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형 공장의 역사
우리나라 아파트형 공장의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국토가 비좁은 도시국가 싱가포르, 홍콩 등에선 일찍이 70년대부터 아파트형 공장이 생겼으나 우리나라 수도권 일대에 아파트형태의 공장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대 초반이다.
수도권 소재 중소기업의 입지난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아파트형 공장이 도입된 지는 10여년에 불과하다. 그나마 수도권 과밀집중에 대한 우려와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사회 일각의 목소리에 밀려 아파트형 공장의 건설붐은 잠시 주춤했다.
침체된 아파트형 공장 시장에 다시 기폭제로 작용한 것은 지난 97년 외환위기였다. 환란의 충격 속에서 급성장하던 벤처업체들이 당시 신축중이던 아파트형 공장으로 대거 밀려든 것. 여기에 정부가 벤처육성특별법을 마련하고 아파트형 공장에 대한 각종 세제혜택과 건설비 지원에 나서면서 아파트형 공장 시장은 날개를 달았다. 일반제조업과 달리 기술혁신형 벤처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지역경제에 유리하다는 사회적 인식변화 속에 주민들의 반대도 수그러들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아파트형 공장은 이전에 지어진 건물과는 내부구조부터 판이하게 진보했다는 평가다. 입주자의 감성적 만족을 위한 고급 마감재와 쾌적한 환기시설, 첨단보안시설, 통신인프라, 소음, 진동을 차단하는 설계구조 등을 갖춰 90년대 초기에 지어진 아파트형 공장과는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에이스종합건설에서 지난 97년 3월 서울 등촌동에 준공한 에이스테크노타워 1차를 시발로 구로동, 양평동에서 잇따라 100% 분양이라는 대박을 기록했다. 고급화된 밀집형 공장건물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것이 증명됨에 따라 여타 건설업체의 시장참여도 줄을 이었다. 대륭건설이 구로동에서 연달아 아파트형 공장을 건설했고 SK건설, 현대산업개발 같은 대기업도 시공자 자격으로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정부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중소건설업체가 시장을 주도했으나 수익성을 인정받음에 따라 은행권과 땅주인, 대형 건설업체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첨단 아파트형 공장의 입주지역도 처음에는 서울의 디지털산업단지가 주류였으나 올들어 안양, 성남, 군포 등 수도권 인근의 공단지역과 광주, 대구 등 지방 대도시로 건설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현재 전국에서 건설중이거나 완공된 아파트형 공장은 총 110개에 달하며 매년 10∼15개씩 추가로 늘어나고 있어 당분간 공급부족현상은 없을 전망이다.
산업단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제조업체 공장 9만여개 중에서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한 비율은 2.1%에 이르러 확실한 공장설립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공장이 없는 벤처기업을 통계에서 뺀 것이므로 아파트형 공장이 국내 산업환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크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아파트형 공장 무엇이 좋은가
아파트형 공장이 입주업체에 제공하는 이점은 매우 다양하다. 무엇보다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벤처업체에 아파트형 공장은 고급인력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가는 것을 한사코 싫어하는 근로자를 붙잡기 위해서는 도시 근처에 기업체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교통과 입지조건이 편리한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지역경제의 산업공동화를 막는 데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한다.
저렴한 분양가로 사무실과 공장을 한번에 갖출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분양가의 50∼70%를 저리융자로 제공하며 취득세와 등록세가 전액 면제되고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50% 감면, 신규사업자 부동산취득세 면제 등은 아파트형 공장이 벤처업체에 제공하는 ‘종합선물세트’의 일부분이다. 분양과 동시에 벤처기업에는 공장등록증 발급혜택이 뒤따르므로 정부납품에도 유리하다. 국가공단에 설립된 아파트형 공장의 경우 입주기업에 돌아가는 혜택도 있다. 벤처집적시설로 인정받게 되면 시설사업자와 입주기업은 전기세 등 각종 공과금 부담에서 해방된다.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여타 도심지역에서 별도의 회사건물을 얻는 것보다 2∼3년치 임대료에 해당하는 분양가를 내고 수도권의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다. 일부 아파트형 공장은 건물상부를 주거전용 오피스텔처럼 만들어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따라서 아파트형 공장은 낮은 분양가와 각종 혜택을 기대하는 중소 제조벤처에 최적의 안식처인 셈이다.
◆아파트공장 브랜드화
아파트형 공장도 브랜드시대를 맞고 있다.
수도권 일대의 아파트형 공장 신축경기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듭하면서 올해 시장규모가 1조원에 달하는 가운데 고급아파트 시장에 유행하던 브랜드 차별화 전략이 아파트형 공장업계로 급속히 번지고 있는 것.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형 공장들은 스스로 공장이란 이름을 붙이길 꺼려한다. 아파트형 공장이란 촌스런 간판 대신 선텍시티, e스페이스 등 호화맨션을 떠올리는 우아한 이름을 붙여 ‘내집처럼 편안한 공장’임을 강조한다.
이는 수도권에 아파트를 지을 땅이 귀해진 상황에서 새로운 니치마켓인 아파트형 공장시장에 뛰어든 대형 건설업체 때문이다. 이들 대형 건설업체는 고급아파트시장에서 사용하던 고품격 브랜드전략을 앞세워 분양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분양률이 높은 아파트형 공장은 그동안 여타 부동산시장에 비해 건설사 마케팅경쟁의 사각지대였다. 그러나 수도권에 시공중인 아파트형 공장수가 전년대비 3배나 증가하고 일부 지역에서 공급과잉조짐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현대종합개발은 성남, 군포의 아파트형 공장에 ‘아이밸리’란 고유 브랜드를 붙여 시장공략에 나섰다. 이 회사는 자체 아파트브랜드인 ‘아이파크’와 어감이 비슷한 아이밸리를 아파트형 공장부문에서 사용해 회사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덕을 봤다는 분석이다. 삼성물산이 안양시에 건설하는 대규모 아파트형 공장은 사내공모로 선정한 ‘메가밸리’란 명칭이 붙었다. 이 회사는 삼성이 만드는 아파트형 공장임을 내세워 메가밸리의 브랜드가치를 유지할 방침이다.
롯데건설은 성남시에 짓는 자사의 첫번째 아파트형 공장에 선텍시티라는 고급브랜드로 승부수를 던졌다. 롯데건설은 과거 민간아파트에 브랜드명(롯데캐슬)을 선도적으로 붙였으며 향후 선텍시티를 첨단 아파트형 공장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또 SK건설은 군포 아파트형 공장사업에 펜티엄과 벤처의 합성어인 ‘벤티움’이란 신규브랜드를 선보였다. 에이스종합건설은 아파트형 선발업체로서 확고한 이미지를 내세워 ‘에이스테크노타워’란 명칭을 고수할 방침이다. 이밖에 우림건설(이비즈센터)과 벽산건설(디지털밸리), 명지건설(e스페이스),한신공영(IT타워)도 독자적인 아파트형 공장 브랜드로 분양경쟁에 뛰어들었다.
시공사의 이름을 건 브랜드마케팅이 열기를 뿜으면서 아파트형 공장의 시설과 서비스도 덩달아 높아지는 추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2∼3년 뒤에는 국내 아파트형 공장의 일시적인 공급과잉이 예상되며 입지조건, 서비스면에서 뛰어난 곳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파트형 공장의 미래
아파트형 공장의 활황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섣불리 판단하기가 힘들다. 최근 수도권에서 분양된 아파트형 공장의 경우 분양률이 보통 60∼90%에 이르러 아직까지는 매우 양호한 수준이다. 대형 건설업체의 시장진출로 아파트형 공장규모가 점차 대형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감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아파트형 공장시장의 장기적 전망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다. 대도시의 공단지역에 첨단산업을 유치하려면 아파트형 공장 이외에는 별 대안이 없으며 입주업체의 범위도 제조벤처 이외에 다른 산업분야로 계속 확대되면서 잠재 고객층이 더욱 두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스종합건설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과 지방대도시의 중소업체들은 결국 아파트형 공장이 가장 주된 공장환경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천편일률적인 기존 아파트형 공장의 건축양식도 향후 10년안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아파트형 공장의 기능도 기존 제품생산에 유통기능까지 합쳐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앞으로는 대형전자상가와 아파트형공장을 합쳐놓은 퓨전식 첨단공장이 등장해 기업주들의 인기를 끌지도 모를 일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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