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동전화가입자 3000만명, 초고속인터넷가입자 1000만명을 넘어선 정보강국이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도 한국의 이러한 IT 인프라를 부러워한다. 한국은 IT에 관한 한 이미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휴대폰과 반도체, LCD, 이동통신 등은 세계시장을 리드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은 IT에서 또 한번의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셈이다.
그러나 아직은 인프라 범주일 뿐이다. IT강국을 뒷받침할 만한 환경이 미흡하다. 사회·문화적 환경을 갖추지 못한 IT탑은 어느 순간에 무너질지 모른다. 이제는 새롭게 형성되는 IT문화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 ‘노블리스 오블리제’ IT한국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손연기 원장은 “90년대 초기에 IT문화를 연구할 때만 해도 국외 사례를 국내에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최대의 관심거리였지만 최근 몇년간 한국의 IT가 급성장하면서 지금은 해외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IT의 문화적인 역기능을 차단하고 순기능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군 장갑차 사고로 사망한 여중생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된 촛불시위는 새로운 IT문화의 파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시민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도화선이 된 촛불시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문화가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지난 월드컵에선 인터넷이 ‘대∼한민국’ 거리응원단을 모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IT는 사이버 선거문화를 정착시켜 대선주자들이 오프라인 못지 않게 온라인을 통한 유세에 열을 올렸다.
치기어린 젊은이들의 사이버문화마당으로만 치부했던 인터넷이 여론을 형성하고 길거리로 사람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장관도 온라인 추천을 받아 뽑는 세상이다. 전자정부도 만들어졌고 산간벽지에 컴퓨터도 보급됐다. 요즘은 노인들도 동사무소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물건을 사고 판다.
하지만 이면에는 음란사이트가 범람하고 스팸메일이 판을 치고 있다. IT는 문화적으로 순기능만큼이나 역기능도 많이 생산했다. 인터넷을 통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도박판도 벌어진다. 세대간의 단절도 심화되고 국어사전에 없는 언어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는 IT산업육성과 함께 문화적인 정립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부처간 분리된 IT문화 관련업무도 하나로 묶고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도 모아야 한다. 정보격차 등 IT문화에 관한 예산도 높여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도 관심을 높이고 국가적 비전도 나와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터넷 붐을 타고 IT리더로 각광받았던 젊은 최고경영자(CEO)들이 각종 비리와 부패로 연루돼 구속되는 것을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지식과 기술에는 막강한 경쟁력을 갖추고도 사회가 요구하는 책임의식과 윤리, 합리적인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교육기관이 IT기술인력 양성에 급급한 나머지 문화생산자를 양산하는 데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정보화시대에도 산업화시대의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보화교육은 기술과 윤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문화교육은 전무한 실정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IT는 모두 기술서적이고 그나마 인문대에서 인터넷 윤리를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사이버문화연구소 김양은 박사는 “미국이나 유럽에선 학교에서 기술교육을 하지 않고 IT를 통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고 일하는 방법을 가르킨다”며 “우리나라는 대학이 IT자격증을 따는 교육기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모 벤처기업 CEO는 “낡은 교육과 사고로는 지식·정보사회에 적합한 IT인재양성과 새로운 문화창조는 요원한 일”이라며 “교육을 통해 IT문화에 대한 새로운 원칙과 패러다임을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IT문화를 만들어내는 정보생산자의 환경도 개선돼야 한다. 지나치게 정보와 돈을 직결시키다보니 양질의 정보와 온라인에서 네티즌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고 있다. 성인사이트와 쇼핑몰이 인터넷 수익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현실에서 올바른 사이버문화를 세우기는 한계가 명확하다. 인터넷 초기 각계각층의 생각을 담아내는 웹진이나 온라인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02년은 월드컵과 대선을 거치면서 온라인의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개인이 인터넷에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알게 해줬다는 점에서 문화적으로 의미가 크다. 올해는 이같은 문화가 하나의 문화적인 틀로 자리잡을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유행에 불과할지를 가름하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산업육성과 기술자 양산에만 초점을 맞췄던 IT정책을 이젠 문화쪽으로도 확대해야만 한국은 진정한 정보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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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보문화진흥원 손연기 원장, 한국정보문화진흥원 김정문 박사, 사이버문화연구소 김양은 박사, 광운대 조광섭 교수,아이리버 양덕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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