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분식회계의 유혹

 분식회계의 유혹을 떨쳐내기란 참 쉽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 촉발된 새롬기술의 분식회계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허위 매출을 발생시켜 매출을 부풀리고 순손실을 순이익으로 둔갑시키는 등 회계 장부 조작을 통해 회사를 그럴듯하게 치장하는 게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사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회사의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내기보다 예쁘게 포장해 자금을 끌어들이거나 주가를 높이는 게 더욱 화급한 일이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장기 비전 제시를 통해 기업의 투자 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시쳇말로 ‘공자님 말씀’이다.

 비단 새롬기술만이 아니다. 최근 부도로 코스닥시장에서 퇴출 절차를 밟고 있는 소프트윈·에이콘 등도 이해관계가 아주 복잡하게 엮여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회사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영진의 불순한 의도와 회계시스템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물론 이 같은 분식회계문제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초까지 미국 증시를 쥐고 흔들던 에너지기업 엔론 사태의 본질도 결국은 분식회계 아니었던가. 엔론은 매출 수익을 수수료 순익이 아닌 총액으로 인식해 4년간 무려 6억달러 이상의 이익을 과다계상했다. 거기에다 3500여개의 관계사를 설립, 자금조달원으로 활용했는데 기관투자가들이 3% 이상 투자할 경우 연결 재무제표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규정을 악용해 투자자들을 오도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재 코스닥 등록기업 및 IT기업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미 상당수 기업이 기진맥진한 상태며 일부 기업은 경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좌초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IT경기가 호전되고 있다는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치장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상기해야 할 점이 있다. 지난 97년 IMF금융위기 당시 IMF 측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 바로 회계투명성이었다. 한국 기업들이 내놓는 회계자료를 도대체 믿을 수 없으니 국제 수준의 기업회계 기준을 만들라는 요구였다. 이를 위해 국제 수준의 회계투명성을 논의할 ‘민간회계기준제정기구’를 설립하라는 강력한 주문이 있었다. 이의 일환으로 지난 99년 ‘한국회계기준위원회’가 발족됐고 금융감독원·회계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기업회계기준 개정작업이 진행돼왔다.

 개정된 기업회계기준은 일정대로라면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지향하는 회계기준이 미국식 회계기준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국제적인 수준의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최근 금감원에서 발표한 CEO의 회계자료 서명이나 민형사상 책임부과 등도 이 같은 회계투명성 확보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회계시스템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개선된다 하더라도 기업의 경영자들이나 우리 사회 구성원의 투명한 회계제도에 대한 요구가 절실하지 않다면 제도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회계시스템이 기업 안팎에서 발생하는 모든 거래 관계를 정의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이 회사의 실체를 정확하게 회계장부에 반영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제아무리 좋은 제도도 말짱 도루묵이다.

 <장길수 디지털경제부 차장 ksjang@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