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글로벌 환경에서는 표준이 바로 국력입니다. 국가기술표준을 총괄하는 기관의 책임자로 재직하는 동안 우리나라가 21세기 표준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뼈대를 만들어 놓겠다는 것이 저의 각오입니다.”
기술표준원 김동철 원장은 요즘 일하는 것이 신명난다. 자신이 특허와 표준분야에 몸담은 이래 지금처럼 표준의 중요성에 대해 업계, 정부, 언론 심지어 일반인들까지 공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분야 외신들을 잘 살펴보면 중요한 이슈들이 국제표준과 직결돼 있을 만큼 21세기 들어 표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사실 표준이라는 개념은 비교적 광범위하고 전문적이기까지해서 일반인들이 정확히 이해하는데는 다소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인들뿐 아니라 기업의 CEO, 정부 책임자들조차도 표준과 관련된 일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으면 표준을 그냥 막연하게 ‘규격 제정 작업’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대내외적인 요인들로 중요성은 인지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우리가 표준화 활동을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김 원장은 이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표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전세계적으로 표준화 활동이 이슈가 되는지를 설명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표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을 보면 과거에는 ‘뭔가 재미없는 이야기’라는 표정이 역력했으나 최근에는 ‘뭔가 어렵지만 중요한 이야기’로 인식해 이런 저런 질문을 해 오기 때문에 내심 기쁘다고 털어놓는다.
우리나라의 국가 산업정책은 과거 ‘육성위주의 정책’에서 ‘경쟁위주의 정책’으로 전환되고 있다. 육성위주의 정책에서는 기술과 표준이 크게 중요성을 갖지 않지만 경쟁위주 정책에서는 기업 또는 단체가 갖고 있는 기술력과 표준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요즘 사회적으로 이공계 인력부족 현상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공계 살리기 운동’이 범국가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공계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보다 강도 높은 지원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결국 기술과 지식을 무기로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기술전문인력인 이공계가 사회적으로 우뚝 서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 김 원장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김 원장은 우리 사회가 대기업 CTO가 부각되는 사회, 기술본위 기업인 벤처가 육성되는 사회, 이공계가 대우받는 사회로 전환돼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71년 기술고시에 합격한 김동철 원장은 올해까지 32년째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34년째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야 옳다. 대학 2학년 때부터 대구시청에서 아르바이트겸 지방공무원을 지낸 경험을 포함하면 말이다.
“대학생 시절이 제 인생에서 가장 성취감을 많이 느꼈던 시기였습니다. 젊기도 젊었지만 요즘도 그 당시를 회상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새롭게 솟아나니까요.”
김 원장은 지난해 8월 기술표준원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원내에 등산모임을 만들었다. 이 등산모임은 이제 기표원내 가장 활발한 ‘취미서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등산모임을 만든 이유는 기술표준원 직원들간 의사소통과 융합을 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술표준원 직원들은 기술직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개개인의 개성이 매우 강해 조직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화합하고 협력하는 분위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김 원장은 직원 화합 노력의 일환으로 취임 후 기표원내 과장방을 없애 직원·사무관·과장들이 한공간에서 함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당초 과장들의 반발도 우려했으나 일의 효율이 높아지면서 불평은 사그라든 지 오래다.
김동철 원장은 지난 99년 기술표준원 표준부장으로 발령받으면서 기표원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그의 표준과의 인연은 사실 97년부터 3년 반 동안의 특허청 근무를 떼놓을 수 없다. 물론 상공부 반도체과장·통상산업부 산업기계과장 등의 경력도 기술표준원 원장직을 수행하는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99년 기술표준원에 처음 왔을 때 국가표준규격(KS)이 1만개도 채 안됐습니다. 국제표준단체 기술위원회 가입도 33%에 불과했지요.”
김 원장은 표준분야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KS규격은 더 많이 만들고 국제표준단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김 원장의 노력에 힘입어 2002년 현재 KS규격은 1만3000개, 국제표준단체 기술위원회 가입률은 64%로 높아졌다.
“연말까지 KS규격을 1만5000개 정도로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이 수준은 독일 2만6000개, 러시아 2만4000개 등 표준 선진국에 비해서는 적지만 세계 상위권에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2005년에는 2만개 규격시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국제표준은 1만8000개다. 현재 우리나라는 약 9000개 국제규격을 KS로 도입했고 나머지 절반은 도입이 안된 상태다. 기술표준원은 가능하면 국제표준 모두를 KS로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내는 표준규격을 국제표준화한다는 계획이다.
“전세계 표준시장에서 한국 위치는 아직 미미합니다. 세계적으로 국제규격이 매년 1000∼1300개 만들어지지만 우리나라 규격이 국제규격이 되는 비율은 1%도 안됩니다. 이 비율을 적어도 5%까지는 끌어올려야 세계 표준시장에서 한국이 힘을 쓸 수 있지요.”
실제로 세계표준시장에서 한국은 거의 힘을 못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국제표준시장에서 주도하고 있는 분야는 MPEG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열악하다. 표준분야에서 힘을 갖기 위해서는 1년에 100개 정도의 기술규격을 세계시장에 내놓아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세계표준에 지배당하는 위치가 아닌 세계표준을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서야 합니다. 21세기는 표준이 국력이기 때문이지요. 요즘 들어 전자·정보통신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에 표준규격을 다수 내놓고 있어 다소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유기EL·PDP·LCD·MPEG 분야 등에서 국제표준화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전자정보통신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어께를 나란히 할 만큼 발전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기술표준원의 위치를 미국의 국립표준기술원(NIST)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기술격차와 국력을 생각할 때 꿈같은 이야기지만 일단 시스템 자체는 미국과 어께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모양세를 갖추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차곡차곡 노하우를 쌓아나가면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기표원장 재임기간에 그 씨앗을 뿌리겠습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 약 력 >
△51년 경북 경산 출신 △71년 제6회 기술고시 합격 △72년 영남대 공대 기계과 졸업 △81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행정학석사 △89년 미국 워싱턴대 대학원 산업공학과 공학석사 △71년 건설부(사무관) △73년 공군소위(66기) △78년 상공부 정밀기계과, 산업기계과 사무관 △85년 상공부 정밀기계과장 △87∼89년 미국 워싱턴대 파견 △89년 상공부 전기공업 과장 △91년 상공부 정밀기계 과장 △ 93년 상공자원부 반도체산업 과장 △93년 통상산업부 산업기계과장 △96년 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특허청 국장 승진) △97년 특허청 심사2국장 △98년 특허청 심사4국장 △98년 특허청 특허심판원 제8부 심판장 △99년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표준부장 △2001년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장
많이 본 뉴스
-
1
챗GPT 검색 개방…구글과 한판 승부
-
2
SKT, 에이닷 수익화 시동...새해 통역콜 제값 받는다
-
3
비트코인 11만달러 눈앞…트럼프 發 랠리에 20만달러 전망도
-
4
올해 하이브리드차 판매 '사상 최대'…전기차는 2년째 역성장
-
5
에이치엔에스하이텍 “ACF 사업 호조, 내년 매출 1000억 넘긴다”
-
6
갤럭시S25 '빅스비' 더 똑똑해진다…LLM 적용
-
7
테슬라, 3만 달러 저가형 전기차 첫 출시
-
8
“팰리세이드 740만원 할인”…車 12월 판매 총력전 돌입
-
9
정부전용 AI 플랫폼 개발…새해 1분기 사업자 선정
-
10
곽동신 한미반도체 대표, 회장 승진…HBM 신장비 출시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