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재도약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잃어버린 신뢰회복과 현 정부가 일궈놓은 양적 성장의 토대를 어떻게 질적 성장으로 전환시키느냐는 것이다.
현재 벤처업계는 길고 긴 침체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한때 우리 경제의 미래라고 일컬어지면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벤처기업들이 국민의 무관심과 배척 속에서 고사위기에 몰린 것이다.
벤처붕괴의 원인은 전세계적인 정보기술(IT) 거품붕괴, 도덕적 해이에 빠진 벤처기업가들, 정부의 잘못된 벤처정책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양적 성장 위주의 벤처정책과 벤처기업가 스스로의 잘못은 현재의 벤처침체를 만든 주범으로 꼽힌다.
당초 정부는 외환위기 후 벤처기업 육성을 단기 고용대책의 하나로 인식해 몇 년 안에 벤처기업을 몇 만개 육성하겠다는 식의 잘못된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 벤처기업 육성 명목으로 산업정책 차원을 넘어선 엄청난 직접지원이 자금·세제 측면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부의 직접지원은 오히려 우리 벤처산업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시장’이 아닌 ‘정부’가 벤처기업을 판정하는 벤처인증제와 이에 기초한 비효율적 자금지원은 정치권력과 벤처기업간 새로운 정경유착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벤처기업을 온실속의 화초로 만들었다.
벤처산업의 위기는 관련지표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1만1392개로 최고를 기록했던 벤처기업수는 올해 들어서는 월별로 평균 200여개씩 줄어들면서 2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는 정부가 벤처확인기업에 혁신능력평가를 통해 부실벤처 600여곳을 일괄정리한데다 벤처경기의 침체로 창업열기가 급격히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옥석을 가리는 과정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경쟁력을 가진 벤처기업이 그만큼 줄어들게 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창구역할을 해온 코스닥시장도 4월 중순 이후 미국 나스닥시장 하락의 영향으로 추락하기 시작해 50선도 넘지 못하고 있다.
코스닥의 침체와 등록심사의 강화, 창업열기 위축 등으로 민간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한 벤처투자 실적도 지난해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져 벤처자금난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올초 140여개에 달했던 창업투자사 숫자가 11월말 현재 128개로 줄었고 주요 벤처캐피털의 투자실적도 작년의 5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코스닥 침체와 등록기업의 감소로 무엇보다 벤처기업 투자→투자기업의 코스닥 등록→투자수익 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투자의 선순환 고리가 끊겼고 그에 따라 벤처에 투신했던 고급인력의 이탈 움직임이 가속화됐다.
결국 지난해말부터 잇따라 터진 벤처비리사건을 계기로 현 정부의 벤처지원정책은 여론의 도마에 오르게 됐고 정부가 직접지원에서 간접지원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벤처건전화방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벤처업계도 이같은 분위기와 조치가 벤처거품이 꺼진 이후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늦춰온데 따른 결과라고 자성하면서도 이런 식으로 흘러서는 5년여 동안 공들여 쌓은 벤처산업의 인프라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노 당선자는 벤처육성에 대한 당위성을 주지시키며 현 정부와는 다른 방향의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아야 한다. 즉 벤처의 신뢰회복을 위한 업계 스스로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동시에 그동안 양적 성장에 초점이 맞춰졌던 벤처정책을 ‘선택과 집중’으로 전환하는 대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내실있는 벤처를 발굴·육성하는 데 주력,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는 하나의 축으로 키워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노 당선자 스스로가 “벤처육성책은 지속하되 정부는 간접적인 지원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장기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정부주도형 벤처정책과 벤처에 대한 직접적인 자금지원을 지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특히 세부적으로 벤처·중소기업 정책의 줄기를 ‘벤처육성’에서 ‘기술혁신촉진’으로 전환할 것임을 이미 천명한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인력난 △자금난 △판매난 등 3대 애로사항 해소도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로 부각된다.
중기청이 최근 306개 표본 벤처·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정부 정책수요조사에서도 인력난 해소(28.2%), 자금조달 기반구축(21.4%), 판매난 해소(20.4%)가 이른바 ‘3대난’으로 지적된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와 같은 시장에 대한 직접개입으로는 이같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노 당선자는 장단기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벤처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 벤처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표적으로 현행 코스닥 등록제도와 퇴출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기술력과 성장성 있는 벤처들이 코스닥시장에 좀더 쉽게 등록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재 코스닥에 등록돼있는 무늬만 벤처인 기업을 하루빨리 퇴출시킬 수 있도록 코스닥 등록과 퇴출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
특히 엉터리 벤처에 대한 퇴출기준을 강화를 통해 코스닥이 우수한 벤처의 자금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미국 나스닥에선 약 19%가 퇴출됐지만 코스닥은 그 비율이 1.3%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코스닥 자정기능에 의문을 제기한다. 코스닥 시장의 기능상실은 벤처 자금난의 시작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정부의 벤처 옥석 가리기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새로운 물의 유입없이 기존에 고여 있는 썩은 물을 빼내는 식의 정책은 자칫 호수가 그 바닥을 드러내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벤처를 회생시켜야 한다는 점은 누구나가 공감하고 있다. 벤처의 중심이 되는 기업가정신은 경제발전의 핵심인 혁신과 변화의 동인이며 벤처가 이미 우리 경제와 사회에서 한 축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전체 수출에서 벤처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규모가 높아지고 있고 성장률도 매년 30% 가량 증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전통주력산업의 수출증가율보다 월등히 상회하는 등 벤처는 여전히 우리경제의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내년 벤처 지원정책 어떻게 바뀌나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새워진 내년도 벤처정책은 기존 정책의 보완·발전이라는 노 당선자의 의지가 천명된 만큼 앞으로의 벤처정책에 있어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가감이 이뤄지겠지만 신정부가 꾸려지고 1년안에 획기적인 정책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내년도 벤처정책은 향후 1년간 벤처정책의 줄기가 될 전망이다. 내년도 정부의 벤처정책을 분야별로 소개한다.
◇혁신능력 평가 중심의 새로운 벤처확인제도 본격 가동=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온 벤처확인제도가 새롭게 개정돼 지난 11월 중순부터 가동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벤처기업의 인식은 낮은 편이다. 12월 중 벤처넷이 새롭게 개편되고 디자인·관광 분야 등 새 제도 추진과정에서 소외됐던 일부 산업에 대한 시행세칙이 마련됨으로써 내년부터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 확인을 받는 벤처기업수가 부쩍 늘 것으로 보인다. 혁신능력 평가 중심과 민간 주도의 확인제도가 본격 시행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회사 자금 유용 등 불법 부당행위가 적발되는 기업은 즉각적으로 벤처확인이 취소된다.
◇민간단체 역할 및 기능강화=올해 11월 벤처기업협회로 벤처넷이 이관된 것을 비롯, 내년부터 벤처정책 추진과정에서 민간협회와 기관의 역할이 크게 강조된다. 각종 실태조사, 사후관리, 혁신능력평가지표 조정은 물론 벤처확인 취소에도 이들 민간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특히 벤처업계의 신뢰회복을 위한 자정노력 차원에서 벤처기업협회 등이 윤리위원회를 설립, 민간 자율규제 기능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벤처산업 건전문화 창달을 위한 벤처클리닉 프로그램을 수립하는 한편 벤처 CEO를 대상으로 하는 윤리교육이 강화된다.
◇창업보육센터 기능강화=현재 대학 및 기관들이 운영하고 있는 연구개발형 보육센터들이 생산형 센터로 확대개편된다. BI 신규건립을 크게 줄이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270여개 보육시설의 부지 및 공간을 확대해 BI내에서 입주기업이 제품을 소규모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또 BI 재정자립화를 위해 운영주체들의 책임경영제 도입과 BI매니저 고용이 의무화된다.
이밖에 2003년이 시한인 창업기업의 법인세 면제시한도 그 이후로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 벤처캐피털 건전화=민간 벤처투자조합 출자를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모태펀드가 설치된다. 500억원 규모의 이 펀드는 기관투자가 참여를 확대키 위해 정부출자분은 후순위 배당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또 미국, 이스라엘 등 벤처투자 선진국이 운영중인 펀드형 벤처캐피털 제도를 도입, 내년중 2∼3개가 설립돼 운영된다.
◇벤처기업 기술혁신 인프라 확충=현재 18개 부처 및 투자기관이 보유한 연구개발 예산 중 중소벤처기업 지원비율이 확대된다. 이를 통해 올해 13%(5500억원) 수준에 머물렀던 지원비율이 2005년에는 20%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산학협동체계 강화=내년부터 대학마다 산학협력단이 본격적으로 설립돼 벤처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지원이 강화된다. 이같은 추세면 2005년까지 250개 대학이 산학연컨소시엄을 구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조달시장 대폭 개방 및 해외진출 지원=2003년부터 국방물자를 대상으로 구매조건부 기술개발제도를 본격 시행, 정부 조달시장의 높은 문이 벤처기업들에 개방된다. 2003년만 하더라도 80개 품목에 900억원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열리며 2007년까지 1조150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또 이 제도 등 공공구매 제도 안전성 확보를 위해 내년중 벤처기업육성특별조치법 개정이 추진된다.
한편 해외진출 벤처기업의 성공가능성 제고를 위해 내년중 1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벤처 스타 펀드가 조성돼 벤처기업 현지화에 집중 투자된다.
◇벤처기업 M&A 활성화 추진=벤처기업간 자기주식 취득방식으로 주식을 교환할 수 있게 돼 기업간 전략적 제휴가 촉진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기업간 합병시 주총개최 통지기간 및 합병계약서 공시기간 등 소요기간이 최대 200일로 대폭 간소화된다.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중 ‘벤처기업의 M&A 활성화를 위한 종합대책’이 마련돼 공표될 예정이다. 또 코스닥시장 안정화 방안도 내년 3월께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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