는 그의 IT신화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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