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철 아이온 커뮤니케이션즈 사장(i@i-on.net)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반가운 소식들이 종종 눈에 띈다. 바로 한국의 IT솔루션이 해외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드웨어 솔루션에서부터 인터넷 솔루션, 기업용 솔루션까지 해외에서 선전하는 업체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산업전반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볼 때 반가운 뉴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IT업계의 붉은 악마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IT솔루션이 해외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배경을 살펴보면 입맛이 그렇게 개운하지만은 않다. 외국의 솔루션기업처럼 국내시장을 평정하고 매출확대나 사세확장을 위해 외국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 문제로 진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한국 IT솔루션 시장은 어느 유명 CEO의 말처럼 포화상태다.
시장은 일정한데 수많은 솔루션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로운 솔루션이 그 경쟁에 다시 참가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가수주는 일반적인 일이고 어느 경우에는 출혈수주까지 감수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솔루션 기업들이 분명히 국내에서 매출을 올리고 레퍼런스를 차곡차곡 만들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 안돼 문을 닫고, 다음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유가 대부분 여기에 있다.
국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고 제대로 된 가격과 대접을 받지 못하니 결국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벼랑 끝에 몰려서 해외에 나가게 되니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르게 된다.
첫번째 부작용은 항상 서두른다는 것이다. 당장 해외실적이 나타나고 자금이 들어온다는 사실 때문에 국내 솔루션 업체들은 해외바이어와의 거래에 있어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 더욱 좋은 조건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외산 솔루션기업들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진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번째 부작용은 이렇게 서두르다 보니 함량미달 제품이 공급된다는 것이다. 얼마전 일본에서 만난 해외바이어 중 한 사람이 필자에게 한 말을 글로 옮기면 정확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한국의 솔루션은 경쟁력이 있습니다. 솔루션의 종류도 다양할 뿐더러 가격도 저렴하고, 좋은 인터넷 인프라에서 테스트도 완료한 제품이기 때문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미팅할 때는 대부분의 기능이 된다고 하고 안되는 부분은 쉽게 개발해서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품을 막상 들여와서 판매하려고 하면 80% 제품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더이상 한국솔루션을 신뢰하기가 힘듭니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솔루션은 70∼80년대에 한참 수출했던 봉제제품 꼴이 되기 딱 좋게 되는 것이다. 제품은 그저 그렇고 인건비가 싸고 제품가격이 저렴해서 사주는 것이고 더 싼 제품이 나오면 중국에 밀리듯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차세대 수출주력 상품이라고 기대하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수출품목이라고 하는 한국IT솔루션이 봉제제품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유실수를 심는 듯한 산업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첫째, 솔루션 기업의 변화다.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제품의 완성도를 높여야만 한다. 제품을 빨리 개발하는 것과 고객이 만족할 만큼 테스트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분명히 다른 부분이다. 대부분의 국산 IT솔루션이 제품 완성도에서 저평가를 받아서 해외시장 진출이 좌절되거나 악조건으로 수출될 뿐 아니라, 한국 IT솔루션 제품 전체의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는 점을 상기하도록 하자.
둘째, 국내 솔루션 도입 기업들의 변화다. 무조건적인 외산 IT솔루션 선호성향이라던가, 해외 레퍼런스를 중심으로 안정성을 평가한다던가 하는 것은 수년전의 흐름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국산 IT솔루션을 인정해줘야만 한다. 실제로 외국의 선진기업에서는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IT솔루션의 국내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역할이 바로 국내 솔루션 도입 기업의 또 하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셋째, 산업정책의 변화다. 70∼80년대식의 ‘무조건적인 수출확장 정책’은 이제 무의미하다. 이제는 ‘질적인 수출확장 정책’을 펼칠 때다. 총액을 기준으로 한 수출진흥이 아닌 IT솔루션만을 위한 수출진흥 기준을 입안해서 실행해야 한다.
필자는 2003년이 한국 IT솔루션이 해외시장에 진출해 외산 솔루션과 어깨를 겨루고 당당히 시장에 자리잡게 되는 기초를 세우는 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해외시장에 좀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잦은 비바람에 과실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앞서 언급한 솔루션 기업, 솔루션도입 기업, 산업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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