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금융 활성화 간담회]"시장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감독만"

 전경련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전자지불 산업 규모는 17조원이다. 금융거래액 전체를 놓고 보면 아직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외형이다. 그러나 불과 몇년 전부터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태동한 전자금융시장은 이제 양적·질적으로 무시못할 수준으로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전통적인 금융업과 IT를 접목한 서비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면서 기존 제도의 틀안에서는 소비자보호와 시장발전을 담아내기 어렵게 됐다. 이른바 산업간 융합(컨버전스)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정부와 업계, 사용자 모두가 적응을 위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지와 한국전자지불포럼은 17일 각계 전문가와 재경부·정통부 등 정책담당자들을 초청, 서울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에서 ‘전자금융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재정경제부·정보통신부 등 정부 당국자를 비롯해 기관·단체·기업 관계자 7명이 참석, 나름의 혜안과 식견을 피력했다. 그동안 전자금융의 중요성은 숱하게 거론돼 왔지만 각계를 대표하는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이기는 처음이다. 간담회의 주요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참석자

  주형환 재경부 은행제도과장

  황의환 정통부 정보보호산업과장

  김상래 금융결제원 상무

  이승철 전경련 지식경제센터 소장

  차진석 SK텔레콤 상무

  남을우 비씨카드 상무

  권도균 이니시스 사장

 사회

  조영휴 한국전자지불포럼 사무국장

 

 ◇사회=최근 전자금융 시장이 눈부신 진화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어느 정도로 성숙하고 있는지 그리고 시사점은 무엇인지 최근 전경련의 산업통계조사를 토대로 살펴봤으면 한다.

 ◇이승철(전경련 지식경제센터 소장)=전자지불산업을 새롭게 정의한 바에 따르면 올해 전체 규모가 16조7000여억원이다. 모든 금융거래의 0.66% 정도에 불과하지만 향후 5년간 매년 32%의 성장을 거듭해 오는 2007년이면 연 66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전자지불 업종으로 분류된 전문업체들의 평균 업력이 4.7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최근 인터넷 대중화와 더불어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요한 시사점은 전자금융시장이 한층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사업자들의 매출이나 자본규모 등도 지속적으로 급성장할 것이라는 대목이다. 금융과 통신의 결합으로 태동한 전자금융 산업이 눈에 보이는 신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기존 금융관련 법체계로는 전자금융 환경을 포괄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전자금융거래법 제정방향은 어떠한가.

 ◇주형환(재경부 은행제도과장)=비대면 거래 등 전자금융서비스의 특성을 반영하고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소비자보호를 위한 관리 및 감독체계를 만들고자 하는 게 전자금융거래법의 입법취지다. 이미 초안을 만들어 입법예고와 법제처 심사 등 기초절차를 마무리했으며 이르면 내년초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법 제정의 기본 방향은 전자금융거래도 지급결제의 수단과 채널이 IT기술일 뿐 기본적으로는 ‘금융’이라는 인식이 바탕이다. 전자금융서비스를 기존 금융관련 법의 테두리내에서 상당부분 소화하고 특별히 규율할 부분만 골라 법 적용의 범위를 최소화한다는 게 원칙이다. 그만큼 규제의 강도는 덜할 것이고 시장상황이나 기술발전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계획이다. 다만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통해 전자금융시스템의 신뢰성 확보와 소비자보호는 중점적으로 반영할 사안이다.

 ◇사회=시장규제와 활성화 시책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다. 전자금융산업 육성방안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황의환(정통부 정보보호산업과장)=전자금융거래법이 시장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인 만큼 활성화 시책과도 맞물려 있다. 정통부는 현재 전자지급결제 서비스가 대부분 기업간(B2B) 거래에 머물러 있어 대소비자(B2C)나 대정부(B2G) 거래로 확산을 유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체국의 각종 수수료를 전자지급결제 수단으로 쓸 수 있도록 하거나 공공기관에 보급된 IC카드 인프라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또 교통카드 표준 보안응용모듈(SAM)을 비롯해 민간부문에서 기술상 차이로 인해 서비스 확산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은 제거해 나갈 것이다. 이밖에 전자지불수단의 신뢰성 향상을 위해 평가제도나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사회=최근 전자금융시장을 둘러싸고 업계에서는 금융과 통신사업자간 영역다툼이 잦다는 시각이 많다.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김상래(금융결제원 상무)=흔히 주변에선 금융과 통신업종간 싸움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상당히 과장된 견해다. 최근 은행권이 전자금융환경에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노력도 통신업계에 대항한 집단행동은 아니다. 은행은 IT 전문집단이 아니므로 함께 힘을 모아 준비하자는 뜻이다. 다만 금융권에서 염려하는 부분은 통신업계가 실제 금융업을 하려는지 그리고 은행의 자산인 고객의 금융정보를 빼앗으려는지 여부다. 통상 업종간 갈등으로 비치는 것은 특정 통신사업자가 신규 시장에 초기부터 과다한 독점력을 행사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금융·통신 업종이 윈윈모델을 구현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초창기 시장 성장을 저해하고 진통을 겪게 되는 것은 대부분 이런 관행 탓이다. 또 하나 최근 수년간 첨단 IT가 은행업무에 도입되면서 신종 서비스가 숱하게 등장하고 있지만 국가표준화 등 대세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차진석(SK텔레콤 상무)=전자금융서비스를 놓고 금융·통신 업종간 갈등에 지나치게 얽매이고 있지만 사실 실익이 없는 논쟁에 불과하다. 또한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실제로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칩카드를 기반으로 한 휴대폰 결제서비스만 봐도 SK텔레콤이 칩카드를 대신 구매해 발급기관에 주므로 당연히 칩 전체에 대한 소유권은 갖고 있다. 그러나 금융서비스에 관한한 전적으로 금융기관들의 몫이다. 이는 금융뿐 아니라 어떤 응용서비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은 신규 전자금융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금융기관들과 상호협의를 거칠 계획이다. 또한 지금은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업자 위주지만 대고객 편리성과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판단근거다. 이렇게 보면 비록 다소 갈등이 있더라도 궁극적인 시장발전은 해치지 않을 것이다.

 ◇주형환=사실 전자금융거래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가장 곤혹스런 부분 중 하나는 업종간 영역 문제였다. 민간시장에서 주도권을 누가 확보하느냐는 사실 시장원리에 따른 것이다. 다만 국가적·사회적 이익을 위해서는 금융·통신 업종이 각자 비교우위 요소를 기반으로 상생하는 비즈니스모델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특히 전자금융이라는 파생시장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금융이용자 보호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개인의 금융정보 보호를 위해 통신사업자들에 전자금융서비스를 열어주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주업무 영역과는 구별되는 감독·관리체계가 요구된다.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과정에서 어떤 식이든 이같은 원칙을 반영할 생각이다. 또한 기술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의 업무절차와 내용을 표준화해 혼란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사회=전자금융이 새로운 산업영역을 형성하는 시점에서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

 ◇남을우(비씨카드 상무)=사업자간 갈등과 특정 현안에 과다하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전자금융이 다매체·다채널 환경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시장활성화나 규제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IT 발전상을 보면 시장의 주객이 전도돼 왔던 아이러니도 함께 깔려있다. 한마디로 수단(기술)이 목적(사회이익)과 틀(법)을 주도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결제수단이나 어떤 기술을 도입할지 문제는 중요한 게 아니다. 전자금융이 산업경계를 허물고 신시장을 창출하고 있는 만큼 시장의 안전성과 편리성을 지키는 가운데 공정한 게임룰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국내의 한계에서 벗어나 해외 거래와의 연계나 시장진출 문제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미 GE는 지난 97년 산업간 컨버전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해왔던 사례가 있다.

 ◇사회=전자금융시장이 지금처럼 발전한 데는 다수의 전문업체가 토대를 닦아왔던 데 힘입은 바 크다. 시장활성화를 바라보는 전문업체의 입장은 어떠한가.

 ◇권도균(이니시스 사장)=결론적으로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 가운데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자지불대행(PG) 업체인 이니시스만 해도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개정되면서 법적 지위는 인정받았지만 특약·보증금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오프라인 업체들에 비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오프라인 가맹점들이 2%의 부가세 면제혜택을 받고 있지만 온라인 쇼핑몰은 배제된 상황이 단적인 사례다. 신용카드사들의 가맹점 수수료 면제 수준도 PG사들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등 전문업체들의 입지는 아직도 초라하다. 전자금융 전문업체들이 새로운 시장의 동등한 파트너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와 대기업의 협력 마인드가 절실하다.

 ◇주형환=그동안 전자금융업자의 법적 근거가 없었지만 전자금융거래법이 시행되면 양성화의 틀안에서 적절한 보호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본다. 세제혜택 문제도 오프라인 환경에 비해 오히려 차별받는다면 역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남을우=일부 악의적인 업체 때문에 선의의 전문업체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PG사와 특약을 맺고 있는 카드사들도 이점을 인정한다. 개별기업간 협상의 문제인 만큼 카드사들도 선의의 피해자는 최대한 막겠다는 입장이다.

 ◇이승철=어쨌든 논란은 많지만 전자금융산업이 국가적인 신수종 사업으로 커 나갈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현재 불거지는 업종간·사업자간 갈등 등의 문제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며 시장진화라는 추세와 산업적 대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정리=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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