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정보통신업계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새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은 ‘수출’과 ‘설비투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휴대폰·반도체 등 주요 IT품목의 수출이 호조를 유지하고 이 분야를 중심으로 기업의 설비투자가 살아나면서 IT산업이 우리 경제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봤다. 이런 사실은 본지가 지난해 말 국내 전자·정보통신업계를 대표하는 CEO 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새해 전자·정보통신산업 경기전망’에서 밝혀졌다. 이번 조사에는 정보통신, 인터넷, 가전, 반도체·부품, 산업전자, 컴퓨터(하드웨어), 소프트웨어·시스템통합(SI)·솔루션, 방송·게임·영상, 유통산업, 증권·캐피털 등 주요 IT업종의 CEO들이 고루 참여했다. 이번 조사가 새로운 경영계획 수립과 새해 사업 구상에 도움이 되길 기대해본다. 20명 CEO의 새해 IT경기 전망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해 IT경기 ‘흐린 뒤 차차 맑음’=전자·정보통신업계를 이끌고 있는 20명의 CEO가 전망한 새해 IT기상도는 한마디로 ‘흐린 뒤 차차 맑음’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상반기에는 다소 어렵겠지만 하반기부터 수출과 내수가 호전되면서 IT산업도 회복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부 업종의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저기압이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연말까지 거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감을 나타냈다.
업종별로도 새해 경기전망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통신업종의 경우 단말기·시스템·서비스 분야를 막론하고 대다수 CEO가 ‘대체로 맑음’을 예상,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휴대폰을 필두로 한 통신업종이 IT산업을 견인해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유무선통신업계를 대표하는 KT의 이용경 사장과 LG전자 김종은 사장은 “올해 국내 통신시장은 지난해보다 7∼8% 성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는 한국은행(5.7%)·KDI(5.3%)·산업연구원(5.6%) 등 각 기관이 예상한 올해 경제성장률 5.3∼5.7%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들은 통신산업의 성장요인으로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 및 인프라 확대와 무선랜·VDSL 등 차세대 초고속인터넷서비스의 확산, 유무선통합 등 새로운 서비스의 등장 등을 꼽았다.
인터넷·게임·디지털영상콘텐츠업계도 새해에는 주5일 근무 확대실시와 여가문화 형성 등에 힘입어 엔터테인먼트시장의 질적·양적 성장이 예상되는 등 시장환경이 좋아질 것으로 낙관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대표적인 닷컴기업인 NHN 이해진 사장은 “2002년은 확실한 수익모델을 갖춘 닷컴기업이 실적발표를 통해 인터넷이 더이상 거품이 아님을 입증한 한해였다”며 “새해에도 인터넷게임·전자상거래·온라인광고 등 주요 업체의 포트폴리오를 볼 때 30% 이상 고도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낙관했다.
반도체와 컴퓨터업계의 CEO들도 Y2k 특수 이후 주춤하던 PC 수요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교체시기와 맞물려 올 하반기 이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적잖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삼보컴퓨터 이홍순 부회장은 “3∼4년마다 반복되는 PC교체시기의 도래와 노트북 수요 확대에 힘입어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의 이윤우 사장도 “D램 수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PC시장의 성장을 바탕으로 두 자릿수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네트워크와 시스템통합(SI)업계의 CEO들은 새해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경기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SDS의 김홍기 사장은 “신정부의 IT산업 지원 및 육성책, 금융업계의 통합과 구조조정에 따른 수요 발생 등으로 인해 SI시장이 올해보다 12%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전반적인 시장환경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네트워크장비 전문업체인 텔슨정보통신 김지일 사장도 “데이콤 컨소시엄의 파워콤 인수를 계기로 올해는 어떤 형태로든 통신시장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상존하고 있어 경기예측이 어렵다”며 새해 시장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음을 내비쳤다.
◇수출·내수 ‘비교적 맑음’=새해 내수경기 전망을 묻는 질문에 대해 20명의 CEO 중 대다수는 새해에는 지난해보다 내수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내수경기를 밝게 보는 이유로는 ‘소비심리 회복에 따른 소비증가’ ‘정권교체에 따른 불안 정국의 해소’ ‘신정부의 경기부양정책’ ‘기업의 투자심리 확대’ ‘주5일 근무제 확산’ 등을 꼽았다.
간판 소프트웨어업체인 한글과컴퓨터의 김근 사장은 “지난해 내수시장이 민간소비 증가로 유지됐다면 올해는 하반기부터 기업의 투자가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새해에도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웹서비스시장에서 선두를 지킬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디지털콘텐츠 전문업체인 스펙트럼디브이디 박영삼 사장은 “주5일 근무제 확산으로 여간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 단위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홈시어터를 구입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며 “새해에는 DVD타이틀시장이 전년보다 2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수출 전망을 묻는 질문에서도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미국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 탓인지 ‘나빠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적지 않았다. 수출경기를 낙관하는 이유로는 ‘미국경기 회복’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다음으로 ‘수출경쟁력 향상’ ‘중국시장의 성장’ 등이 뒤를 이었다.
게임전문업체인 한빛소프트 김영만 사장은 “지난해 내수시장에서 일궈낸 폭발적인 성장세를 바탕으로 새해부터는 해외 비즈니스를 강화할 계획”이라며 “특히 일본 진출에 성공할 경우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은 세계 최강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이라며 수출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처럼 새해에는 수출전략산업으로 이미 자리매김한 휴대폰·반도체·컴퓨터 등 전통적인 하드웨어업종에 이어 게임·디지털콘텐츠·방송기술·e마켓플레이스 등 소프트웨어업종을 중심으로 해외 비즈니스가 활발히 전개되면서 수출전략상품이 다양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관련 산자부는 최근 발표한 2003년 수출전망을 통해 새해에는 세계 IT수요 회복에 힘입어 이른바 ‘원투펀치’인 반도체와 무선통신기기가 각각 20% 안팎의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IT가 우리나라 수출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했다.
품목별로는 지난해의 경우 무선통신기기(39.0%)를 비롯한 반도체(16.4%)·컴퓨터(15.7%)·가전12.5%) 등 주요 IT품목 대부분이 두 자릿수 수출증가율을 기록하겠지만 새해에는 무선통신기기(21.9%)와 반도체(19.3%)만 두 자릿수 증가율을 유지할 뿐 컴퓨터(6.9%)와 가전(5.5%)은 증가율이 다소 주춤할 것으로 예측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세계경제회복과 중국의 고성장 등 긍정적인 요인과 미·이라크 사태, 중국과의 경쟁심화 등 불안요인이 상존하는 만큼 수출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며 “다만 IT수요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새해에도 IT가 수출을 견인할 것을 예상된다”고 말했다.
◇수출과 설비투자가 성장동력=경기회복시기를 묻는 질문에 대다수 CEO는 가계대출 억제에 따른 내수둔화와 미·이라크전쟁 발발 가능성으로 인해 상반기에는 다소 어렵겠지만 수출회복과 설비투자 확대로 하반기부터 IT경기도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HP 최준근 사장은 “세계 IT경기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위험에서 벗어나는 올 하반기 이후 회복국면에 접어들고 국내 IT경기도 하반기를 기점으로 반등세로 접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늦어도 내년 하반기부터 국내 IT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CEO들은 상반기까지 신규투자를 집중하되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가장 중시하고 다음으로 인력양성, 설비투자, 해외시장 개척, 정보화부문 활성화 등의 순으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할 방침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내놓은 설비투자 동향분석 보고서를 통해 하반기 들어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함에 따라 그간 지지부진하던 기업의 설비투자도 IT산업을 중심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최근의 설비투자는 일반제조업에 비해 IT산업 쪽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LCD·PDP 등 신규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전기·전자업종과 비메모리 등 반도체 분야의 신증설 투자가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재정경제부도 내년에는 시중은행들의 금리인상과 가계대출 억제로 지난해 경제성장을 주도한 민간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회복에 힘입어 수출증가세가 지속되고 새 정부 출범으로 새로운 사업들이 추진되면 설비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우리금융그룹의 윤병철 회장은 “대내외 경기여건이 불확실하지만 하반기부터 IT산업을 중심으로 수출이 회복되고 기업의 설비투자가 증가되면서 경기가 호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IT분야로 사업다각화를 강화하고 나선 LG화학 노기호 사장은 “내년에는 2차전지 생산의 종주국인 일본과의 본격적인 격돌이 예상된다”며 “이를 위해 새해에는 과감한 투자로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해 일본의 아성에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아이마켓코리아 현만영 사장은 “신정부 출범에 따른 IT정책의 강화와 기업들의 정보화 투자 확대로 e비즈니스 기회가 늘어나고 e마켓플레이스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기업들의 IT부문 투자 확대가 경기상승의 관건이 될 것”임을 재확인했다.
기업용 솔루션전문업체인 코인텍 서진구 사장은 “전사적자원관리(ERP) 분야의 경우 산자부의 ‘포스트 3만개 IT화 사업’에 힘입어 내수가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되고 하반기부터는 기업들의 IT투자 의지가 되살아날 것으로 보여 새해에는 R&D투자를 20% 정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씨앤앰커뮤니케이션 오광성 사장은 “새해에는 모든 방송매체가 디지털로 본격적으로 전환되고 방송·통신 융합추세에 따라 유무선을 초월해 음성·데이터·동영상이 함께 가는 종합멀티미디어 경쟁시대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이에 따라 방송·통신업계의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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