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이슈기획-네트워크장비산업 육성 급하다

 고부가가치 네트워크장비산업 육성이 시급하다.

 지난 90년대 이후 국내 네트워크장비 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부가가치가 낮은 소형 액세스장비 분야에 치우쳐 있어 개선책 마련이 절실하다.

 그동안 국산업체들은 과거 ATM장비 시장을 제외하고는 수익성이 큰 대형 백본장비 시장을 외산업체에게 고스란히 넘겨준 채 수익성이 낮은 소형장비 판매에 머물러 왔다.

 국산업체들은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막대한 규모의 수요가 발생한 라우터 시장에서도 고성능 코어 라우터 시장은 미국의 시스코시스템스에 빼앗긴 채 SOHO용 라우터 시장 진출에 만족해야 했으며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광전송장비 시장에서는 아예 명함도 못내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 칩세트 같은 핵심부품의 경쟁력도 미미하다 보니 많은 장비를 판매하더라도 정작 수익성은 좋지 않은 것도 문제점이다. 일례로 전세계에서 국산장비가 가장 많이 공급된 ADSL 모뎀의 경우 부품 국산화율이 50%에 머물러 한때 ADSL 시장 호황기를 틈타 이 분야에 진출했던 수십여 국산업체들은 장비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자 모두 사업을 접은 상태다.

 한마디로 국산업체들은 ‘다품종 대량생산’ 체제의 박리다매형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국가로 성장했음에도 정작 인프라를 제공하는 장비산업은 후진국형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무엇보다 핵심기술 개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국산업체들은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소형장비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사업을 벌여왔다. 장기적인 시각보다는 단기적인 관점에서 장비를 개발하다 보니 백본 장비, 광전송 장비, 대용량 라우터 등에서는 개발실적이 좋지 않았다.

 따라서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개발계획을 마련하고 핵심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요구사항이다.

 정부 정책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적지않은 지원사업이 진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개선해야할 사안이 많다.

 현재 정부는 각종 지원사업을 통해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벤처기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서류심사를 통과하더라도 담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담보능력이 부족한 업체는 지원대상에 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즉, 자금력이 부족한 업체를 돕기 위한 제도가 자금력을 입증할 수 있는 업체에게만 이용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는 국책 과제사업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돼야 할 국책사업마저도 가시적인 성과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국책과제가 완료된 뒤에 결과물을 상용화하는 작업에도 끝까지 지원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 산업발전의 근간을 이루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의 교육과정이 실제 산업과 괴리감이 심한 것도 문제다. 이에 따라 대학 졸업생들이 산업계에 발을 디디면 또다시 처음부터 관련 기술을 배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대학교육의 현실화가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고부가가치 장비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관학 공동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산관학 연계를 통해 이동통신장비 분야에서 CDMA 종주국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국내 고부가가치 장비 개발 노력 ■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대형 백본급 장비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비롯한 국내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제2의 시스코 신화를 꿈꾸며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최근에는 일부 분야에서 미약하나마 가시적인 성과가 하나둘 나타나고 있어 국내 네트워크장비 산업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국책과제사업을 통해 국내 네트워크 분야 기술발전을 선도해온 ETRI는 지난 연초 80기가급 고속 라우터 개발에 성공했다. ETRI는 LG전자, 삼성전자, 다산네트웍스, 성지인터넷 등 국내 장비업체들과 2년여의 연구끝에 ADSL 가입자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속라우터를 개발함으로써 외산업체들이 장악한 기간망용 라우터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업체 차원의 개발실적도 가시화되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차세대 네트워크시장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NGN 장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LG전자가 KT의 NGN 구축사업에 NGN 핵심장비인 액세스게이트웨이 장비를 공급한 것을 비롯해 삼성전자도 제품 공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밖에 코어세스, 다산네트웍스, 한아시스템 등 국내 중소 장비업체들도 부가가치가 높은 백본급 장비 시장에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다. 코어세스와 다산네트웍스는 올들어 기존 소형 메트로이더넷스위치뿐 아니라 고성능 대용량 메트로이더넷 장비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한아시스템은 지난 7월 중형 라우터를 출시하며 백본장비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각계 전문가 의견 ■

국내 네트워크업계 관계자들은 고부가가치 장비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막강한 자본력과 연구인력을 바탕으로 지배력을 넓혀가고 있는 다국적 대형업체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더더욱 장기적인 개발계획 수립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관수 네트워크산업경쟁력강화대책위원회 위원장·삼성전자 전무=국내 네트워크장비산업이 외국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인정하고 일단 이러한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국가 차원에서도 단기간에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사업보다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산업을 육성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사장=한국은 내수시장이 작기 때문에 해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장비개발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장비 개발은 물론 새로운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신개념 장비를 개발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도 중소 벤처업체를 지원하는 사업에 힘을 실어야 한다.

 ◇이유경 ETRI 인터넷기술연구부장=네트워크 분야의 핵심기술 개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분야의 연구개발사업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보다 먼 미래를 보고 진행해야한다. 또한 급변하는 기술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핵심기술뿐 아니라 신규기술을 창조하려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최승태 한국네트워크연구조합 전무=각종 국책과제사업 전개시 단순히 기술개발작업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향후 상용화 부분까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고도 정작 시장에서는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을 막아야 한다.

 ◇송석헌 가트너코리아 부장=다국적 업체들은 스스로 글로벌 표준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관련 장비를 판매한다. 우리도 시야를 넓혀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원천기술 확보는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차근차근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대응해 나가야 한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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