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협인가 기회인가
“장쩌민 주석이 지난 16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 정치보고에서 IT가 이끄는 경제성장을 강조한 것은 사상 유례없는 일입니다. 이말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중국이 IT분야에 얼마나 매진할 것인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선양시 정보통신정책을 총괄하는 신식산업국 수이리 국장의 말이다. 우지촨 신식산업부장의 퇴진 이후 IT정책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들의 입을 빌리지 않고서도 중국이 IT를 향후 수십년간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13억인구의 세계 최대시장, 전자정부와 2.5세대 통신망에 대한 막대한 투자 등 매력적인 시장이 활짝 열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주변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지, 주변을 적시는 우물물이 될지는 두고봐야 한다.
◇만리장성은 높다=초겨울을 맞는 베이징 중심가의 토요일 오후. 베이징 중심가의 시단북로는 시민으로 가득하다. 수백개의 이동전화 매장이 들어찬 시단커지광창에는 초입부터 내로라하는 이동전화 회사들의 구애로 뜨겁다. 노키아는 아예 대형 조형물을 세웠고 소니-에릭슨은 이벤트가 한창이다. 아직 회색일변도인 거리에는 모토로라와 노키아, 소니-에릭슨의 간판이 50m마다 늘어섰다. 올해에만 1억1000만대의 이동전화 수요가 예상되는 중국시장을 놓고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적극적인 공세로 ‘축복받은’ 베이징은 그러나 쉽게 들뜨지 않는다.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고 인정받는 기업은 모토로라, 폴크스바겐 정도를 꼽을 뿐이다. 삼성전자는 고부가가치 브랜드 전략에 성공해 이동전화시장 3위를 달리고 있고 4개 성에 차이나유니콤 cdma2000 1x망을 공급했지만 로컬기업의 추격과 2차입찰에서의 확장실패로 주춤하고 있다. “다른 사업자 네트워크의 철거비용을 부담하고서라도 cdma2000 1x 입찰을 따내겠다”던 LG전자는 결국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 CDMA를 앞세운 전략에 빨간불이 켜지기 일보직전이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CDMA와 온라인게임 등을 제외하고는 이미 중국에선 절대 우월한 기술이 아니다. 게다가 동등한 입장에서 중국 및 미국기업과 겨룰 수 없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지 않으면 안될 때다.” 베이징 i파크 소장을 맡고 있는 제프 민 첸의 냉정한 지적이다.
◇우물물이 아닌 블랙홀=차이나유니콤은 2.5세대망을 구축하면서 무선인터넷 서비스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무선인터넷망을 개방하고 자신은 관문역할만을 하는 유니콤의 전략은 국내 이통사업자(SP)와 콘텐츠사업자(CP)들에 매혹적이다. 유니콤의 모이신 부장은 “예전에는 서비스제공자로서 고자세를 유지했지만 이제 CP나 SP와의 협력을 통해 부가서비스를 다양화한다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대신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요금을 거둬들이고 수익을 늘릴 수 있을까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유니콤과 조인트벤처를 설립, 무선포털을 운영한다는 전략을 추진중이다. 플랫폼 표준을 선점하고 콘텐츠 개발, 무선인터넷 운영 등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SK텔레콤만의 계획은 아니다. 유니콤은 플랫폼을 복수로 가져간다는 전략으로 다른 한편에서 퀄컴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KTF와도 지역단위의 무선인터넷 협력을 논의중이다. 모이신 부장은 “이밖에도 일본의 KDDI, 호주의 이통사업자 등과도 광범위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이니셔티브를 손에 쥐고 그 효과를 최대한 이용해 노하우를 전수받되 주도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머지 통신사업자도 마찬가지다. 차이나모바일은 SK텔레콤·KTF 등 해외 사업자들과 협력방안을 모색하면서 여러 무선인터넷 플랫폼을 동시에 검토하고 있다. 조만간 이동통신 면허를 획득할 것으로 알려진 차이나텔레콤과 차이나넷콤도 지멘스·에릭슨·노키아·루슨트 등 기존의 사업자와 함께 대만 등의 사업자와도 다각도로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KT 베이징대표처의 한영수 부장은 “95년 중중외(中中外) 방식의 외자유치에 나설 때부터 중국은 외국의 앞선 기술과 외자를 유치하면서 주도권을 놓지 않는 방법을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반드시 로컬기업과 합작투자하도록 돼있는 단말기(CDMA) 부분도 마찬가지다. “외국기업의 기술을 이전받는 동시에 시장에서의 중국기업 우대정책으로 로컬기업의 성장이 눈에 띄고 있다”는 게 현지기업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부품 등 제조업을 흡수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이동전화단말기는 시장의 22% 점유(2005년 50% 이상 예상), 중싱통신·화웨이 등 장비업체의 성장, 반도체기술 확보 등등. 이미 시작된 중국의 블랙홀 수순이다.
◇돌파구는=이동통신 기술과 유무선 인터넷 노하우 등 ‘먹히는’ 기술과 경험 위주로 장기간에 걸친 협력을 통해 시장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KTF 베이징사무소의 정문섭 수석대표는 “차이나유니콤의 경우 일부지역에서는 필요 이상의 장비를 구축하는 등 효율적인 네트워크 구축 및 운용기술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안테나의 각도는 세세한 사항이지만 경험이 필요한 부분에서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문섭 수석대표는 네트워크 최적화 지원을 통한 협력강화를 추진중이다. 서비스와 단말기 및 장비의 동시진출도 모색해야 한다. 삼성전자 베이징지사 한창호 부장은 “이동통신시장이 서비스 경쟁으로 진입함에 따라 단말기 부분에서는 데이터서비스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시장이 이동할 것”이라며 “컬러스크린이나 멀티미디어메시지서비스, 데이터송수신기능 등 새로운 서비스와 그에 맞는 기술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장기간에 걸친 신뢰구축과 지속적인 투자도 필수요소로 꼽힌다. 중국 고유의 표준인 TDS-CDMA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온 지멘스가 결국 그 결실을 보게 된 점이나 중국에서 만큼은 세계 1위 노키아를 앞지르고 있는 모토로라의 선전이 그 결과를 말해준다. “중국 사업자들은 결코 하나의 가능성만 보지 않습니다. ‘아니면 말고…’하는 장사꾼 기질이 뼛속 깊이 박혀 있습니다. 이를테면 ‘SK텔레콤이 아니면 퀄컴, 삼성전자가 아니면 노키아’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한번 믿음을 준 파트너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꼭 챙기는 의리 역시 분명합니다. 따라서 중국시장은 협상시 손해보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하되 오랜 기간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10년이 넘도록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해온 한 통신벤처 사장의 조언이다.
<베이징=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中시장 성공가이드: 제프 민 첸 베이징 i파크 소장
많은 한국인 친구들이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를 묻는다. 사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어렵다 할지라도 나머지 국가와 마찬가지 수준일 뿐이다. 오히려 여러 면에서 중국과 친밀한 한국은 더 유리한 점이 있다. 중국시장은 최고의 잠재력이 있지만 빠르게 바뀌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리고 고객의 요구, 면밀히 주시해야 하는 정부의 정책 등 변수가 있다. 중국에서 실패한 기업들은 아래와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장기간의 헌신이 부족하다. 중국은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시장은 크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고객의 수요와 비즈니스 방식도 산업간·지역간 차이가 크다. 장쑤성에서 통하는 방법이 허난성에서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동부와 서부지역간에도 큰 차이가 있다. 중국시장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정부의 행동도 이와 같다. 이런 독특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또한 마케팅채널과 고객정보를 가진, 믿을 만한 파트너를 식별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현지의 파트너가 없이는 SI사업, 전자정부, 네트워크보안 등의 영역에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국정부와 좋은 관계를 세우고 신뢰를 얻는 것 역시 시간이 걸린다. 중국시장에서 정부는 단순한 규제기관이 아닌 중국시장의 참여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경쟁에 뒤진다. 중국은 지난 78년 이후 문호를 개방해왔다. 한국회사들은 중국에서 현지기업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일본회사들과도 경쟁을 하고 있다. 가격 측면에서 한국상품들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중국산보다 불리하다. 그러므로 한국상표들은 더 좋은 기술을 앞세워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CDMA 관련기술과 솔루션, 온라인게임 소프트웨어 등이 중국에서 널리 인정받는 이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한국상품이 기술, 가격 혹은 두가지 측면에서 모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셋째, 서로 이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 많은 중국기업은 한국의 벤더들이 단순히 에이전트나 배급사 역할만 원한다고 불평한다. 기술협력과 제휴를 통해 장기간에 걸친 상호 이익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국회사는 자체 R&D인력이 있다. 그러므로 다른 회사의 물건을 단순히 배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한국기업들의 더 좋은 기술, 더 풍부한 자본을 알고 있는 중국회사들은 기술이전과 조인트벤처 등의 파트너십을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기업은 단순히 ‘물건을 팔아주고 계산서를 가져다주길’ 바란다.
약속을 깨거나 프로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도 로컬 파트너와의 협력을 깨뜨린다. 끈기와 추진력에 더해 좀더 성숙한 전략이 요구된다. 고객·파트너에 대한 오랜 기간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이야말로 중국시장에서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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