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망과 인터넷의 발달로 통신언어가 새로운 언어코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숫자만 전송할 수 있었던 무선호출기로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1004(천사)’ ‘8255(빨리오오)’ ‘79(친구)’ 등 숫자언어로 시작됐던 통신언어가 문자메시지 전송이 가능한 이동전화가 등장하고 PC통신의 뒤를 이어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사용되는 통신어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에는 빠른 메시지 입력을 위해 타수를 줄이는 차원에서 줄여쓰거나 타속을 높이기 위해 소리나는대로 쓰는 것이 보통이었던 통신언어가 최근 들어서는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언어로 변종되면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훼손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네티즌 사이에는 이미 단어나 문장을 줄여쓰는 수준을 넘어 아예 맞춤법과 문법을 무시한 채 의미만 전달되면 된다는 식으로 단어나 문장을 제멋대로 표기하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맞춤법을 무시할수록 남들과는 차별화된 튀는 표현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을 중심으로 일부 네티즌은 ‘鉉⑨ㆀ②ㅃⓔㅿ4ⓤㆀ(당신을 위한 무척 친근한 친구)’ ‘ 2ㅹYo(이뻐요)’ ‘번애쥬세孝(보내주세요)’ 등과 같이 한문과 숫자, 특수문자 등을 섞어씀으로써 별도의 해석이 없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언어를 사용, 세대 및 집단간 언어이질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이같은 언어를 쓰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엽기 사이트 가운데 ‘아햏햏’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독특한 홈페이지가 인기를 끌면서 이들이 사용하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곳을 찾는 네티즌들은 단어의 ‘ㅇ’받침이나 ‘ㅅ’ ‘ㄷ’ 등 된소리가 나는 받침을 ‘ㅎ’으로 바꿔쓰고 모든 표현에 ‘하오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곳 저곳에서 잘못 쓰여진 표현들을 모아 제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해 사용하며 자신들만의 언어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이같은 통신언어는 우리의 생활속에 침투해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례로 최근 대학가에는 동아리나 동문회의 공고문에서부터 대자보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특수집단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자주 등장한다. 몇해 전부터 대학교 시험답안이나 리포트 등에 이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공공의 용어로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청소년들이나 일부 지식인들 가운데는 “언어는 서로간의 의사소통만 되면 된다”며 “굳이 어려운 맞춤법을 지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늘고 있어 통신언어가 단순히 사이버세상에서만 사용되는 특수용어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언어체계 자체를 뒤흔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쯤되자 언어학자들도 이들 통신언어가 어떤 형태로든 언어 사용의 한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만큼 사회성을 고려해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은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통신언어가 서로간의 언어소통에 장애를 불러오고 이같은 왜곡된 표현을 자주 접하다 보면 국어 교육 자체에도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라는 등 부정적인 측면이 많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새말을 생성시키고 ‘후다닥’ ‘꾸벅’ 등 통신상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행동이나 태도를 간접적으로 표현해주는 용어도 많아 우리말의 어휘를 보다 풍부하게 해주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도 많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통신언어 어휘집’을 낸 한말연구학회는 “통신언어는 통신상에서 사용하는 문자언어인 만큼 타수를 줄이거나 친교 및 화자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개인간의 대화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으나 언어 발달 단계에 있는 초등학생들이 이를 잘못 받아들여 그들의 언어활동에 장애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게 대처해야 할 통신언어 정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사실 심하게 변종된 통신언어에 대해서는 통신언어에 익숙지 못한 구세대나 언론학자뿐만 아니라 네티즌 사이에서도 문제시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세상이 뭐라 하든 나는 나 아햏햏이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 아햏햏족조차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어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아직은 통신언어를 바라보는 각계각층의 견해가 분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어의 기본 기능은 ‘의사소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언어 이질화를 부추기는 무절제한 통신언어의 사용은 자제돼야 하고 또 통신언어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해치지 않는 차원에서 자리잡게 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 마련도 시급해 보인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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