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별대담>게르트 K 비니히

사진;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을 공동 발명한 비니히(오른쪽)·로러박사

 ◆게르트 K 비니히 IBM연구소 박사가 말하는 `나노기술의 미래`

최근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정보기술(IT) 관련업체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노기술(NT)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나노기술은 한마디로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물질을 제어하는 기술을 통칭한다. 1㎚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로, 보통 원자 3∼4개의 크기다.

 나노기술은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원자까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현대판 연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나노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의학·로봇·메모리반도체·섬유 등 거의 무궁무진하다.

 실제로 메모리 분야의 경우 손톱만한 크기의 칩에 미 국회도서관 전체의 자료를 저장하는 기술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나노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 시대로 진입하는 ‘키워드’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IBM연구소는 전세계 나노기술 연구의 싹을 틔운 곳으로 유명하다. 이 연구소에서 일하던 게르트 K 비니히와 하인리히 로러 박사는 81년 마치 집게로 물건을 하나씩 집듯이 원자 하나를 눈으로 직접 보면서 집을 수 있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을 발명한 것을 계기로 나노기술 연구가 본격화됐다. 이들은 그 연구 성과로 인해 지난 8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본지 창간 20주년을 맞아 IBM 취리히연구소 연구위원(펠로)으로 지금도 나노기술 관련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비니히 박사(55)와 전자우편을 통해 특별 대담을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박사님은 나노기술 연구에 전기를 마련한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동안 IBM연구소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대학(프랑크푸르트에 있는 JW괴테대학)에서 초전도체 산화물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78년 IBM과 첫인연을 맺었습니다. IBM에서는 STM 프로젝트에 관여해 하인리히 로러 박사와 STM을 발명했습니다. 그 후 몇가지 획기적인 ‘최초’ 연구 결과를 만들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진공터널 기반으로 현미경과 분광기를 최초로 조작했으며 원자 분해된 표면 이미지를 최초로 작성했습니다. 또 원자 해상도를 가진 분광기로 원자의 ‘색깔’을 최초로 표현했습니다. 또 노벨상을 받았던 86년부터는 원자력현미경인 AFM의 발명을 시작하면서 AFM 관련 연구를 했습니다. 프랭크 오네소르지와는 AFM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원자관측에 최초로 성공한 것입니다.

 ―본인과 IBM에 노벨상을 안겨준 STM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STM과 AFM은 물체의 표면구조를 ‘느끼는’ 과정에서 이미지를 만드는 장치입니다. 극도로 미세한 탐침 끝이 물체 표면과 근접하면서 물체의 원자를 스캔합니다. 이 부드러운 접촉은 스캔이 진행되는 동안 거의 자동으로 그리고 극도로 낮은 수준으로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탐침 끝부분이 물체 표면의 이미지를 만들면서 한줄 한줄 원자의 윤곽을 따라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접촉의 강도가 측정돼야 합니다. STM의 경우 탐침 끝부분의 원자와 물체 표면에 있는 마주보는 원자와 사이에 흐르는 전류로 강도를 측정합니다. AFM의 경우에는 탐침과 물체 표면의 마주보는 두개의 원자 사이의 미세한 힘으로 강도를 측정합니다.

 ―어떤 계기로 STM에 관한 발명과 개발연구를 시작하게 됐는지요.

 ▲원자 수준에서 물질이 그 당시 연구자들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잘 배열돼 있지 않다는 의구심에서 시작했습니다. 또 이 연구가 과학기술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STM 발명은 그 후 IBM이 나노기술 개발에 있어 주도권을 행사하는 데 토대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IBM의 연구원들과 업계는 박사님이 개발하신 이 훌륭한 기구로 인해 어떤 혜택을 입게 됩니까.

 ▲STM과 AFM을 통해 나노기술을 상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기술들은 IBM연구소 내에서 초기에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IBM 연구원들은 나노기술 연구에 한발 앞설 수 있었습니다.

 ―박사님과 IBM 연구원들이 STM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특히 IBM에서는 어떤 연구분야에서 사용하고 있습니까.

 ▲STM과 AFM은 표면과학과 나노기술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AFM이 단순히 연구의 범위를 넘어 품질관리, 제품향상과 신제품 개발 등 다양한 공학분야에도 응용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STM은 주로 전세계적으로 연구분야에서 사용됩니다.

 ―나노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인지, 혹은 어떤 산업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나노기술의 응용분야는 거의 무궁무진합니다. 그 중에서도 정보기술과 신약개발 등 생명공학 연구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1∼2개 들어줄 수 없을까요. 나노기술이 앞으로 5년 사이에 우리의 일상 생활을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IBM은 자율컴퓨팅에 관한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주위상황을 인식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자율컴퓨팅 환경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지식을 스스로 만들고 소화해내는 장치들의 네트워크가 주류를 이룰 것입니다. 이 같은 환경은 나노기술을 근간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스스로가 내린 결론을 알려주기 전에 센서를 통해 자신들이 발견한 내용에 관해 서로 원활히 대화할 수 있고 또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지능을 가진 각종 장치를 통해 자율컴퓨팅 환경이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래 자율컴퓨팅 디바이스는 교통문제와 같은 특정 개인의 관심사나 정보를 스스로 찾아주게 될 것이며 오늘날의 시스템이 판단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 자리에서 대답해줄 것입니다.

 ―취미가 무엇입니까.

 ▲단조로운 연구소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축구, 스쿼시, 테니스, 스키,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깁니다. 또 시간날 때마다 작곡, 유화나 조각 등도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연구활동을 하면서 경험했던 가장 흥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20여년 동안 실험실을 지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수년 전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아름다운 실리콘의 원자구조를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게르트 K. 비니히 박사 소개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생한 비니히 박사는 JW괴테대학에서 각각 물리학 학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 제목은 ‘초전도체 산화물에 관한 연구’.

 78년 IBM 취리히연구소의 물리연구그룹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비니히 박사는 85년부터 86년까지 미국 새너제이에 있는 IBM 알마덴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한 후 87년부터 1년 동안 스탠퍼드대학의 객원교수를 지냈다.

 비니히 박사의 최대 업적은 81년 동료 하인리히 로러와 함께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을 발명한 것. 이 현미경은 사람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던 원자 높이의 표면 위의 바늘 끝을 스캔(주사)해 금속이나 반도체 표면상의 각 원자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다. 이 현미경의 출현으로 나노기술 연구가 본격화됐다.

 

 ■IBM취리히연구소 ■

 IBM은 62년부터 스위스 취리히 근교에 있는 IBM캠퍼스에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비니히·로러 박사가 STM을 발명해 노벨상을 받은 것 외에도 정보기술(IT) 발전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수많은 신기술 및 발명을 남겼다.

 이들 가운데 중요한 기술 몇개만 꼽아도 근거리통신망(LAN) 등 네트워크 기술발전의 근간이 되는 ‘토큰링(token ring)’과 안전한 전자지불을 가능케 하는 ‘보안전자거래(SET)’ 기술을 들 수 있다. 또 ‘스마트카드’ 기술을 처음 선보인 곳도 바로 IBM 취리히연구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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