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는 미래 국가경쟁력이다](9)부빌 언덕이 필요하다

 디지털기술의 발전과 결합된 다양한 문화상품의 등장으로 국내에도 새로운 문화코드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현행 법적·제도적 장치는 이처럼 빠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 문화콘텐츠 산업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도 새로운 문화상품을 규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례가 바로 온라인게임인 ‘리니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파동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으로 이 게임을 18세 이상만 사용할 수 있는 게임으로 분류하면서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리니지 파동’은 기업측이 게임 내용을 일부 수정함으로써 재심의에서 15세 이용가 판정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이로 인해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아직까지도 중국과 대만 등지에서 그동안 전략적으로 추진해온 해외진출 전략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

 만화산업의 경우도 지나친 규제로 인해 발목이 잡힌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꼽힌다. 국내 만화산업의 경우 청소년보호법 부칙 제4조 ‘불량만화’에 관한 부분에 의해 청소년 유해 오락물로 취급받으면서 산업자체가 크게 퇴보, 현재 일본만화가 국내에 범람하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일례로 만화가 이현세씨의 경우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키로 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만화 ‘천국의 신화’가 한때 청소년 유해물로 낙인찍히면서 엄청난 고통을 겪기도 했다.

 모두 만화나 게임 등의 문화콘텐츠 상품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정부기관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례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 문화콘텐츠를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문화 그 자체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늘고 있다. 문화콘텐츠의 경우 엔터테인먼트 성향이 짙다보니 이에 몰입하는 사용자들이 늘면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일도 있지만 이같은 일들은 사용자들의 문화적인 관점에서 풀어야 하는 것이지, 산업 자체를 제한하고 규제의 폭을 넓히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문화콘텐츠 산업은 개인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성공의 핵심 재원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과 개입이 도리어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보다는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해주는 차원의 소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지적대로 정부나 법이 국내 문화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또 문화콘텐츠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시장경쟁을 바탕으로 성장해야만 제대로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문화콘텐츠 산업은 영화와 게임을 제외한 대부분의 분야가 이제서야 홀로서기를 시작하려는 초기단계인 데다 대부분의 기업이 영세한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기다.

 최근 일고 있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지적들도 다만 ‘규제’라는 틀에서 벗어나 기업들이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지원’으로 집중돼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낙후된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는 일이다. 현재 국회에 관련법안이 계류중이기는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 부합하면서도 분야별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저작권법이 필요하다.

 실제로 현행 국내 저작권법으로는 캐릭터 상품을 ‘응용미술 저작물’로 보호하는 데다 ‘무방식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저작권 등록시 저작권자의 추정효력 등이 생기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법적효력이 아주 미미한 실정이다. 특히 캐릭터 등록절차가 별도의 규정으로 마련돼 있지 않고 상표권 등록규정을 따르고 있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지연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등록절차를 간소화하고 이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호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아직 제작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각종 투자조합을 활용해 제작비를 지원하는 동시에 현재 수익의 3.3%에 불과한 방송사의 제작 투자비율을 상향조정하고 이 가운데 일정 부분을 애니메이션에 할당하는 등의 제도적인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

 세제지원도 문화콘텐츠 산업 활성화 방안 가운데 하나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의 경우 조세감면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기존 산업은 그 혜택을 받고 있지만 문화콘텐츠 산업과 같은 신산업의 경우에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에서 현행 과세 및 감면대상을 제한적으로 열거하는 열거주의에서 감면대상이 아닌 것을 명시하는 제외주의(negative system)로 전환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현행 조세지원제도는 영화·애니메이션·방송·공연 등 문화콘텐츠 산업 부문이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아 세액감면을 받기 힘들어 이들 문화콘텐츠 산업 분야에 대한 업종범위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국산영화의 해외 로케이션 필름에 대한 관세 부담 및 외국과의 합작에 의한 제작품, 후반작업을 위해 반입되는 외국산 프린트에 대해 수입영화와 동일하게 적용해 과중한 관세를 부과, 서비스 수출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한 대폭적인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이밖에 음반이나 게임·문화원형 등의 콘텐츠도 도서와 같은 문화상품으로 분류해 부가가치세를 면제하는 등 세제지원책을 마련하고 문화콘텐츠 업체의 기술개발투자나 기반시설 구축, 유통 현대화 사업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방안도 문화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특히 정부부처간 밥그릇 싸움으로 인해 이중·삼중의 규제제도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보다 많은 부처에서 문화콘텐츠 산업을 지원하는 일은 보다 많은 자금이 이 산업에 유입된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동안처럼 이같은 정부의 지원이 각각의 규제로 이어지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정부부처가 각각 추진하고 있는 관련 지원사업을 종합적인 지원정책과 과제로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이 절실하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기고: 유진룡 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장

문화콘텐츠산업이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제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 되었다. 이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자국의 문화콘텐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디지털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국가간 콘텐츠 유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문화의 세계화(cultural globalization) 추세에 대한 대응방안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로서는 현재 진행중인 WTO 서비스협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국가간 문화콘텐츠 제작 및 유통과 관련한 교류협력체계를 갖추는 한편 디지털콘텐츠 유통에 따른 과세체계를 정립하는 등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한 정책과제가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문화콘텐츠산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기존의 OEM을 기반으로 한 산업에서 세계적 상품을 겨냥한 창작산업으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고, 세계 수준의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인터넷 및 모바일콘텐츠 등 디지털콘텐츠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음악이나 만화산업 등 일부산업이 침체상태고 문화콘텐츠산업의 특성인 멀티유즈나 미디어믹스 접근이 초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업수익모델 또한 구체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를 창의적이고 건전하게 이용하기 위한 사용자들의 문화도 앞으로 정립해야할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그동안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정과 저작권법 개정, 게임산업개발원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 등 문화산업 지원체계를 만들어 나가면서 ‘콘텐츠코리아 비전21’ 등 중장기 계획에 기초해 각종 규제완화 등 직간접적인 지원제도를 추진해 왔다. 이와 함께 인력양성, 기술개발, 유통체계 혁신, 해외 홍보 및 마케팅 활성화,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개발, 창작지원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문화콘텐츠산업을 국가 핵심산업과 주력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우선 디지털사회에 적합한 현대화된 유통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저작권법을 개정하고 지적재산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해 문화콘텐츠의 창작기반을 갖출 뿐만 아니라 콘텐츠 유통에 따른 수익모델을 만들도록 할 것이다. 캐릭터산업 등에서의 불법복제 단속, 음악콘텐츠의 온라인 유통체계 정립, 저작권기반 콘텐츠믹스 및 멀티유즈체계 정립 등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과제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유통구조를 혁신, 이용자들이 보다 쉽게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시장을 확대하면서 나아가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그밖에도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한 세제 및 관세지원 강화, 민간부문 및 외국인의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한 투자환경 조성, 문화콘텐츠산업 전문정보 산출 및 서비스, 문화콘텐츠산업간 협력네트워크 구축, 국산 창작콘텐츠 방송지원을 통한 유통망 확대 등 다양한 간접지원 제도를 개발해 업계의 자생력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고자 한다.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한 지원사업을 효과적이고 전문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종합적인 지원체계도 구축할 것이다. 현재 문화콘텐츠 분야별로 중장기 계획과 전략을 수립하고 있으며 이를 발전시켜 지원사업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이다.

 문화콘텐츠 정책방향과 지원사업의 결과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와 피드백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책의 질을 높이고 환경변화에 보다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문화콘텐츠 관련 공공 및 민간부문 각 조직간 네트워크를 구축, 협력적 지원기반을 정립하고자 한다. 나아가 교육정책, 예술정책, 정보통신정책 등 관련정책들과의 연계성을 강화해 시너지효과를 증진하는 등 문화콘텐츠산업의 토대인 창의적인 사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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