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포스트 D램시대 대비를

◆모인 산업기술부장

 미국이 한국정부가 D램 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했는 지의 여부를 따지는 상계관세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또 유럽연합(EU)은 다음달 독일의 인피니온테크놀로지의 제소와 관련해 상계관계 실사단을 국내에 파견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정부가 특혜성 자금을 통해 자국 기업에 피해를 입혔다는 것인데,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기로는 인피니온과 미국의 마이크론의 입장도 자유스럽지 못하다. 결과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뭐 묻은 개가 재묻은 개를 나무라는 형국이다.

 정부간 통상대결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품목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반도체다. 그만큼 산업적인 여파가 크고 비중이 높다는 뜻일 게다. 한때 컬러TV·VCR가 주 수출 품목이었던 시절에는 이들 품목이 단골 메뉴였다. 경제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품목을 개발하고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수출을 담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원빈국인 우리의 경제가 지탱하기 위해서는 수출이 잘돼야 한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침체되고 블록화하면서 이마저도 여유롭지 않은 실정이다.

 남이 다하는 품목으로는 수출을 주도할 수 없다. 경쟁력을 갖춘 제품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특화된 제품이다. 휴대폰·셋톱박스·디지털 TV·TFT LCD 등은 대표적인 제품군이다. 한때 반도체가 수출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기술력도 그것이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민관이 함께 집중 투자한 결과다.

 국내 반도체산업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국제 가격의 하락이 주원인이지만 내일을 보장하는 제품개발에 등한시한 까닭이다.

 메모리분야가 남이 다하는 품목이라면 비메모리 분야는 상대적으로 특화된 제품이다. 따라서 수요도 엄청나다. 그런데도 우리는 메모리분야에만 매달리고 있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시장의 메모리 비중은 1540억달러 중 19%에 불과하다. 이 수요를 붙잡으려고 통상 마찰을 빚고 수모를 당하고 있다면 제고해 봐야 한다.

 비메모리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경박 단소화의 추세에 따라 용도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일본 등 반도체 강국들은 앞다퉈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후발국인 대만과 중국은 비 메모리를 발판으로 반도체 강국인 한국을 타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고 한다.

 비메모리 분야의 핵심은 사람이다. 또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유기적인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기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뿐 아니라 이 분야의 SW적인 특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본지에서 연재중인 ‘위기의 반도체 산업’에 따르면 시스템업계는 고급 인력이 없어 외국에서 조달하고 있는 데 반해 벤처기업은 어렵게 개발한 제품을 사주지 않는다며 시스템업계를 원망하고 있다고 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또 인력풀은 고사하고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협력체계도 전무한 실정이라는 소식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최근 일본 반도체업체들이 통합 D램 업체인 ‘엘피다’를 출범시킨 것은 한마디로 벽돌공장으로 더 이상 사업을 영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예컨대 똑같은 것을 대량으로 양산해 푼돈을 만지기보다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포스트 D램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남이 하지 않는 독특한 아이템은 반도체부문에서는 비메모리 분야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벤처기업간 유기적인 협력시스템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비메모리업체인 인텔이 사실 메모리업체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때를 놓쳐서는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